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평범한 사람’을 연기했다.
대화 중에는 적당히 웃고, 분위기를 읽고, 질문이 오면 정답처럼 들리는 말을 골라냈다.
감정이 요동칠 때도 티내지 않았고, 속에서 들끓는 생각은 조심스럽게 다듬어 단어의 틀에 끼워 넣었다. 겉으로 보기엔 매끄럽고 무난했지만, 그 무난함 안에는 끊임없는 연습과 피로가 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나 자신을 믿지 못했다.
솔직하면 멀어질까 봐, 진심을 드러내면 불편해질까 봐, 언제나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사람들 틈에서 튀지 않기 위해 감정을 낮추고, 자신의 색깔 대신 주변의 색을 입었다.
그렇게 완벽하게 섞여드는 법을 배웠다.
그 기술은 나를 사회 안에 머물게 했지만, 동시에 나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했다.
평범을 흉내 내는 일은 생각보다 정교한 작업이다.
유행하는 말투를 익히고, 대화의 리듬을 맞추고,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기준선을 늘 머릿속에 띄워 둔다.
하지만 그 기준은 언제나 남의 것이다.
나는 늘 그 기준에 자신을 대입하며, 부족한 부분을 메꾸느라 바빴다.
정작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문득, 모든 것이 평온해 보이는 순간에 이상한 피로가 찾아왔다.
아무 문제도 없는데, 마음은 텅 비어 있었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을 흉내 내는 사람’으로 살아왔다는 것을.
남들의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내 안의 진심은 점점 무뎌졌다.
그리고 그 무뎌짐이야말로 내가 잃은 가장 큰 감각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그래도 잘 살아왔잖아.”
하지만 ‘잘’이란 말 속에는 방향이 없다.
나는 괜찮아 보이기 위해 괜찮은 척을 했고, 평범해 보이기 위해 감정을 삭제했다.
그 삭제의 결과는 안정이 아니라 무감이었다.
나는 나를 안전하게 만드는 대신, 서서히 희미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다 아주 사소한 순간에 균열이 생겼다.
회식 자리에서 농담이 오가던 중, 누군가의 말에 이상하게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다들 웃고 있는데, 나는 웃는 얼굴을 유지한 채 속으로 ‘이게 왜 웃기지?’라고 중얼거렸다.
그 순간, 내 안에서 어떤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진짜로 있지 않았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내가 아닌 사람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고독한 일인지 처음 실감했다.
그 후로 나는 조금씩 연기를 내려놓았다.
대화에서 모르는 건 모른다고 말했고, 마음이 불편한 자리에선 웃지 않았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던 버릇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내 표정은 조금씩 진짜로 돌아왔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내가 생각한 만큼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요즘 표정이 편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 ‘흉내 내던 나’도 나였다.
그건 부정해야 할 가짜가 아니라,살기 위해 만들어낸 보호색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진심을 숨겨야 안전할 수 있었고, 그 연습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 가짜 속에서 진짜를 준비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제는 그 모든 역할에 고마움을 느낀다.
억지로 웃던 날들도, 맞추려 애쓰던 시간들도 결국 나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 과정을 거쳐야만 진짜 나의 리듬이 어떤지 들을 수 있었다.
평범을 흉내 내던 내가 결국 나의 평범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남들처럼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
내가 나로 살고 있는 한, 그 자체가 이미 평범하다.
평범은 닮음이 아니라, 지속이다.
거짓된 나를 통과해 도착한 지금의 나.
그 여정이 내게는 가장 진짜였다.
오늘도 나는 나의 리듬으로 하루를 보낸다. 누군가의 눈에 이상해 보여도, 누군가의 기준에 어긋나 보여도 상관없다.
그 모든 어긋남이 모여 내 결을 만든다.
나는 더 이상 흉내 내지 않는다.
다만 내 안의 다양한 나를 허락한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린다.
“이제야 진짜 평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