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방에 머무는 스무 살
이름: 재현(가명) / 21세 / 남성 / 대학 자퇴 후 귀가한 상태
재현은 한때 서울의 중위권 사립대학에 재학 중이던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기숙사 생활과 반복되는 과제, 진로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겹치면서 2학기부터 수업에 나가지 못했고, 결국 휴학을 반복하다 자퇴를 결정했다. 부모는 반대했지만 “일단 쉬고 생각하자”는 말에 억지로 수긍한 상태였고, 지금은 집에 머물며 특별한 일정 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하루하루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더 죄책감이 쌓이고, 가족과 마주치면 “오늘 뭐 했니?” 같은 일상적인 질문조차 숨 막히게 느껴졌다. 예전엔 공부를 못 해도,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 자기가 누구인지 느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 역할도, 소속도 없이 존재만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날도 별다를 것 없이 하루를 보낸 날이었다. 그런데 밤이 되자 왠지 모를 불편함이 가슴을 누르듯 밀려왔다. 그리고 노트를 꺼냈다. '감정일기'라는 걸 한번 써보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나서였다.
1. 어떤 일이 있었나요?
늦게 일어나 혼자 밥을 먹었고, 하루 종일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엄마는 나를 피하는 듯했고, 단톡방에 학교 얘기가 올라와 마음이 저렸다. 그냥 스쳐 지나간 하루인데 마음은 묘하게 무겁고 허전했다.
2. 기록 전 주요 감정 백분율
무기력 45%
공허 20%
수치심 15%
짜증 10%
외로움 10%
3. 무슨 생각이 떠올랐나요?
나는 지금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된 기분이다. 누구에게도 필요한 존재가 아니고, 내가 사라져도 모를 것 같은 기분. 예전에는 그래도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줬고, 내가 속한 자리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집에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누가 나한테 “요즘 뭐 해?”라고 물으면, 나는 도망치고 싶어진다.
4. 활용한 기법은 무엇인가요?
감정 언어화: 무기력, 공허, 수치심 등 명확한 감정어로 기록
현실 검증: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을 검토
자기 거리두기: 감정을 글로 써냄으로써 나와 분리
5. 새로운 생각은 무엇인가요?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현실의 전부는 아닐 수도 있겠다. 내가 무가치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지금은 잠시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상태일 뿐이다. 회복하는 중이라는 말이 처음엔 허무하게 들렸지만, 지금은 어쩌면 정말 필요한 시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 도움이 된 점은 무엇인가요?
이 감정들을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는데, 글로 쓰니 내가 왜 이렇게 불편했는지 조금 보였다.
‘아, 내가 지금 누구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었구나.’
내 감정을 정확히 짚어주는 단어들을 찾는 것만으로도 조금은 숨이 쉬어졌다.
7. 나에게 어떤 긍정적인 말을 하면 좋을까요?
“넌 지금 쉬는 중이야. 무언가 되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 있는 그대로의 너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사람이야.”
8. 기록 후 주요 감정 백분율
무기력 30%
평온함 25%
애매함 15%
위로받은 느낌 15%
희미한 의욕 15%
9. 일기 쓰기 전과 후의 변화
처음엔 그냥 찝찝한 기분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그 찝찝함이 ‘무기력’과 ‘외로움’이라는 이름을 가진 감정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감정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조금 생겼다. 그리고 생각보다 나는 지금도 뭔가를 ‘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마음을 정리하려 애쓴 나에게 고맙다는 말도, 처음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