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세상을 떠난 나이가 가까워질 무렵, 나는 깊은 물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물에 대한 공포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언젠가 밤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마주한 캄캄한 밤바다. 하늘과 수평선조차 구분되지 않는 어둠 속에서 오직 파도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 캄캄함이 마치 나를 유혹하는 듯했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순간, 누군가 내 옷깃을 바짝 잡아당겨 끌려가지 못하게 막는 느낌을 받았다. 그 짧은 경험 속에서 나는 어쩌면 내 무의식 깊이 숨겨놓은 어떤 비밀이나 두려움이 있는 것은 아닐까 궁금해졌다.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때때로 이 모든 것을 팽개치고 그만두고 싶은 충동이 밀려온다. 기회만 생긴다면 모든 것을 멈춰버리고 싶다는 열망. 스스로 멈추기 어려우니 어떤 외부의 힘이 나를 멈춰주기를 바라는 간절함.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챗바퀴 속 다람쥐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에 대한 환멸. 멈춰 서라는 신호임에도 어디서 어떻게 멈춰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에 짓눌릴 때가 있었다.
밤바다의 공포는 바로 그 모든 충동을 현실로 만들어줄 것만 같았다. 굴복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공포에 짓눌렸다는 핑계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나. 그러나 또 다른 나는 필사적으로 나를 잡아당기며 빨려 들어가지 않도록 막고 있었다.
어둠과 빛이 팽팽하게 맞서는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앞으로 나는 어쩌면 그들이 살지 못했던 삶을 살아가야 하는 막막함 때문에 이러한 순간들을 더 자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를 이 세상에 오게 한 그들은 짧은 인연 속에서 다른 세상으로 떠나버렸다. 그들을 그리워하며 살았고, 원망하며 살았으며, 이제는 고마워하며 살아가야 할 시점에 다다른 것이다. 막막하지만 뿌듯한 마음으로 말이다.
며칠 전 꿈을 꾸었다. 어릴 적부터 좋아하던 가수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귀에 울렸다. 가사가 선명하게 떠올랐고, 나도 모르게 그 노래를 따라 부르고 있었다. 그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 꿈에서 깼다. 꿈속 노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였다. 오랜 시간 익숙해진 꿈 분석 작업을 시작했다. 의미 없이 흘려보낼 수도 있지만, 때때로 무의식의 메시지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놓쳐온 것을 발견하고, 지켜야 할 것을 지킬 수 있게 된다. 꿈은 항상 통합을 위한 재료들을 곳곳에 뿌려놓는 장난꾸러기 같다. 하지만 그 꿈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면, 꿈속 상징들은 현실을 살아가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미 그들이 살아보지 않은 방식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것은 순전히 그들 덕분이다. 그들이 내게 남긴 수많은 흔적 덕분에, 나는 내 아이들에게도 충분히 양질의 것들을 전해주려 노력했고, 나만의 방식으로 남겼다. 걸핏하면 도망치고 싶고, 포기하고 싶고, 열심히 하던 것을 망치고 싶었던 충동들을 잘 다스려 온 흔적이기도 하다. 그들이 남겨준 정신의 유산을 잘 들여다보고, 해체하고, 새롭게 창조하며 살아내고 있는 나의 삶.
밤바다에서 느꼈던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공포와 동시에 나를 끌어당겨 안심시켰던 그 흔적은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이다. 우연히라도 다시 그 밤바다를 만나게 된다면, 꼭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다. 그토록 새카맣게 보였던 것이 실제였는지, 아니면 나의 두려움이 투영된 것이었는지. 이제는 담담하게 마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