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인생을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한때 나는, "아무도 내게 이렇게 살라 저렇게 살라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막막함 때문에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다는 바람을 품었다.
그것은 '부모가 없으니 동생들 책임져라!'는 고모의 말이 내 목표가 되는 것에 대한 반항이 선택한 절규였을지도 모른다.
스무 살까지는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맏이여도 전적인 책임에서 비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스무 살을 넘긴다는 것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단칼에 나를 베어 거대한 세상 속으로 던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었다.
‘용기 있는 아이, 책임감 있는 아이, 믿음직한 아이, 착한 아이, 맏이다운 맏이’라는 꼬리표는 없는 것보다 낫다고 스스로를 속였다. 하지만 마음 저 밑바닥은 그 모든 칭호를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일기장 곳곳에 살 가치보다는 살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찾아내며 나만의 은밀한 종말론 놀이를 했다. 나는 그래서 더 잘해 주고, 더 진심으로 대하며, 더 큰 사랑을 주려는 '이별 연기'를 하며 마지막을 준비했던 것이다.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다는 그 마음 안에는 “누가 나 좀 책임져 주면 좋겠다. 그럼 더 살 텐데...”라는 간절한 소망이 숨어 있었다.
멀리 계신 어머니와의 한 달에 한두 번 통화는 그저 생존 신고일뿐이었다. 그 신고마저 의무감처럼 갑갑하게 느껴질 때는 나만의 공상으로 도피했다. 어떤 영화에서처럼, 나도 떠나면 어머니께 매월 편지를 보내야겠다고. 그것이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이라고 여겼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얼마나 끔찍한 감옥인가.
사랑을 가장한 원망의 칼날이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스무 살까지만 살고 싶어 하던 나는, 어떻게 스무 살을 보냈는지 기억조차 회상해내지 못한 채 그 곱절의 시간을 살아냈다.
그리고 스무 살의 딸을 둔 어머니가 되어 보니, 그때의 나에게 미안하고 고마워 울음이 터져 나온다.
“잘 버텨줘서 고맙다.”
“망가트리지 않아서 고맙다.”
“스무 살까지만 살겠다면서 오히려 더 친절해져서 고맙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 설정했던 '스무 살까지 만의 각오'가 결국에는 나 스스로를 구원하는 힘이 되었다.
덕분에 그 어둡고 축축하며 끝이 없을 것 같던 터널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그 터널 속의 공기와 무거운 발걸음을 똑똑히 기억한다.
저 멀리 빛이 보이자 반가우면서도, 그 빛 다음에 무엇이 있을지 몰라 두려워했던 마음.
빛에 다가서자 느꼈던 상쾌함.
그 환상 같던 빛과 상쾌함은 지금까지 내 삶에 쭈욱 내려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