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통을 피하려고만 했다.
어차피 부딪혀 봐야 질게 뻔하니까 다시는 아프고 싶지 않다고, 고요하고 단정한 일상 속에서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나를 가장 평범하게 만든 건 바로 그 고통들이었다. 그들은 내 삶을 흔들었고, 그 흔들림 속에서 나는 비로소 ‘살아 있음’을 배웠다.
어릴 적엔 아픔이 예외라고 생각했다.
아픈 사람은 어딘가 잘못된 사람, 상처받은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고통이 올 때마다 나는 몸을 굳혔다.
무너지지 않으려 이를 악물었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침묵으로 버텼다.
그 버팀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 단단함이 나를 고립시키고 있었다.
삶은 계속해서 나를 시험했다. 사람 사이에서의 오해, 감당하기 벅찬 상실, 예기치 않은 실패들이 연달아 찾아왔다.
처음엔 그 모든 걸 ‘불운’이라 여겼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냐고, 운명을 원망하며 몇 번이나 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고통들이 지난 자리에는 언제나 조금 더 단단한 나, 조금 더 온전한 내가 남았다.
고통은 나를 부서뜨리려는 게 아니라, 내 틀을 다시 빚는 과정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부서지는 순간에야 진짜 결이 드러난다는 걸.
누군가에게는 평온이 평범함이라면, 내게는 그 고통을 통과한 다음의 조용함이 평범이었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남은 정적, 그게 내 삶의 평온이었다.
나는 고통 앞에서 늘 두 가지 선택을 했다.
도망치거나, 바라보거나.
예전에는 늘 도망쳤다.
하지만 언젠가부터는 도망칠 힘조차 없어서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상하게도, 그때 처음으로 고통이 나를 삼키지 못한다는 걸 알았다.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때 고통은 조금씩 모양을 바꿔 나를 지나갔다.
그때의 깨달음은 단순했다.
고통을 견디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나를 놓아두는 법을 배우는 것.
몸이 버텨내는 동안 마음이 자란다.
그 느리고 서툰 성장의 과정이 결국 나를 ‘평범하게’ 만들었다.
극단의 끝에서야 나는 비로소 보통의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고통이 내게 가르쳐준 것은 평범이 결코 가벼운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건 싸워 얻어낸 균형이고, 한때 잃었던 자신을 되찾는 회복이다.
사람들은 종종 말한다.
“힘들었겠어요.”
하지만 나는 이제 대답한다.
“그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어요.”
이건 미화가 아니다. 그저 진실이다.
고통은 내게 감각을 되돌려주었다.
슬픔 덕분에 기쁨이 깊어졌고, 불안 덕분에 안정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아픔을 겪기 전엔 평범한 하루의 온도를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하루가 얼마나 값진지, 그 고요함이 얼마나 어렵게 얻어진 선물인지.
이제 나는 누군가의 고통을 쉽게 위로하지 않는다.
‘괜찮을 거예요’라는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그 말이 때로는 마음을 닫게 만든다는 걸 안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그 자리에 그냥 있어도 돼요.”
고통은 해결의 대상이 아니라 통과의 대상이니까.
그 시간을 살아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위대하다.
돌이켜보면, 내가 평범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은 언제나 고통의 그림자 끝에서 찾아왔다.
상실 이후의 평화,
눈물 뒤의 고요,
포기한 뒤에야 오는 자유.
그건 고통이 준 선물이었다.
지금의 나는 특별하지 않다. 그저 살아남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 생존의 흔적이 내 평범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내 안에는 여전히 오래된 상처들이 남아 있지만,그 상처 덕분에 나는 세상의 결을 느낀다.
나는 이제 안다. 고통을 피하려 애썼던 그 시절의 내가 사실은 가장 인간다운 나였다는 걸.
고통을 통과하며 나는 평범함의 진짜 무게를 배웠다.
그 무게를 견딜 수 있게 된 지금, 나는 더 이상 특별할 필요가 없다.
그저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