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내 상처가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
그 크기가 내 삶의 전체를 덮을 만큼 거대하게 느껴졌다.
남들은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는데, 나는 늘 그 하루에 도착하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평온은 나에겐 먼 나라의 이야기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내 상처를 비밀처럼 숨겼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상처가 내 삶을 조금씩 다시 살아나게 했다.
그건 마치 오래된 흉터가 날씨를 예측하듯, 세상의 온도를 더 예민하게 감지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비가 오기 전 공기의 냄새, 누군가의 미묘한 표정 변화, 말끝의 진심과 억눌림을 구분하는 감각.
상처는 내게 고통만 준 게 아니라, 세상을 더 섬세하게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남겨주었다.
사람들은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상처를 ‘없애야 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감각 기관’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건 내 안에 남아 있는 또 하나의 피부였다.
누군가는 그 피부를 두껍게 덮고 살아가지만, 나는 그 민감함을 나의 리듬으로 삼기로 했다.
그 민감함 덕분에 타인의 숨소리를 듣고, 말하지 않아도 마음의 방향을 알아챌 수 있었다.
예전엔 그게 피곤했다.
늘 남의 감정에 휩쓸리고, 작은 말 한마디에도 오래 머물렀다.
그 감정의 체류 시간이 길어서 나는 늘 뒤늦게 반응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느림과 머무름이 결국 나를 깊은 쪽으로 이끌었다.
표면만 보고 지나가던 세상의 결을, 나는 오래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상처가 없었다면 나는 세상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보지 못했을 것이다.
누군가의 한숨에 담긴 무게, 작은 손짓에 스며 있는 의도, 그 미세한 신호들을 포착할 수 있었던 건
내 안의 상처가 아직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고통은 나를 둔감하게 만든 게 아니라, 오히려 감각을 되살려 놓았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지하철 안에서 어떤 아이가 울고 있었다.
사람들은 피곤한 얼굴로 외면했지만, 나는 그 울음이 단순한 떼쓰기가 아니라
두려움에 가까운 울음이라는 걸 알았다.
그 울음의 결이 내 오래된 감정과 닮아 있었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내 마음이 조용해졌다.
이해한다는 건 동정이 아니라, 그 감정을 ‘느껴본 적 있다’는 몸의 기억이었다.
상처가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제는 안다.
비범한 상처가 반드시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그 상처는 나를 인간답게 만들었다.
내가 느끼는 슬픔의 폭이 깊을수록 기쁨의 결도 더 선명해진다.
어떤 하루는 여전히 벅차지만, 그 벅참 속에서도 나는 살아 있음을 느낀다.
그 감각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나는 여전히 회복 중이다.
상처는 나의 선생이었다.
그는 고통스러웠지만 정직했다.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진짜 나의 모양을 비춰주었다.
그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솔직해졌다.
“나는 아직 완벽하지 않다.”
그 사실을 인정하자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졌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그 상처는 다 나았죠?”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아뇨, 아직도 같이 살아요.”
그건 자랑이 아니라 고백이다.
상처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살아가면서 새로운 역할을 얻는 존재다.
이제 내 상처는 더 이상 장애가 아니라 감각의 출처다.
나는 그 상처 덕분에 평범한 하루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커피 향이 진하게 느껴지고, 낯선 사람의 인사에도 마음이 흔들린다.
이 모든 일상의 세부들이 한때는 느껴지지 않던 감각이었다.
그 감각이 돌아온 건 내가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범한 상처는 나를 약하게 만든 게 아니라, 조용히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 상처를 통과하며 나는 평범한 삶의 아름다움을 배웠다.
아무 일도 없지만, 그 ‘없음’ 속에 감정의 진폭이 있다.
오늘도 그 감각으로 세상을 느낀다.
그게 내 평범의 방식이고, 상처가 내게 남긴 가장 위대한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