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다는 말은 언제나 쉬운 듯 모호하다. 누군가에게는 안정이고, 누군가에게는 지루함이며, 어떤 사람에게는 반드시 도달해야 할 이상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 단어의 정확한 질감을 몰랐다. 마치 같은 단어를 쓰면서도 서로 다른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어릴 적 내가 본 평범함은 늘 일정한 형태처럼 보였다.
학교가 끝나면 빈집에 들어가기 힘들어 밖을 맴돌다 시간을 보내야 했던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의 모습과 나의 삶을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되었다.
가족이 함께 밥을 먹고, 휴일이면 TV 앞에 모여 웃고, 기념일이면 둘러앉아 축하를 주고받고, 아프면 누군가 곁을 지키는 모습. 그것이 내가 상상하고 동경했던 ‘보통’의 형태였다.
하지만 내 삶은 그 틀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다 식은 밥상에 혼자 앉아 있는 일이 잦았고, 밤에 아버지의 술 취한 목소리가 들리면 숨을 죽인 채 잠든 척해야 했다. 준비물이 없어 돈 달라는 말을 삼키고 돼지저금통을 깨는 일이 나의 일상이었다.그것이 나의 ‘보통’이었지만, 나는 그것을 평범하다고 부를 수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평범함을 살아내기보다 흉내 내며 자랐다. 다른 사람의 삶을 베껴 그 위에 나를 얹는 일은 언뜻 안전해 보이지만, 결국에는 내 결을 지워가는 일이었다.
평범이라는 천 위에 내가 아닌 무늬를 억지로 덮어씌우면, 그 천은 숨을 쉬지 못한다. 나는 오래도록 그 사실을 몰랐다. 남들과 같아 보이기 위해 표정을 단정히 하고, ‘좋은 사람’의 매뉴얼을 외우며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무리 매끄럽게 굴어도 내 안에서는 늘 거친 질감이 느껴졌다. 그게 바로 나의 결이었다.
결은 단순한 성격이 아니다. 삶이 지나온 방향, 감정이 흘러온 방식, 시간이 몸에 새긴 고유한 패턴이다. 어떤 사람의 결은 부드럽고, 어떤 사람의 결은 거칠며, 어떤 사람의 결은 비스듬히 틀어져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이해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썼다. 다른 사람의 결에 나를 맞추느라 내 결이 얼마나 상처 입었는지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사회는 일정한 결을 선호한다. 무난하고, 원만하고, 적당히 유연한 사람. 너무 세지도, 너무 약하지도 않은 사람.
하지만 그런 결만 존재한다면 세상은 모두 같은 질감으로 덮인 회색 천이 될 것이다. 누군가는 그 질감 속에서 안정을 느끼겠지만, 누군가는 그 안에서 숨이 막힌다.
결이 다르다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다. 결이 있다는 건 아직 감각이 남아 있다는 뜻이다.
이제 나는 사람을 볼 때 먼저 ‘결’을 본다. 말투의 질감, 눈빛의 리듬, 호흡의 길이.
그 미세한 차이 속에서 그 사람이 지나온 세계가 드러난다. 예전에는 다름이 불편했지만, 지금은 그 다름이 세상을 입체적으로 만든다는 걸 안다.
평범함은 하나의 틀이 아니라, 수많은 결들이 겹쳐 만들어내는 표면이다.
한 번은 누군가 내게 물었다.
“당신에게 평범하다는 건 뭐예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내 결을 억누르지 않고 살아도 되는 상태요.”
그 말을 하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오래 결을 숨기며 살아왔는지 깨달았다.
이제는 조금 거친 표면으로 살아가려 한다. 다듬어지지 않은 말, 불완전한 표정, 때로는 서툰 감정들 속에서도 나의 결이 느껴진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결이 다르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긋남이야말로 사람 사이의 진짜 마찰이고, 그 마찰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
평범함의 결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차분함 속에서, 누군가는 열정 속에서, 누군가는 고요한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자신의 평범을 발견한다.
중요한 건 결을 맞추는 일이 아니라, 결을 존중하는 일이다.
나는 더 이상 매끄러운 천이 되고 싶지 않다. 손끝에 걸리는 거친 질감이 내 존재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평범 속에 나를 재단하지 않고, 내 결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 그것이 내가 이제 믿는 평범함의 형태다.
하루가 끝나고 불을 끄면 손바닥에 남은 작은 감촉들이 떠오른다. 그날 만난 사람의 표정, 바람의 온도, 말의 결.
모두 다르지만, 그 다름 덕분에 하루가 완성된다. 결국 평범함은 같음이 아니라 공존이다. 서로 다른 결들이 맞물려 세상이 돌아간다.
오늘도 나는 내 결을 따라 산다. 조금 삐뚤고, 조금 거칠지만 그게 내 리듬이다.
누군가의 눈엔 여전히 이상해 보일지 몰라도 이제는 괜찮다. 그 결이 나를 닮았고, 그 결로 세상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