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 일도 없던 날이 좋다” – 그 말의 무게
어느 날 저녁, 상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별일 없었네.”
이 말이 낯설 만큼 평온했던 하루. 그런데 그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 벅차올랐다.
별일 없는 날이 좋다니.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았고, 억지 웃음도, 억눌린 분노도 없이 하루를 마칠 수 있었다는 것. 그저 ‘그럭저럭’이 아니라, 정말 ‘좋다’고 느낄 수 있었다는 것.
그게 얼마나 힘들고 귀한 일이었는지, 이제는 안다.
어른이 되고 나서 우리는 종종 감정을 미뤄둔다.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야.”
“이건 별일 아니야.”
“나는 괜찮아.”
그렇게 말하며 하루를 넘기고, 감정은 마음 어딘가에 침전된다. 언제부턴가 내 마음보다 상황이 더 중요해지고, ‘느끼는 나’보다 ‘견뎌내는 나’가 더 어른스러워 보이게 되었다.
하지만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말하지 않은 감정은 몸에서, 관계에서, 삶의 방식에서 흘러나온다. 소화불량처럼 쌓이고, 예기치 않은 순간에 폭발하거나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는 무감각의 늪에 우리를 빠뜨린다.
이 브런치북은 그 늪에서 스스로 건져 올리기 위한 작은 도구다. 감정을 적는 연습.
그저 ‘오늘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감정이 들었는지’를 정직하게 써내려가는 연습.
감정을 수치로 표현하고, 떠오른 생각을 적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시 느껴보는 연습.
이 단순한 과정이 생각보다 깊고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나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확인했다.
‘나는 감정을 잘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그들은 대부분 너무 오랫동안 감정을 억누르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말보다 빠르게 눈치채고, 상황에 맞춰 반응하고, 정작 자신의 감정은 느끼지 않거나 모른 채 지나쳐 버린다.
감정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느끼는 법도, 표현하는 법도, 돌보는 법도 ‘훈련’이 필요하다. 이 브런치북은 그 훈련의 출발점이다.
여기에는 일곱 명의 사람이 등장한다. 다양한 나이와 상황, 그리고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각자의 삶에서 어느 날, 감정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아무도 몰래, 조용히, 자기 마음을 마주하며. 그들이 쓴 감정일기는 어떤 치료법보다 강력한 회복의 길이 되었다. 그 과정은 결코 거창하지 않았다. 때로는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은 하루에서, 잠깐 스친 대화 속에서, 미처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들 속에서 회복은 시작되었다.
감정일기를 쓰는 것은 마치 내면 지도를 그리는 것과 같다.
‘오늘 이 지점에서 이런 감정이 있었고, 이런 생각이 흘러갔고, 이런 말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지도를 그리다 보면 반복되는 길이 보인다.
‘나는 왜 이럴까’에서 ‘나는 이럴 때 이런 감정을 느끼는구나’로 바뀐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는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이 감정일기의 형식은 단순하다. 하루의 사건을 기록하고, 감정을 백분율로 적고, 떠오른 생각을 쓰고, 스스로에게 해줄 말을 써본다. 그리고 그 전후의 감정 변화를 느껴본다.
처음엔 어색하겠지만, 익숙해지면 하루를 마무리하며 내 마음을 정리하는 가장 좋은 습관이 될 것이다.
당신에게도 익숙한 감정이 있을 것이다. 무기력, 불안, 억울함, 상실감, 자기혐오, 체념, 고립감... 이 브런치북 속 인물들의 감정일기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감정 속에서, 당신의 ‘회복력’ 또한 함께 발견되길 바란다.
지금은 아무 일도 없는 날이 귀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젠가는, ‘감정을 잘 느끼고, 표현하고, 회복할 수 있는 하루’가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날이 될 것이다.
그날을 위해, 이 브런치북의 내용이 작은 연습장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