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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다른 리듬으로 걷는다

감정의 구조가 바뀌었을 때 삶의 걸음도 달라진다

by 석은별

이전의 나는, 상황에 반응하고 감정에 휩쓸리며 무언가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다 보니 내 걸음은 늘 타인의 발을 밟거나, 자기 그림자를 밟는 쪽으로 향했다.

이제는 안다. 감정은 따라가야 할 무언가가 아니라 함께 걸어야 할 리듬이라는 것을.

이번 회차는 감정의 구조가 바뀌었을 때 삶의 움직임도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다룬다. 심리학적으로는 감정 조절의 자동화, 분석심리학에서는 개성화 과정의 통합 지점에 해당하는 삶의 리듬을 중심으로 풀어낸다.




감정이 자동으로 정돈되는 순간

치유와 통합의 과정을 거친 후, 감정은 더 이상 폭발하거나 억압되지 않는다. 그 대신, 감정이 발생하자마자 자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정돈되는 흐름이 만들어진다.

이 상태는 다음과 같은 징후로 나타난다:

감정을 느끼되 즉각 반응하지 않음

감정을 억제하지 않고, 흐름 속에 둠

감정을 해석하려 들기보다, 함께 머무는 능력이 생김

불안이나 슬픔이 와도 “이건 지금 나에게 필요한 상태”라고 이해함

이런 상태를 심리학에서는 '감정 조절의 자동화', 분석심리학에서는 '자기 중심성의 안정'으로 본다.


분석심리학에서의 개성화 여정의 귀환

융은 인간이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을 개성화(individuation)라 불렀다. 그는 말한다: “개성화란, 진짜 내가 되어가는 과정이며, 그 끝에서 자아는 자기(Self)와 조화를 이룬다.”

이 조화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지?’를 묻기보다 ‘이대로 살아도 된다’는 확신으로 바뀌는 지점이다.

이 지점에서는 더 이상 감정이 인생을 ‘바꾸려는 동력’이 아니고 감정은 삶을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가 된다

사례: 조용한 확신 속의 변화

50대 여성 K는 수년간 자기 비난, 관계의 불안, 감정 억제 문제로 상담을 받아왔다. 초기엔 울거나 침묵하거나 피했다. 하지만 마지막 즈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울어도 괜찮아요. 울고 나면, 내가 나한테 가까워졌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예전보다 훨씬 덜 고민해요. 그냥, 지금의 나를 살고 있어요.”

그녀는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 감정의 흐름을 인식하고 그 흐름을 타고 살아가고 있었다.

이것이 다른 리듬으로 걷고 있다는 징후다.


삶의 걸음이 달라질 때 나타나는 것들

감정의 구조가 바뀌면 삶의 움직임도 다음처럼 달라진다:

선택이 빠르지만 후회가 적다

– 자기 기준이 감정에 기반하되,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때문

거절이 자연스러워진다
– 타인의 감정과 내 감정의 경계를 구별할 수 있기 때문

빈 시간이 불안하지 않다
– 감정과 함께 머무는 기술이 내면화됐기 때문

성취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 된다
– 감정의 흐름 안에서 자기 삶이 완성된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

이런 리듬은 ‘정답이 있는 삶’에서 ‘감정을 중심으로 구성된 삶’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새로운 리듬은 느리지만 정확하다

감정에 따라 걷는 사람은 속도를 내기 어렵다. 왜냐하면 감정은 느리고, 삶의 리듬은 곧 내면과 대화하며 움직이는 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느림은 지금 여기에서 자기 삶과 합을 맞추는 방식이다.

그 리듬은 타인에게 보이기 위한 리듬이 아니고 성취를 위한 리듬도 아니며 존재 자체를 살아내는 리듬이다.

‘이제 나는 다르다’는 증거

정말 변화된 사람은 “나 달라졌지?”라고 묻지 않는다. 그저 그 사람의 말투, 선택, 눈빛, 관계, 걷는 속도에서 그 다름이 감지된다.

다른 리듬으로 걷는 사람은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고 과거와 미래보다 지금 이 순간의 리듬에 귀 기울이며 해결보다 연결, 성과보다 흐름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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