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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은별 Feb 09. 2024

기억과 일기를 통합하다.

운이든 기회든

25~6년 전이다. 여상을 나오면 바로 취업이 될 줄 알았지만 먼 지역으로 옮겨야 한다거나 일이 성에 차지 않거나 급여가 열악한 곳이 대부분이었다. 중학교에서 늘 1~2등을 하던 내가 여상을 갈 때에는 그곳에서도 성적이 잘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첫 영어수업시간, 그것도 상업영어 시간에 현실을 봐 버렸다. 교사의 구린 발음과 음침한 눈빛에서 수준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했다. 그 교사가 3학년 담임이 될 줄은 그때 몰랐겠지.


여러 번 교사의 발음을 지적한다거나 곳곳에 틀린 스펠링을 지적했다. 그리고 상식이라는 수업시간에는 부연 설명보다는 암기식으로 수업하는 게 못마땅해서 질문공세를 펼치다 부담스러운 학생으로 찍히기도 했다. 여상 중에서도 성적이 좋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학교였고 입학해서도 성적으로 과를 나누어 놓은 곳이었다. 우리 반에 들어오는 교사들은 자부심을 가져라고 격려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수준은 내 성에 미치치 않았다. 그러다 상과 과목에 적응을 못하고 포기해 버리는 순간 성적은 떨어졌다. 국영수가 아무리 받쳐준다지만 상과 과목 점수들이 따라주지 않으니 성적에 대한 재미가 사라졌다.


그때 나는 교회에 열정을 바쳤다. 그곳에서 성경공부하는 것이 욕구를 채워주는 대체물이 되었던 셈이다.


고3 담임과의 에피소드는 나중에 풀더라도, 그 인간 때문에 졸업식을 가지 않았다. 얼마 전 교육청 메신저를 통해 조회하니 그 인간은 아직도 근무한다. 곧 정년일 텐데, 그전에 찾아가 한껏 퍼붓고 싶다. 개새끼.


고3이 되어 처음으로 엄마와 상의를 했다. 취업을 할지 진학을 할지. 진학을 하자니 기초 과목을 놓쳐 버린 것이 신경 쓰이고 취업을 하자니 뭔가 내키지 않았다. 교회 언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상 출신 여직원은 회사에서 가장 낮은 바닥에서 출발해야 했고, 급여나 근무조건에서 모든 것이 최악의 상태에서 시작해야 했다. 그리고 스스로 일을 할 수 없고 시키는 것만 해야 된다는 것을 듣는 순간 경리는 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엄마는 당연히 진학해야 된다고 했다. 이모들 역시 내가 차라리 재수를 해서라도 좋은 대학을 가라고 했다. 기본 머리가 되니까....라는 이유였는데 그것은 내 주변에서 나를 좋게 보는 사람들의 평가였고, 나는 이미 상과 과목에서 루저임을 경험했기에 내가 똑똑하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다. 아니 열등하다고 생각했다. 글씨를 잘 써야 점수가 나오고, 타자가 빨라야 점수가 나오고, 주판을 잘 튕겨야 점수가 나오는데서 나는 그저 열등생이었다.


뒤늦게 몇 달간 수능 준비했고, 뒤쳐진 학업을 채워나가기에는 막막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는 생각으로 닥치는 대로 공부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하면 할수록 성적이 오른다는 것이다.


4년제를 가기에는 막막했다. 학비나 생활비 등을 고민해야 했다. 엄마가 걱정 말라 했지만 그 말이 와닿지 않았다. 내 성적으로 전문대는 공짜로 다닐 수 있었다. 컴퓨터 전공으로 공짜로 다니기 위한 대학에 진학했다. 그것도 집과 가장 가까운 근처의 대학으로...


전산과에 들어가니 남녀 비율이 거의 7:3이다. 복학생부터 재수생에 동갑내기들과 함께 공부하던 그때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제야 내가 보인다. 내가 어쩌면 이들보다 더 나은 곳에 갈 수 있었을 조건인데 왜 여기 있는가. 그렇다고 그들을 비하할 의도는 없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던 사람들이고, 최소한 나보다는 자기 자신을 더 고민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서 배운 것이 많다. 과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 서로 어울려서 함께 살면 된다는 것,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기꺼이 도와줄 수 있어야 된다는 것, 지금 당장 내가 못해도 다음에 잘하면 되는 것이고, 지금 잘하는 사람은 다음에 좀 쉬어도 된다는 것을 배웠다. 삶을 좀 가볍게 살아도 된다는 것을 그곳에서 배웠다.


다행인 것은 그곳에서의 공부는 재미있었다. 과목 중에서도 프로그래밍이 가장 적성 맞았다. 당시 친했던 몇몇 이서 유닉스로 해킹 공부할 때가 기억난다. 더 깊이 들어갔다면 다른 세상을 경험했겠지. 한 명이 알려주면 배움을 따라가는 식이었다가 호기심에 이것저것 더 파고들 빠져드는 게 해킹의 세계다. 당시 연애하느라 더 깊이 안 들어간 것을 다행이라 여긴다.


졸업할 시점에 취업을 준비하는데 누구는 가족이 운영하는 곳에 들어간다거나, 지인의 찬스를 쓰는 경우도 많았다. 딱 한 명 3살 많은 언니는 국립대로 편입한다고 한다. 그때 그 언니를 보면서 왜 저렇게 답답하게 사는가 싶었는데 어쩌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던 여성의 표본을 본 셈이다.


졸업 직전에 취업을 위해 여기저기 원서를 넣다가 서류가 합격한 곳에서 면접을 보라고 연락이 왔다.

그곳은 서너 명을 채용하던 공고와는 달리 여러 부서를 한꺼번에 뽑는 정기 채용 공고였다. 그 당시 나는 응시 조건만 맞으면 원서를 제출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곳에 뽑힐지 말지 보다는 기준이 되니까 도전해 본다는 생각으로 응시했다.


면접 보는 장면에서 이상한 질문을 한다. 혈액형이 무엇이냐. B형이라고 하니 B형 특징에 대해서 장단점을 이야기 하라고 한다.

그리고 나의 장단점을 이야기해 보라고 한다. B형 남자의 단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보라고 한다. 왜 취업 면접에서 혈액형 이야기를 하는 걸까라는 생각은 집에 돌아오는 버스에서나 했다. 면접 순간에는 긴장 그 자체였다. 떠오르는 대로 두서없이 이야기하고 나니 면접관으로 들어온 CEO가 B형이라고 한다. B형 남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주변의 B형 또래들을 떠올렸는데, CEO는 50대... 망했구나 싶었다. 이렇게 큰 기업에서 면접을  장난처럼 보는가 싶어 실망하면서도, 떨어트리려고 이런 질문을 한 거구나 싶어 마음을 접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다시 확인하니 이전 연도까지 입사자들이 대부분 4년제 대졸자들이었다. 그래 나는 떨어지겠구나. 마음 접었다. 다른 곳에 원서 쓰지 뭐...  

   

며칠 후 문득 결과 발표가 궁금했다. 결과가 발표되면 전화가 오는 걸까? 휴대폰이 없던 시절이다. 집으로 전화가 오는지 어떤지 궁금했다. 회사로 전화했다. 내선 번호를 누르는데 취업공고에 경영기획실이라고 있길래 그곳 번호를 눌렀다. 얼마 전 면접 봤는데 결과는 어떤 방식으로 전해주느냐고 물었다. 메일로 오는 것인지 직접 전화가 오는 것인지, 전화가 온다면 몇 시쯤에 전화를 주느냐고 물었다. 내가 그 시간에 집에 꼭 있어야 된다면 약속을 취소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기 전에 내 이름을 묻는다. 밝혔다.     

그리고 다음날 그 시간이 되어 얼마나 지났을까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졸업 직전에 취업했고, 졸업하자마자 학교가 아닌 회사로 출근하면 됐다.

나에게는 취업이 가장 쉬웠다고 기억되는 장면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 내 기억의 오류가 많음을 일기장을 통해 발견했다.

나는 이곳에 원서를 내기 전 정말 많은 곳에 서류를 냈고, 초조해했고, 취업이 안된다면 무엇을 해야 될지 고민하는 밤이 많았다. 술도 많이 마셨고, 주변의 취업소식이 들려오면 한껏 부러워했다가 스스로에게도 기회가 있을 거라며 다독였다가 또다시 좌절하기를 여러 번이었다.

단 한 번에 마치 운으로 취업되지는 않았다. 여러 고민 끝에 절박한 마음이 생기자 대차게 나서는 태도가 만들어진 셈이다. 그것은 기회를 잡는 힘으로 작용했고, 결과적으로는 운이 좋은 아이처럼 보이게 된 것이다.


기억과 일기를 조합해서 글을 쓰다 보니 결과 중심으로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많음을 발견한다. 겨우 혈액형과 관련된 이야기만 했을 뿐인데 운이 좋아서 뽑혔다고 보기에는 나 자신의 간절함을 스스로 낮추고 있었다. 어쩌면 고모가 나의 기준을 늘 낮춰서 대하던 것과 같은 시선이 아닌가 싶었다. 엄마나 이모들은 늘 나의 가능성을 보며 격려해 주는 이상주의자들이었다면 고모는 팍팍한 현실에 맞춰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불안 미리 대비하도록 스스로가 기준을 낮춰 버리는 전략으로 나를 대했다.


그들과의 경험을 통해 나에게는 여러 자아가 만들어졌고, 고모를 닮은 자아도 엄마를 닮은 자아도 할머니를 닮은 자아도 아빠를 닮은 자아도 서로 부대껴 살아가고 있음을 발견한다. 과거에는 이 모든 자아들을 다 없애 버려야만 나의 고유한 모습이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제는 이 모든 자아들과 내가 유유히 손잡고 살아야 그게 진짜 나임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럴 때 기회는 마치 운처럼 다가와 내 삶에 다양한 드라마를 펼쳐 놓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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