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고등 학교 시절의 나에게

그때의 일기장과 편지를 보며...

by 석은별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남편이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설거지까지 말끔히 해놓고 출근한 걸 보았다. 어젯밤 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잠들었고, 오늘은 일부러 늦잠을 자겠다고 가족들에게 말해둔 터라 편히 눈을 붙일 수 있었다.


문득 돌아보니, 지금의 삶은 한때 내가 간절히 바라던 모습이다.

매일 아침 억지로 몸을 깨우고, 졸린 눈을 비비며 출근 준비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규칙적인 리듬을 따라가는 것이 곧 ‘승리자의 삶’이고, 불규칙한 내 삶은 ‘패배자의 삶’ 같아 스스로를 책망하곤 했다. 그 끝에서 내가 바란 건 단순했다. 자유롭고 싶었다. 자유롭게 살면서 돈도 벌고 마음도 편하면 좋겠다고.


아마 그때는 프리랜서의 삶을 막연히 꿈꾸었던 것 같다. 주변에서는 쉰 살 전에는 프리랜서를 하지 말라며 충고했다. 생활이 불안정해지고, 돈의 맛에 휘둘리고, 일상의 균형을 잃게 될 거라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말이 기묘한 치트키처럼 들렸다. 나는 누구보다 불규칙적인 패턴에 익숙했고, 반복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변수가 있어야 살아 있다고 느끼는 사람이었으니까. 게다가 내가 한 만큼 수입이 따라온다니, 얼마나 짜릿한 게임인가. 결국 나는 그 길로 뛰어들었고, 불규칙한 리듬이 내게 묘한 만족감을 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늘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 보이려 애썼다. 남들과 같지 않은 내 처지가 싫어, 보통의 삶을 흉내 내려 애썼지만 결국 그건 나를 더 혐오하게 만들었다. 수년간 규칙적인 출근을 해본 끝에 깨달았다. 첫 출근의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고, 내 생체리듬을 무시한 채 시스템 속에 들어가는 삶은 금세 숨통을 조여왔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 가사처럼, 일정한 시간·규칙·장소에 묶여 있는 것이 나에게는 발작 같은 고통이었다.


그 발작 속에서, 나는 내 다름을 감추려 무던히도 애썼다.

남들과 달라 보이는 순간, 나는 불필요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감정과 생각을 드러내면 눈에 띄어 제거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나는 나 아닌 삶을 살았다. 그 결과로 학력과 자격, 경력은 얻었지만, 언제나 내 것이 아닌 듯한 허전함이 따라다녔다. 결핍을 메우기 위한 보상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의 나는 치열하게 고민했고 묻고 답하며 버텼다.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그 질문이 내 안에 자라났고, 친구들과 나눈 편지를 통해 더 단단해졌다. 놀랍게도 지금의 삶은 그때 내가 꿈꾸었던 모습 위에 세워져 있다.


나는 여전히 미래를 꿈꾼다.

남들과 조금 다른 내가, 오히려 자연스러운 나임을 이제는 안다. 예전엔 ‘보통의 기준’에 들어가기 위해 애썼지만, 이제는 안다. 사실 누구도 그 기준에 온전히 맞게 살지 못한다는 것을. 오히려 그 틀 안에 들어가려 애쓰는 동안, 다들 각자의 괴로움을 부정하며 견디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자신의 기질대로, 조건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짜 특별한 삶을 사는 것 아닐까.


나는 더 이상 특별하게 뛰어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남들과 다른 경험으로 살아낸 나를 자랑스러워하기로 했다. 그 시절의 나는 외로움과 불안을 인정했고, 한계를 받아들였으며, 오로지 신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 그 덕분에 지금의 내가 수십 년을 버티며 살아올 수 있었다.


외로움에 떨고, 불안에 휩싸여, 늘 막막했던 나.
그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품어내 살아준 덕분에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그동안 나는 힘의 원천을 외부에서만 찾았다. 할머니의 사랑, 가족의 희생, 친구들의 지지, 신앙의 은혜에만 고마워했다. 그러나 이제야 깨닫는다. 그 모든 순간을 버티게 한 건, 결국 외롭고 두렵고 불안했던 바로 ‘너’였음을...


고맙다.


나는 수십 년간 ‘마음을 공부한다’며 타인에게 자기와의 접촉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내 힘의 원천인 너는 외면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너는 나를 떠나지 않았다. 나를 벌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 하고, 내가 널 찾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주었다.


그 감정들이 너무 무거울 때, 죽고 싶다고 울부짖던 너.
스무 살까지만 살겠다고 다짐해야 겨우 견딜 수 있었던 너의 몸부림.
이제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을게.
너의 고통이 곧 나의 힘이었다는 것을, 나는 드디어 알았으니까.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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