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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지 않은 나의 평범한 하루

by 석은별

아침은 언제나처럼 시작되었다. 창문을 열면 차가운 공기가 집 안으로 스며들고, 나는 잠시 그 공기 앞에 멈춰 선다.

예전 같으면 “오늘은 어떻게 평범하게 살아야 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겠지만, 요즘의 나는 조금 다른 질문을 한다.
“오늘 나는 나답게 살아낼 수 있을까?”

평범해지고 싶어 오랫동안 애썼던 나는 이제야 조금씩 이해한다. 평범함은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걸.


얼마 전, 딸과의 통화에서 나는 오랫동안 피하고 싶었던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딸이 겪은 상처를 이야기하는데,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그때 내가 너를 너무 다그쳤구나...’

딸은 친구 관계가 어렵다고 말했지만, 딸이 들려준 녹음된 그 아이들과의 대화 속에는 예전의 내가 있었다. 서두르게 하고, 불안해하고, 다그치던 나의 그림자.


딸의 두려움과 억울함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그 아이는 친구들에게 힘들었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내 잘못도 함께 보았다.

딸은 “친구들 이야기인데 왜 엄마가 사과하냐”고 훌쩍였지만, 어쩌면 내가 사과하지 않으면 이 아이의 상처는 또 다른 형태로 반복될 것이라는 것을 나는 직감했다.


그래서 진심으로 말했다.
“미안해. 그때 너를 너무 몰아붙였구나.”


며칠 후 딸에게서 연락이 왔다.

“엄마가 그때 그렇게 말해줘서 그런지 훨씬 가벼워졌어요. 그리고 내가 나를 몰아부친 만큼 다른 사람들도 나를 막 몰아붙이는 걸 그냥 두고 있었다는 걸 알았어요. 이젠 안 해도 되는 건 안 하려고요.”


그 말이 내 하루의 중심을 흔들었다. 내가 치유되는 과정이 딸에게도 파문처럼 번져가는 걸 처음 보았다.

이건 결코 ‘평범한 하루’의 일부가 아니었다. 하지만 가장 평범해지고 싶었던 내가 결국 이렇게 나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평범을 확장시키고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나를 미소 짓게 했다.


나는 늘 ‘남들이 사는 보통의 일상’을 부러워했지만 정작 나의 평범함은 다른 곳에 있었다. 창문을 열어 하루를 시작하는 작은 루틴, 커피를 내리는 소리, 일을 하다 잠시 멈춰 숨을 고르는 순간들, 그리고 용기 내어 딸에게 사과한 어느 날...


남들과 같아지려던 평범함은 오히려 나를 더 멀어지게 했지만, 내가 나답게 살아내는 하루들은 딸과 나를 조금씩 회복시키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종종 생각한다.
“아, 이것이 나의 평범이구나.”

누군가는 당연하게 지나칠 일들이 내게는 긴 시간 끝에야 도달한 일들이었고, 그 과정 하나하나가 기적처럼 느껴졌다.


저녁 무렵, 딸에게서 짧은 메시지가 왔다.

“엄마, 오늘 얘기해줘서 고마워. 나도 노력해볼게.”

그 메시지는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서 내가 오래 꿈꾸어온 가족의 새로운 리듬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는 신호처럼 보였다.


나는 평범하지 않지만, 그래서 더 평범한 하루들이 가능해지는지도 모른다.

남들과 다르게 흔들리고, 다르게 회복하고, 다르게 사랑하는 방식이 결국 나만의 일상이 되어간다.


이제는 알겠다. 평범해지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내 방식대로 살아내는 것. 그게 진짜 평범의 시작이었다.

잠들기 전, 나는 조용히 속삭인다.

“오늘도 무사히 살아냈다. 나답게, 그리고 조금 더 진심으로.”

그 한 문장이면 충분하다.

나는 여전히 평범하지 않은 나의 하루 속에서 가장 나다운 평범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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