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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이은의 리뷰닷 Oct 24. 2018

2시간이면 도착하는 유럽, 블라디보스토크 여행

가성비의 여행지, 그러나 딱 그만큼

첫번째 날 


공항에 내린 첫 느낌은 나쁘지 않았다. 공항 시설이 현대적이고 시원시원했다. 여기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냉전시대 미국과 함께 양대 축을 형성하며 겨루었던 옛 소련의 군항(軍港) 도시에서 어디서나 영어가 잘 통할 거라고 생각한 것은 오산이었다.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로 유심구매를 1번으로 꼽고 있었는데, 일단 거기서부터 시간이 좀 걸렸다. 


블라디보스토크 공항 ⓒ 마음의풍경 


유심을 파는 부스의 직원은 두 명이었다. 한 명은 영어를 유창하게 했지만 다른 한 명은 영어로 소통이 안 됐다. 내가 탔던 비행기에 한국인들이 많이 있었는데 (당연히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서) 길게 줄이 늘어섰다. 부치는 짐이 없었던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비교적 빨리 나와 재빠르게 줄을 섰던 탓에 오래 기다리지 않고 유심을 구매했다. 


 

ⓒ 마음의풍경


두 번째 맞닥뜨린 건 버스. 일단 영어로 되어있긴 했는데 이상하게 표지판을 판독하기가 어려웠다. 버스가 언제 오는 건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건지 불안해졌다. 지방 도시의 정류장에도 몇 번 버스가 언제 온다는 정보가 전광판을 통해 나오는 한국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도 이런 훌륭한 시스템들이 정착된 지 얼마 안 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블라디보스토크는 국제선이 다니는 곳이고 무엇보다 '수요'가 있을텐데 왜 이렇게 대중교통 시스템이 낙후되어 있을까 궁금했다.  


한 번 타본 뒤라 이제 표지판을 설명해 보자면 러시아어 아래 붉은색으로 영어 번역을 해놓은 것인데, 가장 왼쪽칸을 보면 107번 버스가 공항에서 기차역(Railway stations)으로 간다는 것이고 오른쪽 칸에는 버스가 어떤 장소에 서는지 표시되어 있다.   

ⓒ 마음의풍경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두 번이나 택시를 타라며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을 만났다. 한 명은 '노 땡스'라는 대답을 알아들었지만 다른 한 사람은 구글 번역기를 내 얼굴 앞으로 들이댔다.


구글 번역기같은 장비가 좀 더 보편화되면 굉장히 많은 일상의 변화가 생겨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전혀 컴퓨터 친화적일 것 같지 않은, 몸집이 크고 털이 많아 '붉은 곰'을 연상케 하는 커다란 남자가 구글 번역기를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 적응 감수성'이 아니라 '필요'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대충 사람들의 분위기를 보니 표지판 아래에서 기다리면 버스를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약 20분 정도 기다린 끝에 107번 버스가 정류장에 도착했다. 









107번 버스라는 것을 알아볼 방법은 종이로 붙인 안내문뿐이었다. 운전기사는 일수가방 같은 걸 들고 버스에 올랐다. 러시아어가 아니면 전혀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건 큰 문제였다. 


고속도로를 타고 가면서 바라본 거리는 한국의 고속도로를 카고 갈 때와 유사하다고 느꼈는데, 굴둑에서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시내 쪽으로 다가왔을 때 육교들을 보게 되었는데 특이한 건 경사를 낮추기 위해 여러 번 굽어진 계단과 비닐하우스처럼 모두 천장이 있다는 사실. 비와 눈바람이 몰아칠 경우 대단히 유용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여름에는 찜통처럼 덥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났다.


혁명광장에서 내려서 걸어서 숙소 쪽으로 이동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처음 보는 신기한 풍광에 약간 들뜬 느낌이 있었다.

첫인상은 지저분하다는 것. 건물들의 느낌은 유럽풍이 맞긴 했으나, 정신없이 차가 정차되어 있고 길이 청소가 안 되어 있고, 건물의 외벽이 떨어져 나가 있고, 도로 공사 중인 표지판도 규격화된 플라스틱이 아니라 나무로 된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정돈이 안 된 느낌이었다.


가장 큰 문제는 공기였다. 이 문제는 나 보다는 내 아들이 더 심각하게 느낀 것이었는데, 일단 깜짝 놀랄 정도로 매연이 많았다는 것이고(오래된 경유차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두 번째로는 사람들에게서 풍기는 특이한 냄새였다. 어떻게 느끼기엔 향수 냄새 같기도 한데 남자에게서도 나고 장소에서도 났다. 처음 호텔 방에 들어왔을 때 아들은 구역질을 할 정도였다(그런데 곧 적응이 되었다.). 

 

우리가 묵는 호텔을 눈 앞에 두고도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영어로는 'equator'인데 러시아어로는 'KBaTOP'이었다.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특정 문자를 발음이라도 읽을 수 있다는 것과 그렇지 않다는 것은 차이가 매우 컸다.


호텔의 첫 느낌은 '역시'였다. 익스피디아에서 싼 값에 얻게 되는 호텔이 모두 거기서 거기였는데, 그래서 익스피디아는 좀처럼 호텔의 외경을 공개하지 않는다. 호텔 입구와 로비의 분위기는 호텔이라기보다 지방 중소도시의 회사 같은 분위기였다. 로비에는 아시아인 2명이 앉아 있었다. 아마도 한국인 또는 중국인이었을 것이다.

키를 받아 올라갔다. 요즘 호텔 키는 대체로 카드로 된 것을 쓰지만 여긴 동그란 플라스틱 열쇠고리에 달려있는 전통적인 열쇠였다.



우리가 3 사람이 한 방에서 묵겠다고 했었기 때문인지 우리 방은 가장 꼭대기 층인 9층. 맨 마지막 방이었다. 바다 쪽. 여기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전망인 셈이었다. 내부 인테리어를 다시 한 듯 방의 전체적인 느낌은 정갈했다.


짐을 풀고 나가서 첫 번째 느낌은 이 도시의 공공예술이 발달되어있다는 점이었다. 옅게 그려진 고래 벽화, 강렬한 느낌의 붉은색 추상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아이맥스 극장 옆이었다. 붉은 눈을 가진 호랑이도 나름 작품성이 느껴지는 동상이었다.


아들이 밥을 먹기로 생각을 했던 곳은 러시아, 그루지아 음식을 파는 곳이었다. 그루지아식 만두와 서울에서도 먹어본 일이 있는 그루지아식 피자를 시켰다. 그루지아식 만두는 커다랗게 부푼 채로 나왔는데 어떻게 먹는 건 줄 아냐고 물어봐서 모른다고 했더니 그 안에 들어있는 증기를 빼고 납작하게 만들어줬다. 샐러드도 시켰는데 샐러드의 맛은 독특했다. 특히 흰색의 치즈인지 오징어인지 모를 것은 굉장히 짰다.


왼쪽에는 주방이 있었다. 흰색 요리모를 쓴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같이 흰색이었다. 그러고 보니 백인들만으로 구성된 주방을 본 경험이 없었다. 미국에서도 주방은 들여다볼 수 없거나, 히스패닉 아시안 등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엉뚱한 상상을 했다. 외계인들이 주방에 가득한. 피부색은 그저 '차이'일뿐인데 우리의 생각 속에 강한 권력관계로 들어있는 것 같다. 적어도 나는 그러한데, 우리 아이들 세대는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아들은 음식의 맛에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맥주 탓에 배가 불러서인지 일찍 물러섰다.


값을 치르는데 찍혀 나온 값에 돈을 좀 더 내야 한다고 한참 얘기를 했다. 팁을 받아내기 위한 전략인 것 같았다. 1,500 루블을 내고 나왔다. 20을 곱하면 약 3만 원으로 맥주 두 잔에 요리 두 개 샐러드면 그리 나쁜 가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걸어서 아르바이트 거리를 지났다. 아르바이트 거리에는 동양인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한국 여자 관광객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여러 가게가 있었지만 발길을 붙잡을 정도로 매력적인 가게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냥 건물의 아름다움 - 과거가 현재에도 공존하는 - 때문에 관광자원이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꼭 아현동 굴다리처럼 철로 위를 지나게 된다. 저 철로가 시베리아를 횡단한다. 굴다리 벽 아래에 구멍이 뚫려있기도 했다.


내리막길을 걸으며 정체불명의 가게가 있었다. 이 도시에는 가끔 정체불명의 가게들을 볼 수 있는데 그건 우리나라도 연남동 일부 합정동 일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중국인을 위한 면세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봤다. 


사실 그곳 말고도 중국어로 표시한 표지판들을 많이 보게 된다. 그만큼 많이 관광객들이 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혁명광장은 생각했던 그런 느낌이 아니었다. 중앙에 깃발을 든 조각상이 있고 그를 둘러싸고 다른 조각상이 배치되어 있고 오른편에는 새로 짓고 있는 (복원 중인 것은 아닌 듯)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 있었다. 그런데 바닥이 아스팔트로 되어 있고 조각상 외에는 아무것도 볼만한 것이 없어서.. 그냥 느낌은 여의도 공원 태극기 광장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광장 한 편에는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타고 온 것으로 보이는 고속버스들이 즐비했다. (나중에 보니 그 가운데는 한국인 단체관광객도 있었다.)


광장에 현지인들을 보기 어려웠다는 점이 아마도 광장의 분위기를 더 멋없게 만드는 점이었을 것이다.

광장 전면에 건물들도 인상적이지 않았다. 특히 오른쪽 편의 건물은 공사 중이었다.



다음 행선지는 개선문. 개선문은 일반적인 의미의 개선문이 아니라 기념문 정도. 장식적인 아기자기한 건물이었다.


일반적으로 러시아 사람들의 몸집은 크고 남성적이고 투박한 느낌이 드는데, 공예품이나 개선문 같은 걸 보면 굉장히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든다. 이런 차이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사람 안에 품은 두 가지의 기질인 것인지, 혁명 이전 러시아와 혁명 이후의 러시아가 다른 것인지 궁금했다. 이건 아마도 시대의 차이일 가능성이 좀 더 높지 않을까?



아들은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였는지 몹시 졸렸다. 깜빡 잠이 들었다.


섬을 잇는 다리 아래. 거리의 예술가 들을 만나다. 고등학생 정도인지 아니면 그보다 나이가 많은지 알 수 없는데, 한 사람은 연필 소묘를, 다른 한 사람은 나이프를 가지고 합판 위에 유화를 그리고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소묘보다는 나이프로 그린 유화 - 과감하게 윤곽선을 배제하고 아주 큰 입자로 거칠게 풍경을 파악하는 -가 마음에 들었다. 만약 혼자였다면 '혹시 그 그림을 팔지 않겠느냐'라고 했겠지만 그런 걸 창피해하는 아들을 생각해 그러지 않았다.

둘 다 파마머리. 노랑에서 갈색 정도. 한 사람은 머리를 뒤로 묶었고 한 사람은 그러지 않았다. 아들은 그 둘이 남매인지 친구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여하튼 두 사람이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장면은 그 그림을 포함해 - 둘 다 수준급이었다. - 보기 좋았다.



바람이 많이 불었고 그늘이라서 반팔 차림의 나는 약간 춥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모자를 꺼내 쓰려고 한 찰나, 아들이 '가자'는 결단을 내렸다.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바다 쪽으로 나아가서 잠수함 박물관을 지나갔다. 항구 쪽에 진짜 군함들이 정박해 있었다. 서 너 척 정도. 해병들이 임무를 교대하는 건지, 멀리서 어떤 의식을 치르는 게 보였고, 수병 차림을 한 병사들이 부대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열차 선로가 구획을 나누듯 해변을 따라서 길게 이어졌는데 철조망도 없고 그냥 방치되어 있었다. 지금은 쓰지 않는 철로인지, 아니면 워낙 드물게 써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철로를 건너 혁명광장으로 이어지는 계단으로 올라가기 직전, 또 정체불명의 가게가 나타났다. 이 가게는 가게 밖으로 녹음된 듯한 광고를 하고 있었다. 그 언어 중 하나는 한국말. 역시나 광장에 왔던 단체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시설로 보였다. 밖에서 안으로 들여다볼 수 없었기 때문에 뭔가 이상한 일이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을 것 같은 '소설적 상상'을 하게 되었다.



혁명광장에서 지하도를 건너 아르바이트 거리를 지나 다시 숙소로 왔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우리는 신발을 벗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잠깐 현지시간으로 10시쯤 일어났지만 아들은 내내 아침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밤 10시 뭔가 먹을 것을 사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해 거리로 나갔다. 거리는 어둡고 열려있는 가게는 거의 없었다. 1킬로미터쯤 나갔다가 되돌아오면서 14시간 편의점 같은 곳을 찾긴 했다. 진열되어 있는 상품이 많았는데 한국산들도 있었고, 아들이 뭘 좋아할지 몰라서 컵라면 하나, 사과 하나, 배 하나를 샀다. 3백10 루블 정도가 나왔다.


2일 차 


어제, 1일 차에 빼먹은 것이 있다. 광장을 지나 아르바이트 거리 쪽으로 가고 있을 때 거리에서 구릿빛 얼굴을 가진 한 남자를 보았다. 한국인 같다고 생각하고 차림새를 보았는데 상의 왼쪽 가슴에 김일성 김정일 배지를 착용하고 있었다. 북한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아들을 불렀는데 그 호칭에 그와 함께 지나가던 일행 - 정장 차림의 여자였다 - 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생각해보니 이곳은 러시아고, 북한은 러시아와 수교한 나라이다. 따라서 러시아에서 북한인이 다니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심지어 국경을 마주하고 있지 않은가...


많이 피곤했었나 보다. 어제 오후 6시경부터 잠을 자기 시작한 아들은 일어날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코를 곤다고 나를 깨운 것을 제외하면) 나는 어떻게 할까 내내 기다리다가 아침을 먹기로 했다. 돈이 아깝기도 했고, 내일 아침에 혹시 아들이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먹을만한 것인지 아닌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식당은 4 각형의 공간이었고, 이 가운데 2면에 먹을 것이 차려져 있었다. 오른쪽 면에는 조리한 음식이, 왼쪽 면에는 커피와 빵이 있었다. 간 고기 찜과 소시지, 감자가 조리한 음식. 그리고 야채볶음 같은 것도 있었다.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가운데는 쌀죽과 그와 유사한 무엇인가 있었고, 가장 오른쪽에는 오이와 토마토 등 야채 그리고 시리얼이 준비되어 있었다. 내가 입이 짧지 않아서 그런지 요리 음식들도 다 먹을만했다.


9시경에 나갔을 때 식당에는 현지인과 동양인이 반 반 정도 앉아있었다.


이곳에 와서 느끼는 것인데, 남자-여자로 구성된 커플, 여자 3~4으로 구성된 무리는 있어도 남자 3~4 명의 한국 관광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확실히 그건 성에 따른 취향의 차이로 한 두해, 혹은 몇십몇 백 년 사이에 형성된 취향이 아니라 아마 사냥을 하던 원시시대부터 죽 그래 왔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나간 뒤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약간 슬퍼 보이는 얼굴의 여자 직원이 테이블을 치운 뒤 의자를 아주 정확히 각에 맞춰 정리해 놓는 것을 보았다. 엄청나게 고급스러운 호텔도 아닌데 테이블 의자를 아주 성의 있게 정리해놓는 것을 보면서 이곳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성실한 게 아닌가 생각을 해봤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1일 차 여행기를 정리하고 시간이 또 남아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언제나 여행을 떠나면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것이 나인데.. 세상에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여행을 와서까지 그런 강박에 시달릴 이유는 없는 거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정말 작고, 내가 여행 계획도 짜지 않은 만큼 더 여유 있게 생각하는 것이 편했다. 솔솔 잠이 왔다.


잠을 자기 전 호텔 방에 놓인 TV를 틀어 보았다. (엘지전자 제품이었다. 여기엔 에어컨 실외기도 다 엘지전자) 홈쇼핑, 뉴스, 다큐, 오락, 영화, 어린이 프로 등 대개 생각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나왔다. 


그런데 몇 가지 특이한 것들이 있었다. 우리나라 케이블 채널과 다른 건 영어로 나오는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이었다. 일부러 다 확인을 해봤는데 하나도 없었다. 원음을 들려주며 자막을 내는 건 하나도 없었고 모두 더빙을 했다. 그런데 더빙 수준이 형편없었다. 즉 원래 나오는 오디오를 지우지도 않고 그 위에 그냥 러시아 말만 나오게 하는 거였다. 두 번째 우연히 새로운 무기에 관한 소식을 전하는 뉴스 내용을 들었는데 전투기의 기체 번호, 어뢰의 스크루 부분 등 중요한 정보가 될만한 것들은 모두 가려서 내보냈다. 보다가 내셔널 지오그래피를 봤는데... 생명이 너무 다양하고 신비롭다는 생각을 했다. 보는 것이 이렇게 아름답고 좋은데 약 100년 만에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는 방식은 너무 여유가 없다.



같은 곳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우리는 2층으로 안내되었다. 러시아식 만두를 시켰는데 원피스라고 쓰여있는 걸 보지 못했다. 달랑 한 개가 나왔는데 어찌나 놀랐던지. 러시아식 만두 닭고기 수프, 호박 수프, 피자 이런 것들을 먹었다. 1,800 루블 정도가 들었다. 여자 직원들은 명랑했다. 아들은 이들이 명랑한 이유를 '팁' 때문이 아닐까 추정했다.



빨랫줄에 옷가지를 널어놓았는데 가운데에는 브래지어가 걸려있었다. 아마도 장식용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음식을 준비하는 주방 앞에는 이불가지가 걸려있었다.


러시아에는 예쁜 여자 사람이 많았다. 식당에 앉아 밥을 먹으면서 두 사람을 보았다. 하나는 내 오른쪽 세시 방향에 어떤 남자와 함께 온 사람. 손님은 아닌 듯했다. 내내 연필을 들고 남자와 이야기를 했고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 이 가게의 지배인인 것 같은 여자가 그 앞에(지배인이라고 추정한 것은 다른 종업원들과 다른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남자도 잘 생겼는데, 남자보다 여자가 더 예뻤다.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공주'가 현실이라면 주인공으로 나왔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얼굴이 작고 이마는 동그라며 약간 튀어나온 듯 한 느낌이었다. 얼굴의 아랫부분은 보기 좋게 갸름했다. 눈동자는 푸른색이었고, 콧날의 선은 매우 섬세하게 내려왔다. 머리카락은 옅은 갈색에서 노란색 사이. 아주 가느다란 머릿결은 허리 아래까지 닿았다. 베이 잭 티에 무릎 위로 올라오는 청치마를 입었는데 신발은 어떤 신발을 신었는지 보지 못했다.



또 한 명은 우리 옆의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으로 자세히 관찰하지 못했다. 고개를 완전히 90도로 돌려야만 관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은발이었고, 눈동자는 회색에 가까운 검정이었다. 얼굴 형태는 완전히 달랐다. 먼저 여자가 동그란 편이었다면 이 여자는 완전한 달걀형에서 약간 각이 보탠 형태였다. 아들이 관찰하기에 더 좋은 위치에 있었는데, 아들은 이 여자가 더 예쁘다고 했다.


밥을 먹고 우리는 블라디 보스톡 시내 중심가의 끝, 중앙도로의 마지막 언덕 부분에 위치한 러시아 정교회 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이 있고 그 배후에는 커다란 숲 공원이 있었다. 밝은 건물 외벽 위에 황금색 반짝이는 푸른색 구형 지붕이 달려있는 형태였다. 내부의 모습은 사진을 찍을 수 없어서 아쉬웠는데 이태리에서 봤던 성당의 모습과는 좀 달랐다. 황금색을 많이 쓴 도상들이 앞에 죽 진열된 일종의 사당 같은 분위기가 났다. 천장은 푸른색으로 돔에서 내려오는 공간을 꾸몄다.



러시아를 특징짓는 초콜릿 같은 그 돔은 어디서 유래하게 된 것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다시 혁명광장으로 향했다. 오늘은 장이 서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장은 주로 식료품들을 팔았다. 토마토와 오이 같은 야채, 연어 등 생선류, 그리고 커다란 소시지 등 고기류, 마지막으로 이 지역 특산품이라고 하는 꿀 등을 팔았다. 차를 몰고 와서 좌판을 벌인 이곳 농부들의 인종은 대개 백인이었지만 이따금씩 동양인들도 보였다. 어제 휑 하기만 하던 광장이 그래도 활기가 있어 보였다.



어제 보았던 정체불명의 상점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내부가 어떨지 너무 궁금했기 때문이다.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나름 사람들로 북적이고 상품들이 가득 찬 활기 넘치는 공간이었다. 아들은 형에게 줄 선물을 이곳에서 사자고 했지만, 나는 어쩐지 여기서 선물을 사는 건 관광버스를 타고 온 것이 분명한 다른 사람들과 같아지는 것 같아서 싫다고 했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하상가에 들러 5개로 분리되는 러시아 전통 나무 인형을 구입했다. 800 루블. 890에서 10% 디스카운트를 받았다. 좀 더 비싸긴 했지만, 물건은 더 좋아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새로운 길을 찾았다. 길에서 이상한 건물을 보았다. 집 앞에 호랑이 상이 있는데, 그 집 자체는 지붕 골격만 남아있고 마치 폭풍우에 기와가 날아간 집처럼 되어있었다. 사연이야 알기 어렵지만. 그저 이곳의 경기가 바람을 타다가 어느 순간에 고꾸라지기도 하고 그런가 보다 생각할 뿐이다. 증축을 하려다가 콘크리트 골조만 붙어있는 보기 흉한 건물도 있다.


날이 어두워지면 나가기로 하고 집에서 잠깐 쉬었다.



아들은 '주마'라는 맛집으로 가서 해산물을 먹을 거라고 했다. 나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사전 정보가 전혀 없었다. 처음에 입구를 보았을 때도 어떤지 몰랐는데, 이중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이건 뭔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격대가 상당히 높을 것 같은 분위기의 가게였던 것이다. 음식 한 개가 약 500~600 우리 돈으로 치면 만 원에서 만 오천 원 정도의 가격. 아들이 시킨 크랩의 경우 최저 단위로 나와있는 가격이 2천, 우리 돈으로 약 4~5만 원이 됐다. 물론 우리 물가로 따지면 그리 비싼 것도 아니지만 내 입장에서 보면, 만약 내가 프로그램을 짰다고 하면 절대로 넣지 않았을 그런 코스였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아들 덕분에 이런 좋은 구경을 하게 된 거라고 생각을 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는 것이 여행의 맛이라고 한다면, 오감으로 모두 새로운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그런 장소였다. 러시아인 여성 종업원은 유창한 한국말로 우리에게 뭘 먹을 거냐고 했다. 2,000루블의 크랩을 시키자 둘이서 먹을 거면 3킬로짜리는 먹어야 한다고 1,000루블 더 쓰라고 하질 않나... 볶음밥을 더 시키도록 유도하지 않나 능수능란했다. 나는 당한다는 걸 알면서도 뭐라 저항하지 못하고 그냥 끌려가고 있었다.


가운데 바를 중심으로 양 옆으로는 계단이 있었다. 종업원들은 그 계단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사람들을 안내했다. 바 뒤에는 손님들의 자리가 있고 한쪽 벽면에는 요리를 하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도록 조리실이 배치되어 있었다.


우리가 보기에 왼쪽 계단 아래에는 디제이가 간단한 디제잉 장비로 음악을 틀고 있었다. 두 개의 곡을 잘 이어지게도 하고, 어떤 때는 베이스 음만을 강조해서 틀기도 했다. 어둠 속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비쩍 마른 모습이었다. 종업원들은 서로 장난치고 떠들고 하며 즐거운 분위기였다.


우리는 내친김에 칵테일까지 먹기로 했다. 칵테일 2잔, 볶음밥, 크랩, 맥주, 물 이렇게 먹고 4천3백 정도가 나왔다.



검은색 고무장갑을 끼고 크랩을 먹는 아들은 매우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몰랐는데 중간에 칵테일을 먹는다는 걸 친구들에게 자랑까지 했다고 한다. (카톡으로) 매우 상세한 한글 메뉴판이 있어서 그런 줄 알았지만, 이 집은 한국인 관광객이 찾아오는 성지 같은 곳이었다. 손님들 중 절반 이상이 한국 사람인 것 같았다. 나가기 직전에 어떤 아주머니가 찾아오더니 크랩이 얼마냐고 나에게 물었다. 처음 본 사람에게 반말을 하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데 그냥 '내가 어려 보이겠거니' 하고 대구를 해줬다.


한국사람을 빼고, 이 곳에 찾아오는 사람은 부유한 러시아인 같았다. 그들은 이 집이 한국인에게 점령당하는 것이 별로 기분 좋지 않을 터인데... 하는 생각을 해봤다.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안개와 함께 어둠이 내려와 해안공원의 분위기가 매우 환상적인 모습이 되었다. 꿈결 같기도 현실 같기도 한 모습이었다. 키스를 하는 연인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식당으로 갈 때 보아두었던 공연팀이 멀리서 보였다. 이른바 불 쇼를 하는 사람들.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돈을 낸 것도 아니고 전혀 기대를 한 것도 아니었는데 돈을 내고 보아도 아깝지 않은 대단히 희귀한 공연을 보게 되었다. 한 사람은 양쪽에 불을 단 봉을 돌렸고 또 다른 사람은 입에 알코올이나 휘발유 같은 걸 머금었다가 불을 뿜었다. 음악에 맞춰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어둠과 안갯속에서 잘 찍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웠다.



불 쇼를 다 감상한 뒤, 아직 가보지 않은 해안공원의 다른 쪽을 가 보기로 했다. 시간도 늦었고, 아들과 취할 정도로 술을 마실 것도 아니고 해서 직접 즐기지는 못했지만, 앉아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는 유원지, 유원지의 자유롭고 흥이 넘치는 분위기가 가득했다. 춤을 즐길 수 있는 카페, 모든 좌석이 그네인 카페... 어쩌면 매우 혼란스럽고 지저분해질 수 있을 법도 한데 나름의 질서가 있고 문란하지 않았다. 그 해변의 마지막 둑방길엔 어두움에 기대 달콤한 키스를 나누는 남녀가 많이 눈에 띄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풍경이고, 첫날 밖으로 나가면서 왜 이렇게 황량할까 생각했는데 그 도로 아래에는 반전 매력이 숨어있다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내가 잡은 숙소는 놀기에 아주 좋은 위치에 있었다.


3일 차 


아들은 11시가 되어서 일어났다. 어제 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뭔가 회사와 관련된 꿈을 꾼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늘 일정은 루스키 섬으로 트래킹을 가는 거였다. 혹시 섬에서 조난을 당할 것을 대비해 긴 옷까지 준비하고 비상식량으로 사과와 배를 넣었다. 약간 헷갈린 뒤 15번 버스를 타는 곳을 찾았다. 군인들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어서 약간 걱정이 되긴 했다. 루스키 섬은 원래 군사기지로 사용되던 곳이고 개방된 지 얼마 안 된 곳이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노란색, 그나마 현대식 버스에 15번 번호가 달린 것을 보자 아들은 기뻐했다. 첫날 공항에서 시내까지 오는 버스가 워낙 작고 낡은, 볼품없는 버스였기 때문에 크고 현대적인 버스에 대한 기대가 약간 있었던 것 같다.



버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탑승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정류장에 기다리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그 버스는 창문이 열리지 않는 통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에어컨이 나오지 않았다. 뭔가 바람이 나오는 것 같은데 단순히 통풍 장치인 것 같았다.


상황은 갈수록 나빠졌다. 처음부터도 사람이 적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다리를 건너기 전에 약 10 곳 이상을 정차했고 그때마다 사람들이 빠짐없이 탑승했다. 나중에는 출근길 2호선 지하철만큼 서로 살을 대야 할 만큼 사람들이 꽉 들어찼다. 에어컨도 없고, 사람이 체온으로만 느껴진다는 책 한 대목이 생각날 정도로 괴로웠다.


나와 아들은 서로 떨어져 있었는데 눈물을 흘리듯 땀을 흘리고 있었다. 다만, 나의 경우 그 버스에 탄 사람들을 관찰하는 건 재미가 있었다. 내 앞의 소년은 회색빛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코는 높지 않지만 눈은 깊고 눈동자는 회색이었다. 마치 붙인 것처럼 숱이 많은 속눈썹, 화장을 한 것처럼 또렷한 눈썹이 매우 강한 인상을 풍겼다. 전체적으로 매우 영리한 느낌. 손톱은 손끝까지 도달하지 않고 살이 더 나왔다. 한 마디로 캔을 딸 수 없는 형태였다.


내 바로 앞에는 연인인 듯 보이는 남자와 여자. 뒷모습이어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나와 비슷한 키인데도 엉덩이의 높이가 나보다 훨씬 높았다. 그만큼 다리가 길다는 뜻이었다. 이 두 사람은 미 밴드를 하고 있었는데, 미 밴드의 밴드가 고무 재질이 아니라 금속 재질이었다. 나도 돌아가면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전화기에 대고 뭔가 말을 하는데 그것이 자기 말을 녹음하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리를 건너기 얼마 전, 이미 타고 있던 군인들과 같은 차림의 군인 세명이 더 탔다. 이들 가운데 한 명은 여자였다. 푸른색 제복, 윗 팔뚝에 러시아 기를 형상화한 마크가 있었다. 러시아 기의 색의 조합은 익숙하지가 않다. 베레모는 남자와 여자 모두 동일하게 주황색이었다. 여자는 같은 색 보풀한 머리 끈으로 머리를 묶었다. 동그란 형의 얼굴, 머리는 갈색이었는데 속눈썹은 짙지 않은 색깔이었다. 역시 다리가 길었지만, 등 근육은 다부져 보였다.


버스에서 내릴 때쯤 우리는 거의 혼이 나가 있었다. 그리고 내리자마자 우리를 반긴 것은 작열하는 태양과 대지에서 이글거리며 올라오는 열기였다. 내리자마자 그 마음을 알았는지 택시기사가 호객행위를 했다.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아주 먼 길. 도무지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이왕 가기로 마음을 먹은 것인 만큼 우리는 물 두 병을 사들고 용감하게 길을 나섰다. 일단 도로로 가는 것은 위험하니까 아래 해변으로 가기로 했는데, 해변 쪽으로 갔다가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냥 주저앉고 말았다.


고즈넉한 트래킹 코스가 아니라 자동차가 수백 대 와 있는 국민 휴양지 같은 곳이었다. 아들은 수영복만 가져왔더라면 당장 물에 뛰어들 것 같은 분위기 었다. 나는 혹시나 물에 뛰어들 상황을 대비해 과일을 담아온 비닐로 여권과 지갑 등을 방수 처리했는데, 아무래도 더 부끄러움이 많은 젊은 나이라 팬티만 입고, 혹은 바지를 입고 뛰어들 수는 없었나 보다.



혹시 우리나라처럼 해변에 수영복을 파는 곳은 없을까 여기저기 다녀봤는데 곧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나중에 나올 때 어떤 아저씨가 검지 손가락에 피를 흘리며 찾아와 뭐라 뭐라 하는 걸로 봐서는 (아궁이 앞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는 사람한테) 어떤 기본적인 시설도 갖춰져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여기 사람들은 바닷물로 해수욕을 하고 민물로 샤워도 하지 않은 채 돌아가는 건지... 잘 이해하기 어려웠다. 많은 사람이 차를 타고 왔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는데 애나 어른이나 모두 아무런 불평 없이 경사도 심하고 자갈 투성이인 길을 따라서 내려오고 올라갔다. 속으로 '참 강인한 민족일세...'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아들에게 지금 출발하면 사람이 많지 않을지 모른다고 했다. 실제로 15번이 왔는데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되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찰나, 아까 등장했던 쌍 돌고래가 그려진 셔틀버스 같은 게 한 무더기의 사람을 쏟아놓고 갔다. 모두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고 버스정류장에 머물렀다. 우리는 그게 무슨 의미인 줄 잘 알았기 때문에 돈을 쓰기로 했다. 



길 건너에 있는 택시를 보고 얼마에 가느냐고 물었다. 600을 불렀다. 도저히 그 버스를 다시 탈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택시를 탔다. 지옥을 탈출하는 최고급 탈출선에 오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역시 에어컨을 틀지 않았지만 모두 열린 창에서 들어오는 공기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백화점 관광을 한다고 시내로 갔다. 그런데 백화점이 아니라 백화점 뒤에 있는 공간의 느낌이 참 좋았다. 가수가 공연을 하고 있었고 그 옆에는 흰색 클래식 카가 있었으며 아기자기하게 사진을 전시하는 공간도 있었다. 그런데 백화점은 백화점이 아니라 건물 전체가 ZARA라는 브랜드의 저가품들을 진열하고 있었다.



4일 차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일찌감치 숙소를 나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공항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주의할 점은 아름답게 생긴 역사 건물은 공항으로 가는 열차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점이다. 그 역사를 보고 섰을 때 오른쪽에 있는 작은 건물에서 표를 사야 하고, 거기서 열차를 타야 한다. 



또 하나, 전 세계적인 이상기후로 블라디보스토크의 여름 기온은 예년에 비해 무척 올라가는데 블라디보스토크의 대중교통에는 에어컨이 갖춰져있지 않다. 



30도에 육박하는 쨍쨍한 날, 에어컨이 없는 기차를 타는 일은 그야말로 '찜통'에 갇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게다가 추위를 염두에 두고 설계된 탓인지 창문의 일부만 열린다는 점도 알아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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