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사이에서 베어 먹는 사과 한 알

그냥 전화했어

by 신희

“삶과 죽음의 사이는 어떻습니까”


허수경 시인이 물어봐주는 것 같다.


“사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살았습니다”


마치 대답을 남겨놓은 것 같다.

허수경. (2016). 포도나무를 태우며. In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문학과 지성사.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모든 순간들이 삶과 죽음의 사이일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를 알아볼 수 없다면, 삶과 죽음이란 비장한 말들이 커튼 속에 가리어진, 보통의 일상에 잘 녹아들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일상에서 약간 비켜난 곳에서 어정쩡하게 죽음을 의식하게 되고 만다. 그렇다고 “사이”를 알아볼 수 있다고 말하기에는 나의 좁은 관념적 세계에 속고 있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었든, 어제와 내일 “사이”, 이 틈에서 오늘이라는 사과 한 알이 툭 떨어져 내 손에 쥐어졌다면 잘 베어 물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이것을 또 먹어야 하는 것인가’, ‘어제 그 맛이겠지’, ‘내일도 떨어지겠지’ 하는 불량한 태도이다. 한 발 물러나 관찰하고 사과의 사과됨을 인식하는 짓을 하지 않는다면, 본능만 남은 물질이었다면, 나는 하루 살기라는 사과 먹기가 즐거워지지 않을까 의문을 품을 때가 종종 있다.

일상 속에서 열심히 일하고 툴툴거리면서 견뎌내고, 그런 일과의 틈에 톡 건네진 한 톨 같은 휴식은 누리기에 참으로 달고 맛나다. 그에 비해 일과 쉼이라는 아무런 대조나 대비 없이 한없이 이어지는 휴식이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일 수 있다. 끝없는 지평선이 아득히 보이는 사막 위에 놓인 상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이런 비일상적인 생활 중에도 사건은 생긴다.


다만, 꼭 맞지 않는 일기예보보다 불친절하게도 예고 없이 거기에다가 나쁘기까지 한 소식은 결코 반갑지 않다. 주치의로부터 너의 건강은 수명이 더 짧아졌을 수 있다고 해석되는 말을 들었다. 맞닥뜨린 나쁨의 단어들 앞에서 시력이 급속도로 나빠지는 것 같다. 의사가 건넨 말들은 글자가 되어 내 눈앞에서 쿵 떨어진다. 그 말들을 따라서 고개를 떨굴 사능력조차도 사라진 것인지 나는 요지부동이다.


나쁜 말들은 한 단어씩 분리되며 서로 멀어져 간다. 한 단어들은 한 글자씩 떨어져 간다. 획들이 연결점을 잃고 하나하나 해체되어 점점 의미와 형체를 잃는다. 잘게 잘게 검고 미세한 파편들로 조각난다. 심장이 움켜쥐어도 신경계를 떨게 하는 불안의 방망이 나타나 조각난 미세파편을 두드려댄다. 것들은 내 소멸되지 않고, 의식하기 어려운 무수한 입자들로 아남아 있다. 온 세상에 흩뿌려진 것인지, 이 우중충하고 암울한 날씨에 제격이.


형체를 잃은 나쁜 말들은 무거운 공기로 나의 세상을 가득 메워, 쇠약해진 육신을 옥죄어온다. 시야에 들어오는 세상의 장면들이 휙 휙 스쳐 지나가 버린다. 나는 눈에 보이는 것들 너머에 분명 다른 무언가가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그 무언가에 초점을 맞추려 애를 쓴다. 그럼에도 어디를 응시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어떤 것도 붙들기가 어려워, 아무도 모르게 고요하게 작아지고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다.


불쑥 떠오르는 이름 하나. 빗방울에 꺼지는 촛불처럼 금세 지워진다. 거짓 평정을 비집고 다시 떠오르는 이름의 온기. 나는 고요를 깨고 전화를 건다. 뚜르르르.



나는 그럭저럭 좋았다 나빴다 하지.

그냥 네가 생각나서 전화했어.



우리는 모든 것을 잠시 잊는다. 그저 너와 내가 반갑다. 너의 분주했을 하루가 나의 꺼져갔을 하루와 맞닿는 잠시, 우리는 종알종알 살아난다. 바쁨을 부수고 나에게 집중하며 너는 전화해 줘서 고맙다고 한다. 나는 네가 있어서 고맙다고 한다. 네 이름이 떠오른 것만으로도 온기를 느꼈으므로.


한 톨 같은 대화를 손에 쥐고, 그제야 나는 사과 한 알을 와구 와구 씹어먹는다. 아삭아삭 씹히는 사과의 식감이란 사실 매 순간 새로운 것이었다. 빨갛고도 제 색이 못된 그 모습. 베어물 때의 흘리고 마는 과즙의 충분하지 않은 달콤함과 상큼함. 어찌 먹었는지 모르게 심과 씨앗만 남 되는 게걸스러움. 나는 모든 게 만족스럽다.



“삶과 죽음의 사이는 어떻습니까”

허수경 시인이 나에게 묻는다고 치자.



선생님, 저는 삶과 죽음을 잠시 잊은 듯, 오늘의 사과 한 알을 맛있게 먹었어요. 내일, 모레, 글피, 그글피, 다음 주, 다음 달, 내년, 알 수 없는 미래가 오더라도 오늘 소중한 사람과 사과 한 알을 맛있게 먹으려고 해요.


촌스럽게 답한다.

진부하게 기분이 좋다.







*커버이미지 : 요시다 아키미 『바닷마을 다이어리』 1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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