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상을 기록하며 조금씩 살아난다"

Part 1. 방에 머무는 스무 살

by 석은별

인물 소개와 에피소드 배경

감정일기를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났다. 재현은 처음엔 의무감처럼 시작했던 이 기록이 생각보다 마음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다.

오늘은 어제보다 조금 일찍 일어났고, 햇빛이 방 안으로 스며드는 걸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창문을 열고 바람을 맞았다. “아, 기분 좋다”는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고, 그 말을 놓치지 않기 위해 메모장에 적었다.


오후에는 설거지를 했다. 단지 엄마가 귀찮아할까 봐 한 것이지만, 끝내고 나니 스스로 조금 덜 미안해지는 느낌이었다.

거창한 변화는 아니었지만, 무언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오늘만큼은 조금 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감정일기를 쓴다. 이번엔 처음으로 “좋았다”는 감정을 써보고 싶어서.



1. 어떤 일이 있었나요?

조금 일찍 일어나 햇빛을 보았고, 혼자 설거지를 했다. 하루 중간에 “기분이 괜찮다”는 생각이 스쳤다.


2. 기록 전 주요 감정 백분율

무기력 25%

평온함 25%

애매함 20%

뿌듯함 15%

기쁨 15%


3. 무슨 생각이 떠올랐나요?

오늘은 처음으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햇빛을 보고 좋다는 감정을 느꼈을 때 그걸 흘려보내지 않고 메모한 내가 스스로 놀라웠다.
예전 같았으면 "그래서 뭐?" 하고 넘겼을 텐데
요즘은 그런 순간이 사라지지 않게 붙잡고 싶어진다.
설거지를 하고 나니 엄마가 “고마워”라고 했고,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조금 따뜻해졌다.
이런 일들이 별게 아닐 수도 있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꽤 큰 일이다.


4. 활용한 기법은 무엇인가요?

감정 순간 포착: 긍정 감정이 스쳤을 때 즉시 기록

작은 행동에 의미 부여: 설거지와 창문 열기를 ‘감정 반응’으로 연결

자기 칭찬 문장 시도: ‘잘했다’는 말을 내 안에서 끌어냄


5. 새로운 생각은 무엇인가요?

나는 여전히 무기력하고, 해결된 건 없지만
그 안에서도 순간순간 감정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걸 느꼈다.
감정일기를 쓰면서 그 흐름을 놓치지 않게 되었다.
감정이 크고 선명하지 않아도
내가 그것을 느끼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6. 도움이 된 점은 무엇인가요?

'기분이 좋았다'는 순간을 붙잡아 쓰는 일이
내 하루를 조금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무기력만 가득하던 하루에서
감정 하나를 분명히 말할 수 있게 된 것이 큰 변화였다.
내가 쓴 글에 내가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7. 나에게 어떤 긍정적인 말을 하면 좋을까요?

“오늘의 널 나는 잘 기억할 거야. 기분 좋다는 말을 해준 너를, 스스로 움직인 너를, 작지만 분명히 살아낸 너를.”


8. 기록 후 주요 감정 백분율

평온함 30%

뿌듯함 25%

기쁨 20%

애매함 15%

여운 10%


9. 일기 쓰기 전과 후의 변화

오늘은 처음으로 ‘기록하기 위해 사는 느낌’이 아니라
‘살았기 때문에 기록하고 싶어진 날’이었다.
감정을 꼭 극복하거나 해결하지 않아도,
그걸 그냥 느끼고 말로 써보는 것만으로
마음이 꽤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지금의 나는 어제보다 확실히 조금 더 살아 있는 느낌이다.




총평 – ‘방에 머무는 스무 살’ 재현의 감정 여정


재현의 감정일기 4편은 단순한 일기 기록을 넘어, 내면의 감정 언어를 되찾아가는 회복의 과정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느껴졌던 자신이, 점차 자기 감정을 식별하고 표현하고 수용하는 단계로 나아간다.


1편에서는 귀가 후 무기력과 소속감 결여 속에서 정체성 혼란을 겪는 재현의 고립된 상태가 드러난다. ‘감정의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숨이 쉬어졌다’는 표현에서, 언어화의 치유 효과가 인상적이다.


2편에서는 죄책감과 자기혐오가 스스로를 가두는 주된 감정으로 부상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 ‘쉬어도 괜찮다’는 내면의 타당화를 처음 시도하며, 감정을 행동이 아닌 심리적 맥락에서 바라보는 전환이 시작된다.


3편에서는 “감정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애매함과 공허함에 대한 자각이 깊어진다. 이는 흔히 청년기 은둔자가 겪는 알렉시싸이미아(alexithymia, 감정표현불능) 현상에 가까우며, 그런 상태를 받아들이고 천천히 감정을 탐색하려는 훈련의 의미가 드러난다.


4편은 처음으로 ‘긍정 감정’을 명확히 포착하고 표현한 장면이다. 설거지, 햇빛, 엄마의 고마움 한마디 등 작은 일상에서 정서적 반응을 느끼고 그것을 문장으로 적어내는 데까지 도달한 재현은, 감정일기를 통해 ‘살아있다’는 감각을 되찾는다.



남기고 싶은 메시지

“감정을 모르는 상태도 하나의 감정이다.”

“무엇이든 느끼는 순간, 살아 있는 증거다.”

“작은 감정의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회복은 시작된다.”


재현은 말없이 방에 머무는 이들에게 감정의 언어를 되찾는 여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당신은 오늘, 어떤 기분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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