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방에 머무는 스무 살
재현은 요즘 ‘기분이 어떤지’ 묻는 질문에 대답을 잘 못한다. 짜증은 나는데 그게 화 때문인지, 슬퍼서인지 모르겠고 무기력한 건 확실한데 왜 그런지는 알 수 없다.
오늘은 특별히 기분 나쁜 일도 없었고, 엄마는 아침에 조용히 나갔고, 아빠도 퇴근 후 말없이 지나갔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어딘가 모르게 불편하고 우울했다.
그런데 ‘왜?’라고 묻는 순간,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알 수 없는 껄끄러움이 마음과 몸에 남아 있었다.
감정일기 셋째 날. 오늘은 뭘 적어야 할지조차 막막했지만, 그래도 앉아서 펜을 들었다.
1. 어떤 일이 있었나요?
별다른 일 없이 하루를 보냈지만 마음이 가라앉아 있었다.
누가 나에게 뭘 한 것도 아닌데, 자꾸 뭔가 불편하고 피로했다.
감정을 물으면 ‘잘 모르겠다’는 대답만 떠올랐다.
2. 기록 전 주요 감정 백분율
애매함 40%
무기력 25%
짜증 15%
슬픔 10%
답답함 10%
3. 무슨 생각이 떠올랐나요?
내가 진짜 뭘 느끼는지 잘 모르겠다. 예전엔 친구들이랑 얘기하거나 음악 들을 때 기분이 좀 나아졌는데, 지금은 그게 다 귀찮다. 그냥 누가 “오늘 기분 어때?”라고 물으면 그 질문 자체가 짜증 난다. 모른다고 말하면 내가 이상한 것 같고, 그렇다고 아무 감정도 없다고 하자니 더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감정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감정이 있는데 그걸 알아채지 못하는 게 문제 같은데 그걸 설명하기가 너무 어렵다.
4. 활용한 기법은 무엇인가요?
감정 탐색 훈련: 애매함 속에서 단어를 더듬어봄
몸의 느낌 관찰: 신체 감각을 통해 감정 실마리 찾기
감정 없는 상태 수용: '감정 없음'도 감정 상태로 인정
5. 새로운 생각은 무엇인가요?
감정을 못 느끼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걸 느끼지 않도록 내가 오랫동안 훈련해온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시하고 눌러왔던 습관이 지금의 ‘모르겠다’라는 상태를 만든 걸 수도 있다.
감정은 원래 선명하게 주어지는 게 아니라 찾고, 붙잡고, 이름 붙여야 하는 거구나.
6. 도움이 된 점은 무엇인가요?
‘모르겠다’는 대답을 그냥 넘기지 않고, 그 속에 어떤 감정의 실마리가 있는지 더듬어보려 했다.
그 자체가 훈련처럼 느껴졌고,
조금은 내 마음 안으로 들어가는 연습을 한 기분이다.
여전히 명확하진 않지만,
그래도 아예 감정이 없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7. 나에게 어떤 긍정적인 말을 하면 좋을까요?
“지금은 잘 모르겠는 게 당연할 수도 있어. 그렇다고 감정이 없는 건 아니야. 네 마음은 말할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몰라.”
8. 기록 후 주요 감정 백분율
애매함 30%
인식함 20%
무기력 15%
짜증 10%
차분함 10%
궁금증 15%
9. 일기 쓰기 전과 후의 변화
감정을 모른다는 게 두렵고 불편했는데 지금은 그걸 인식하고 바라본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풀렸다. 감정을 모른다는 것도 하나의 감정 상태라는 걸 처음으로 받아들였다. 내 마음 안에 무언가가 있다는 걸 느낀 것만으로도 오늘 하루는 조금 덜 공허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