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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싫어한 사람에게서 내 모습을 봤을 때

by 석은별

동료 중에 Y가 있다. 나이는 나랑 비슷하지만 경력은 훨씬 길고, 일처리도 꼼꼼한 편이다. 그런데, 묘하게 피로해진다.

회의에서 정해진 걸 두 번, 세 번 되묻는다. 일이 조금만 자기 쪽으로 몰려도 “내가 왜 또 이걸 해야 되지?” 같은 말을 작지만 뚜렷하게 흘린다.

그 말에 눈을 마주치는 사람이 없어진다. 나는 특히 그럴 때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진다.

Y가 말을 꺼내면 나는 말수를 줄인다. 그 사람이 나에게 질문하면 짧게 대답한다.

“점심 뭐 드셨어요?”
“그냥요.”

“그 일 다음 주로 미룰까요?”
“음, 괜찮아요.”

나는 말을 길게 섞지 않으려고 애쓴다. Y와의 거리를 좁히지 않으려는 태도. 그건 내 안의 아주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불편한 기류를 굳이 감내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 굳이 모든 사람과 잘 지낼 필요가 없다는 체념,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랑 안 맞는다’는 정리.

나는 그런 태도를 이제는 ‘자기보호’라고 불렀다.


어느 날, 우연히 탕비실에서 Y가 다른 동료와 나누는 말을 들었다. 나는 물을 뜨러 갔다가 본능적으로 멈춰 섰다.

Y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낮았다.

“아니, 그 사람도... 나한테 말 섞기 싫은 게 너무 티나잖아요. 내가 뭘 그렇게 싫은가 싶지. 근데 나도 그래. 그 사람이 조금만 피곤해도 표정 싹 바뀌거든. 그래서 나도 그냥 최소한만 하려고요. 솔직히...나도 마음 열기 싫은 거지.”


Y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오는 순간, 나는 그대로 얼어 붙었다. 이상하게도, 그 말이 내 뒷머리를 세게 친 것 같았다.

그 말투, 그 마음, 그 태도...낯설지가 않았다. 그건 내가 Y에게 가졌던 마음 그대로였다.

나는 그 사람을 “피곤한 사람”이라 여겼지만, 사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사람일 수 있었다.

불편함을 드러내지 않으려 딱 그만큼만 대하고, 정해진 이상은 건너지 않으려는 사람.

Y가 내게서 느낀 거리감과 외면이 내가 Y에게 건넨 태도였다는 걸 그 순간 알게 되었다.

돌아서 오는 복도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부끄러웠다.

‘그래, 나는 불편한 관계를 무시하는 방식으로 지나쳐왔다. 다 이해하는 척, 다 괜찮은 척하면서, 사실은 누구보다 빠르게 선을 그어왔다.’


그 자각은 어떤 것보다 날카로운 감정이었다.

점심시간, 나는 조심스레 Y 옆 자리에 앉았다. 그 사람은 놀란 눈치였다.

“오늘 점심 뭐 드셨어요?” 내가 물었다.

Y가 말했다. “샌드위치요. 빵에 뭐 들어간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나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저두 뒤돌아서면 내가 뭘 먹었던가 싶을때가 많아요.”

그 말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풀어줬다.

나는 모든 사람과 잘 지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단정 짓는 태도 속에 나 자신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건 나를 조금 더 진실하게 만들어준다.




요즘은, 불편한 사람을 보면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는다.

“혹시, 내가 그 사람을 더 불편하게 만들고 있진 않을까?”

이 물음은 나를 작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내 감정의 방향을 정확하게 가늠하게 해준다.

내가 싫어한 사람에게서 내 모습을 볼 때, 나는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 대신 내가 놓친 마음을 하나씩 되짚는다.

나는 완전하지 않다. 그래서 더 자주 부끄럽고, 그래서 더 자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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