요즘 저녁은 주로 남편이 만든다. 어느 날 갑자기 요리에 재미를 붙이더니 칼을 고르고, 팬을 바꾸고, 레시피 영상을 돌려보며 부엌에 서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처음엔 그게 좋았다. 무언가에 몰두하는 그의 모습은 오랜만이었고, 나는 반찬을 줄일 수 있어 좋았다. '서로의 역할이 바뀌는 것도 자연스럽지' 생각하며 한동안은 부엌을 그에게 맡겼다. 나는 밥을 짧게 먹는 시간에 비해서 준비하는 시간이 긴 주방일이 싫었기에, 남편이 요리에 관심 갖는 걸 환영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남편이 요리를 할수록, 밥상머리는 점점 조용해졌다.
"어때? 간은 괜찮아?"
"이거 말이야, 나 유튜브 보면서 정성 들인 거야."
"닭 비린내 안 나지? 향신료 넣었는데."
그의 질문은 식탁이 시작되자마자 폭포처럼 쏟아졌다.
나는 밥을 한 입 삼키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들은 아무 말 없이 국을 떴다.
"맛있냐고 묻잖아."
남편이 아이 쪽을 향해 다시 물었다.
아들은 귀찮은 듯 말했다.
"응, 먹을 만 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남편이 덧붙였다.
"그냥 괜찮은 게 아니라, 이거 진짜 잘된 거야. 봐봐, 안 질기잖아. 완전 촉촉하지?"
그가 요리를 할 때마다 밥상 위에는 음식과 함께 긴장감이 올랐다. 그는 결과물을 통해 사랑을 받고 싶어 했고, 나는 그걸 알아차릴수록 더 조심스러워졌다.
더 문제는, 우리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요리를 자주 한다는 것. 그는 감칠맛이 강한 볶음류나, 양념이 센 중화풍 요리를 좋아한다. 반면 나는 건강상 맵고 짠 걸 잘 못 먹고, 아이는 익숙한 한식 위주로 먹는 편이다.
그런데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메뉴를 한 번 만들면 몇 날 며칠 먹을 만큼 많이 만든다.
"내일도 이거 먹자. 간장 소스 숙성되면 더 맛있어져."
그의 말에 나는 속으로 ‘내일은 된장국이 땡기는데...' 생각하면서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가 요리를 할 때면, 나는 ‘먹는 사람’이자 동시에 ‘평가자’가 되었다. 그건 생각보다 부담스러운 역할이었다.
남편의 눈빛엔 늘 확인이 담겨 있었다.
"이거 맛있어?"
"내가 한 것 중에 오늘 게 제일 낫지?"
처음엔 "응, 맛있어.", "오, 생각보다 괜찮다." 이렇게 진심 반, 의례 반으로 대답했는데 자꾸 반복되다 보니 무슨 말을 해도 부족하게 느껴졌다.
어느 날, 아이의 표정이 딱 굳어 있는 걸 봤다.
그날 메뉴는 해물볶음탕! 맵고, 짜고, 불향이 나는 음식이었다.
아이는 해산물을 못 먹는다. 남편도 안다. 나는 아이에게 살짝 귀띔했다.
“조금만 먹고 된장국 데워줄게.”
그런데 남편이 들었다.
"왜? 이거 별로야? 당신도 지금 많이 안 먹잖아?"
그 말에 나는 숟가락을 멈췄다. 아이도 아무 말 없이 밥만 떠먹었다.
밥상머리가 조용해진 건 바로 그날부터였던 것 같다.
요리는 그의 자존심이 되었고, 우리는 그 자존심 위에서 조심스럽게 수저를 들었다.
말을 꺼냈다간 그의 기분이 상할까 봐, 간이 세다거나 양이 많다고 했다간 ‘누가 해주나 보자’는 말이 돌아올까 봐. 실제로 사건도 있었다.
그렇게 말은 줄고, 반찬은 늘었다.
나는 생각한다. 누구나 인정받고 싶다. 특히 가족에게.
내가 한 일이 누군가의 기쁨이 되면 그만큼 벅차고 고마운 일이 있을까.
그래서 그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다. 문제는, 그 인정이 ‘강요’로 변할 때, 밥상이 조용해진다는 것.
요즘 나는 다시 작은 말을 꺼내본다.
"이건 소스 조금만 넣어도 될 것 같아.", "이 메뉴, 다음엔 조금 양 줄여보면 어때?"말을 꺼내는 데 용기가 필요하다.
‘노력한 사람에게 불편한 말을 해도 될까’라는 마음과 ‘이 관계가 건강하려면 말해야 해’라는 마음 사이에서 매번 흔들린다.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우리는 점점 침묵에 익숙해지고, 서로의 진심과 멀어진다.
밥상머리는 거울 같다. 그날의 기분, 그날의 감정, 그날의 가족 관계가 다 거기에 묻어난다.
조용한 밥상도 괜찮다. 하지만 긴장과 침묵이 습관이 되면 그건 피로가 된다. 때로는 내가 체하기도 한다.
나는 이 밥상머리에 다시 대화를 놓고 싶다. 맛이 어땠냐는 질문보다 “오늘 어땠어?”, “학교 재미있었어?”
그런 질문이 오가는 저녁을 다시 만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