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가 있으면 좋겠다

by 석은별

작년 이맘때, 내 바람은 단순했다. 그저 딸이 입시에 성공해 훨훨 날아가길 바랐다. 멀리 떠나보내는 서운함이야 감수할 수 있었다. 이후 아이의 삶이 조금 더 편안해진다면, 당분간 지원해야 할 부분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남편도 자기 몫을 벌고 있었고, 내가 버는 수입으로도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부족함 없이 해낼 수 있으리라 여겼다.


결과는 기대대로였다. 아이는 입시에 성공했고, 나는 홀가분한 마음을 안았다.

이렇게 꿈을 안은 한 인생이 세상 속으로 던져지는구나. 장하다, 멋지다. 여력이 된다면 졸업까지는 충분히 밀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하리라 믿었다.


그러나 아이가 입학을 앞두고 상황은 급격히 달라졌다. 남편의 사업이 곤두박질쳤다. 이전부터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었다지만, 그래도 꾸준히 이어오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무슨 음모라도 얽힌 듯, 일이 풀리지 않기 시작했다. 그의 경제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속도가 그렇게 빠를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사업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지만, 들어오는 돈은 없고 나가는 돈만 늘어났다. 한두 달은 괜찮을 줄 알았다. 서너 달도 버틸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러나 반년이 지나고 1년이 가까워지고 있다는걸 직시하자 두려움이 엄습했다. 처음부터 무서워했어야 했을까. 아니, 그때는 ‘그동안 벌어놓은 게 있으니까’, ‘내가 벌고 있으니까 괜찮다’는 마음으로 버틸 수 있었다. 정말로 버텼으니까.


그러다 딸아이 자취방을 얻고 월세를 내기 시작하면서 현실이 피부로 와닿았다. 이번 달에는 아들의 음악학원을 끊었다. 그토록 좋아하던 곳이지만, 입시가 아닌 취미라는 이유로 가장 먼저 줄인 것이 아들의 음악이었다. 마음이 아팠다. 아니, 화가 났다.

남편에 대한 화인지, 이 얼어붙은 경제에 대한 화인지, 아니면 무감각하게 있다가 당했다고 느끼는 나 자신에 대한 화인지... 나도 알 수 없다.


20년 넘게 살아오면서 남편이 1년 가까이 돈을 갖다 주지 않은 적은 처음이다. 남편은 처음엔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으려 애쓰더니, 이제는 자포자기 상태다. 격려와 지지도 한계에 부딪혔다. 다툼은 없지만 냉소적인 태도가 쌓여가던 중, 또다시 큰돈이 필요한 일이 생기자 남편은 나를 탓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벌어다 준 돈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이 모양이냐.” 기가 막혔다. 20년 넘게 벌어온 것을 이제 와 한꺼번에 다 갚으라는 식이다.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해서는 안 될 말이 있지 않은가. 나는 가정을 꾸린 뒤, 전업과 맞벌이를 오가며 한 번도 ‘남편을 위해’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에 당연히 감당해야 할 몫이라 여겼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남편의 본성은 달랐다. 책임져온 삶에 대한 보상을 무책임으로 돌려주려는 듯, 괴물 같은 얼굴을 드러냈다.


왜 하필 딸이 잘 된 후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이 과정은 누구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일까.


문득 훌쩍 떠나고 싶다는 충동이 든다. 나 역시 무책임하고 싶다. 진심으로 벗어나고 싶다.

솔직히 지금의 심정으로는 ‘정신승리’ 따위로는 버티기 벅차다. 남편이 망하더라도 나는 괜찮다며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버겁다.

막막하다. 어찌해야 할까.


딸이 입시에 성공하면 내가 번 돈 일부를 지원하리라 생각했는데, 아이가 입시에 성공하자 남편의 사업이 무너졌다. 나는 졸지에 가장이 되었고, 딸은 학교에서 가장 가난한 학생이 되었다.


왜 이런 일이 생겨나는 걸까. 만약 인생에도 ‘미리보기’가 있다면, 당장이라도 펼쳐보고 싶은 심정이다.

월요일 연재
이전 25화그들이 살지 못했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