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일갔어요. 근데 저 저거 탈래요. 주세요. 여기...'라면서 100원짜리 3개를 아저씨 앞에 내민다. 아저씨는 꼬마 머리를 흩트리며 휘젓더니 자전거를 꺼내 준다. 세발자전거다. 자전거를 탄 아이는 앞 뒤로 바퀴를 굴려 본다.
아저씨는 꼬마에게 자전거를 내어 주고는 기다려라고 한다.
아저씨가 오토바이를 수리하는 동안 꼬마는 근처에서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가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아저씨 주변을 맴돌며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저 멀리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아빠 오토바이랑 같은 소린데?
아빠가 왔다. 아저씨가 연락한 모양이다. 아빠가 꼬마에게 다가가 머리카락을 흩트린다.
'재밌냐?'
'응! 좋아!'
아빠가 집에 가라고 한다. 자전거 타고 가라고 보낸다. 아빠는 뒤 따라오겠다고 한다.
'그래! 내가 먼저 갈 테니까 나 따라와!'
아빠랑 아저씨가 이야기를 나눈다. 꼬마는 세발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아 집을 향했다. 집 근처 도착하니 뒤에서 아빠의 오토바이소리가 들린다. 꼬마 뒤에서 오토바이 속도를 맞춰 따라온다.
5살 꼬마는 나다. 나는 초등 1학년이 되어서도 돈 개념을 몰라서 세배를 할 때 종이돈을 받으면 울상을 지었다고 한다. 어른들은 나에게 세뱃돈을 주기 위해 일부러 500원짜리 동전을 바꿔서 주곤 했다. 개념을 모르니 그저 커다란 동전이 많은 것만 좋아한 셈이다. 돼지 저금통에 동전을 넣으면서 이 돈이 다 차면 집도 사고 차도 사고 멀리 놀러도 다닐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내가 새 자전거를 타고 오니 할머니가 놀란다. 아빠가 사정을 이야기한다. 그리고는 할머니가 '300원으로 자전거도 살 줄 알고! 다 컸네!'라고 하셨다. 맞다. 나는 300원으로 자전거를 살 수 있는 아이였고, 아무도 나에게 그 자전거가 원래 얼마니까 내가 낸 돈 300원은 택도 없다는 말을 해주지 않았다.
꼬마의 입장에서는 세발 자전거를 타고 싶다는 의도만 있었다.
그 과정은 고려할게 아니다. 원하는 것을 의도하기만 하면 그것은 우주가 다 이루어 준다고 한다. 문득 그 우주라는 실체가 뭘까라는 생각을 하다보니 어린 시절의 경험이 떠오른다.
나에게 우주는 아빠였고 할머니 였다.
그들은 나의 바램에 시시콜콜 이유를 대며 좌절 시키지 않았다.
천천히 저절로 알아가도록 지켜 봐 주었을 뿐이다.
정서적 유산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니 이런 일화가 먼저 떠올랐다.
내가 받았던 것이 있다면 이런 경험이 곳곳에 있다는 것. 그것으로 나머지 길고도 지난한 세월을 그들이 없는 시간을 잘 살아내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