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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은별 Feb 10. 2024

독을 품은 나

보이지 않는 가시

어쩌다 연락되는 엄마는 늘 피곤한 목소리다.

엄마는 큰 횟집을 하는 이모네에서 일했다. 6남매 중에 맏이인 엄마는 아빠와 이혼 후에 줄곧 혼자 살았다. 젊은 나이에 이혼을 하니 아가씨로 알고 여러 남자들이 접근했고, 그때마다 큰 이모가 방어벽이 되었다. 나중에는 괜찮은 이혼남이 있어 큰 이모가 이어 줄려고 했지만 엄마는 잠시 만나기만 할 뿐 합치지 않았다. 내도록 내 핑계를 댔다고 한다.


아빠가 죽었다는 소식에 놀라기도 잠시 나와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대에 한껏 부풀러 있었단다. 나와 함께 살기 위해 집도 알아봤다고 한다. 엄마가 믿은 종교는 일본의 불교라고 하는데 같은 회당에 다니는 지인들에게 나와 함께 살 수 있게 돼서 기도가 성취되었다고 반겼단다. 이 내용을 중학생 때 들었다. 엄마는 자신이 나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함께 하고 싶어 했는지를 표현하고 싶었을 텐데, 나는 엄마의 말을 빌미 삼아 '아빠가 죽기를 바랐구나!'라며 몰아붙였다.


나와 함께 하고 싶으면 내 동생들도 책임져라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 민 것이다.

스무 살에 나를 낳은 엄마에게 나의 행동은 버거웠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고집을 피우는 나를 아빠와 똑같은 성격으로 보면서 싫은 내색을 내기도 여러 번. 그렇게 엄마와 나는 앙숙이었다. 우리 사이를 중재한 것은 이모들이었다. 나와 엄마 사이의 갈등을 풀어 주기 위해 일부러 놀이동산 가기로 약속을 잡는다거나 생일이면 조촐하게 생일상을 차려서 초대한다거나 이모들이 애를 많이 썼다.


가운데서 조율하는 역할이 얼마나 힘든지는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이모들의 수고를 전혀 몰랐다.




말만 하면 엄마에게 보이지 않는 가시로 콕콕 찔러댔다.

하얀색 개 말티즈 수놈을 먼저 키웠다. 혼자서는 외로울 것 같아서 뒤늦게 암놈을 데려왔다. 암컷인 단비는 집에서 두 번 출산했다. 한 번에 네 마리씩을 낳았다. 그 작은 몸에서 네 마리나 나오다니 신비로움 그 자체다.


20대 초반의 내가 강아지 출산을 집에서 직접 준비하다가 수의대 다니는 친구에게 SOS를 쳤다. 친구도 출산을 도와 본 경험은 없다며 나름대로 알아본 정보를 꼼꼼하게 전달한다. 그리고 혹여나 모르니 자신도 함께 하겠다고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다. 첫 출산을 하던 날 친구를 부르기에는 늦은 밤이었다. 새벽 2시부터 진통을 하던 단비가 네 마리 순산하고 새끼들을 품으며 꼼짝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모성에 대해 생각했다.


도대체 내 엄마는 이런 마음도 없이 나를 버리고 간 거야?

백일도 안 돼서 나를 버리다니. 모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냉혈한인가?

엄마에 대한 원망이 오히려 더 깊어졌다.


강아지 출산을 알리는 데에도 '개도 지 새끼를 저렇게 애지중지 보살피고 주인이 곁에 다가가도 으르렁대는데. 사람이 자기 새끼 하나 못 지키고 도망갔냐!'면서 몰아붙였다.


나를 버린 엄마에 대한 원망은 단비가 자기 새끼들을 살뜰히 챙기며 육아하는 장면을 볼 때마다 더욱 깊어졌다. 단비가 핥아서 배변을 받아내는 모습이나, 강아지들이 눈 뜨기 전에는 자리를 절대 뜨지 않고 겨우 밥 먹고 배변하는 활동 외에는 강아지들 지키기에 여념이 없 모습을 볼 수록 엄마를 원망했다.


개 보다도 못한 엄마를 둔 나라는 생각에 엄마를 향한 독기는 응축될 대로 응축되어 그녀를 마구잡이로 찔러댔다. 왜 이혼했는지는 밝히지도 못한 채, 자기를 원망하고 저주하는 딸의 가시 돋친 말을 듣고 엄마는 밤마다 큰 이모랑 소주를 마시며 내 이야기가 안주거리가 됐다고 한다.

하루는 큰 이모가 "너! 적당히 해라.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말에 "이모가 알면 뭘 안다고! 아는 거 말할 자신 없으면 나한테 뭐라 하지도 마라."라며 대들었다.


자기는 외할머니가 옆에서 철마다 반찬 해주고 김장해 주고 다 해주면서...




중학교부터 일기를 썼다. 일기장에는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랄 정도다. 그러나 이 내용이 전부가 아님을 뒤늦게 깨닫고 나 자신에 대해 단단히 착각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엄마에 대해서는 원망과 저주가 가득한 내용을 담았다. 내 삶이 엉망진창 된 것이 다 엄마 잘 못이라고 여겼다. 만만한 게 엄마라고 모든 원인을 엄마에게 돌리는데도 속이 편치 않았다. 엄마 역시 젊었기에 자기가 감당하기 힘든 것은 담아주지 못했기에...


일기장 속 내용에서 감정이 섞여 있는 부분은 배제하고 상황과 사실이 기록된 부분만 따라가며 읽어봤다. 생각보다 엄마와 연락하거나 만난 횟수가 많았다. 나를 버렸다고 인식했지만 늘 내 주변에 맴돌고 있었고, 이모들을 보내서라도 내 안부를 확인하며 내 소식에 민감해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눈치채지 못했다. 엄마를 만나고 오면 속에서 일어나는 부화를 어쩌지 못해 씩씩대야만 했다. 그것이 '버려진 나'라는 자아상을 갖고 살았던 사춘기 시절의 내 모습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 화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내가 키우는 개도 자기 새끼를 지키는데 왜 나를 지키지 않았냐고 원망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내가 일기를 써 온 것 처럼 나만큼은 아니더라도 엄마도 일기와 사진을 남겼다. 그리고 엄마가 죽은 날 알게 됐다. 내가 버려진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내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살아왔음을 뒤늦게 발견하고 오열했다. 살아서 한번이라도 보여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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