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대중음악의전당·화신연쇄점·모자아트갤러리·목포근대역사관2관
이 글을 쓰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다. 여행에 대한 나 스스로의 정리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단편적인 사진들 외에도 '목포 원도심'이라는 여행지에 대해서 사전 정보를 조금은 더 얻고 결정하고 싶은 예비 여행자들에게 말이다. 특히 아이들의 손을 잡고 방문하고자 하는 부모들을 염두에 뒀다. 그래서 제목은 검색이 잘 되도록 꾸밈없이 공식 명칭을 그대로 썼다.
일상이란 건 그렇다. 같은 공간과 시간. 몇 번을 반복해 읽어서 더는 읽어낼 새로움이 없는 책 같은. 그런 마음이었다. 나를 둘러싼 것들 내가 아닌 것들에, 내가 지치고 닳고 있다는. 그래서 나는 떠나기로 했다. 행선지는 목포로 정했다. 언제부터인가 품었던 '적산가옥'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이 나를 이끌었다. 혼자 하는 여행이어도 쓸쓸하지 않을 곳, 그렇게 믿었다.
목포 원도심은 접근성이 좋은 곳이다. 걸을 수 있는 거리에 목포역이 있다. 목포역에는 KTX가 상·하행 각각 18회, SRT도 상·하행 각 9회씩 편성되어 있다. 물론 주말에 갈 거라면 적어도 2주 전에 예약을 해 두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나는 갑자기 떠나기로 한 일정이어서 KTX대신 차를 몰고 갔다.
목포역 주변을 지날 때 한 무리의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저마다 손에 태극기를 들고 검은색 교복을 맞춰 입고 있었다. 그랬다. 3.1절이었다. 목포의 원도심(목포는 구도심이란 말 대신 '원도심'이란 말을 쓴다)은 일제강점기 당시와는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장소인데 하필 3.1절에 방문을 하다니. 참 공교롭다는 생각을 했다.
목포 원도심은 도보로 움직여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만약 차를 가지고 왔고 조금 일찍 도착했다면 공영주차장, 특히 오거리문화센터 공영주차장(전남 목포시 영산로75번길 5) 같은 곳에 차를 대고 움직이는 게 좋다. 나중에 다시 보겠지만, 오거리에는 코롬방 제과점, 씨엘비 베이커리, 고호의 책방 등이 있어서 하루 여행이라면 저녁에 들렀다 가기에 안성맞춤이다.
| 목포대중음악의전당
전남 목포시 해안로249번길 34 목포문화원
오거리에서 송도한약방, 목포 근대 민속박물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목포대중음악의전당이 나온다.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 감상의 첫 방문지로 삼기에 적절한 곳이다.
이름 때문에 '처음부터 공연장이었을까?' 생각을 하게 되는데 그렇지 않다. 1929년에 신축된 호남은행 건물로 지금은 1층과 2층 모두 전시장으로 쓰인다. 호남은행은 민족 자본 육성을 위해 1920년에 현준호를 중심으로 한 한국인 지역 유지들이 힘을 모아 설립한 은행이다. 1층에는 영상물이 상영되고 있는데, 주요 건물들을 소개해준다. 약 10분 정도 길이이니까 시간을 투자해서 보고 가길 권한다.
2층의 전시물에는 딱히 관심이 안 갔다. 나는 그보다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요즘 보는 건물은 사방이 네모난 형태이고 지붕도 따로 없지만, 근대의 건물들에는 대개 삼각 형태를 띠는 지붕이 있고 그 지붕 아래엔 나무로 된 구조물이 있다.
| 구 목포 화신연쇄점
전남 목포시 상락동1가
조금만 더 가면 구 목표 화신 연쇄점이 나온다. 사거리의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 사거리가 일제 강점기 목포에서 가장 번화했던 '긴자 사거리'였다고 한다. 1932년 붉은 벽돌을 이용해 지어졌지만 지금은 그 위로 페인트가 칠해져 있다.
처음엔 일본인 소유의 이 건물에서는 총포, 화약, 서양식 가구 등이 진열되어있었다고 한다. 한국인 서병재가 소유권을 인수해 1935년부터 1938년까지 목포 화신 연쇄점으로 사용했다. 서병재의 동생인 서병인은 독립운동가였는데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이 연쇄점 운영에 관여했다고 한다.
3월의 첫날인데도 운이 없었는지 날이 몹시 추웠다. 게다가 강한 바람이 불고 눈발이 오락가락했다. 몸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날씨 탓이었을까?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 거리에 대한 내 주관적인 느낌은 좀 '을씨년스럽다'는 것이었다. 투기니 아니니 하며 논란이 일었던 일이 무색했다. 문을 닫았거나 '임대'딱지가 붙은 가게도 여럿 보였다.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이곳 방문은 겨울을 피하는 게 좋을 것 같다.
| 빵집 오붓한생
전남 목포시 해안로237번길 24 1층
조금 더 내려가면 빵집 오붓한생이 나온다. 빵집이지만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곳인데 전형적인 일본식 주상 복합 건물이다. 긴 한 지붕 아래 여러 상가가 분할되어 있는 형태이다. 특히 빵집이 있는 이 모퉁이 자리는 옛날에 동아 약국이 있던 곳으로 1980년 5.18 민주화 운동 당시 목포 지역 지도자 안철 장로가 운영했다. 올라가 보지는 못했지만 건물 2층에는 건립 당시 구조와 왜 돗자리(다다미) 방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한다.
| 손소영갤러리앤카페
전남 목포시 번화로 62-1
이날 나는 커피를 여러 잔 마셨다. 너무 추워서 몸을 녹여야 하기도 했고, 내부를 구경하고 싶은데 그냥 사진만 찍고 나오기엔 내 낯짝이 덜 두꺼웠기 때문이다. 이 카페는 적산가옥의 1층 지붕 구조를 잘 살렸고, 안정감있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조명의 색과 벽면의 그림들, 그리고 책이 만들어낸 분위기가 아닌가 싶다. 이곳 사장님과 나눈 이야기는 뒤에 하기로 하고 일단 고양이 얘기만 하고 지나가겠다. 고양이가 두 마리 있는데 한 마리는 집 고양이, 다른 한 마리는 길 고양이다.
그런데 사진에 보이는 저 고양이, 얌전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데 조심하셔야 한다. 예고 없이 무는 버릇이 있다.
| 김은주화과자점
전남 목포시 번화로 60 1층
두 집 건너에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김은주'라는 사람 이름이 들어간 가게 두 개가 붙어있는 걸 볼 수 있다. 김은주 사장님은 목포 '번화로 60', 바로 이 집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한 번도 이사를 간 적이 없는 분이다.
공예품도 화과자도 샀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라셨다는 얘기를 듣고 다시 와서 말씀을 들어보려고 했는데 마침 김 사장님의 부모님이 찾아오셔서 함께 식사를 하시는 중이라 내가 방해를 할 수가 없었다. 잠깐 들은 얘기로는 원래 장애인을 돌보는 일을 하셨는데 직장 일을 그만두고 직접 가게를 운영하게 되었다고 했다.
| 목포모자아트갤러리
전남 목포시 해안로229번길 20-2
길 모퉁이에 자리 잡은 목포모자아트갤러리는 원래 갑자옥모자점이 있던 곳이다. 1927년에 문공언 씨가 설립하였는데 일본인 가게만 즐비하던 이곳에 이 모자 가게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유일한 상점이었다고 한다. 이 시대의 '모던 보이'들은 양복에 모자를 쓰는 것으로 멋을 내었고 그래서 이 모자점은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목포모자아트갤러리 맞은편에는 곧 새 단장을 하게 될 것 같은 비슷한 시대의 건물이 있다.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입구에 세워 놓은 입간판으로 추정컨대 커피 전문점이 들어설 모양이다.
| 꼼지락실험실
전남 목포시 해안로229번길 10
전남 목포시 번화로 31-3 등 다수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 거리에는 '꼼지락실험실'이란 간판이 붙은 건물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찾아보니까 목포시에서 '목포문화도시센터' 사업으로 운영하는 프로젝트로 '한지 무드등' 만들기, 천연화장품 만들기 등의 각종 체험사업을 하는 공간인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둘러본 3월 1일에는 모두 닫혀있었다.
| 다좌원
전남 목포시 번화로 51
목포모자아트갤러리에서 조금만 더 가면 단장을 한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특이한 건물이 눈에 띈다. 건물의 외양도 외양이지만 그 내부의 구조와 분위기가 독특하다.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원도심에서 이른바 '적산가옥'의 내부, 특히 2층을 구경해 볼 수 있는 집이 흔치 않은데(아까 설명했던 것처럼 1층은 매장, 2층은 살림집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좌원은 나무로 된 계단을 통해서 2층에 올라갈 수 있었다.
사장님은 친절하게도 사진을 찍는 걸 허락해 주셨는데, 이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데 무려 6개월이나 걸렸다고 설명해 주셨다. 지붕의 구조가 오롯이 드러나고 창을 통해서 은은한 빛이 내부로 스며든다.
| 목포근대역사관2관
전남 목포시 번화로 18
목포근대역사관2관은 동양척식주식회사목포지점으로 쓰였던 건물로 1921년에 지어졌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1908년 일본이 한국 경제를 침탈하기 위해 설립한 회사다. 안내판을 보면, 이 회사의 로 주요 업무는 일본인의 이주 지원, 식민지 지주 육성, 농장 관리, 금융 등이었다고 되어 있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서울에 본점을 두고 전국 주요 도시 9곳에 지점을 세웠다고 한다. 해방 이후에 이 건물은 '해군 목포 경비부', '해군 제3 해역 사령부 헌병대' 등으로 사용되었다.
안에 들어가 보면 엄청난 크기의 대형 금고가 있다. 금고가 어찌나 큰지 그 금고의 문이 꼭 아파트 방화문 같이 보인다. 장소의 상징성 때문인지 전시물들 또한 눈여겨볼 것들이 많았다.
| 행복이가득한집카페
전남 목포시 해안로165번길 45
근대역사관2관 대각선으로 드물게 마당이 있는 2층집이 있다.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나에게만 그랬던 건지, 원래 그런 분인지 알 수 없으나 '한 명 손님 자리는 없다'는 주인장의 고약한 인심 탓에 타박만 당하고 쫓겨 나왔다. 카페 이름이 무색하게 말이다. 여럿이면 모를까 혼자라면 들어가지 않는 게 좋을 듯싶다.
| 목포진역사공원
전남 목포시 만호동 1-33
자료를 찾아보니 목표진은 조선의 수군 진영으로 500년이 넘는 기나긴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한다. 1439년 세종 21년부터 1895년 고종 32년까지 중요한 군사적, 지리적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 이후 일본영사관 등으로 사용되었다는데 올라가 보면 왜 이곳이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다. 목포 원도심의 전경은 물론 목포항까지 내려다보인다. 뭔가 대단한 사적을 기대하고 올라갈 곳은 아니다. 그러나 목포 원도심의 전경과 정상에 우뚝 선 나무 한 그루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난 의미가 있었다.
사실 올라가는 길에 세워진 깃발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목포진역사공원에 가지 않았을 것 같다. 깃발을 세우고 관리하는 것이 큰돈이 드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 디테일이 여행지를 빛나게 하는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 목포라면 홍어라면
전남 목포시 영산로40번길 16
배가 많이 고팠던 것은 아니지만 따뜻한 국물이 간절했다. 목포진에서 내려오는 길에 라면집이 눈에 띄었다. '홍어'에 '라면'이라니. 과연 궁합이 맞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쩐지 발걸음은 벌써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음식의 맛은 홍어를 대하는 태도가 어떠하냐에 따라, 각자의 입맛에 따라 갈릴 수 있는 맛이라고 생각했다. 내 입엔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건 반찬 하나에도 정갈한 정성이 느껴졌다는 것, 그리고 나처럼 혼자인 사람도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있다는 점이었다. 홍어 1인 세트도 있었다. 흰 벽면에는 낙서가 빼곡했다. 재치 있는 글과 그림, 드러나지 않았을 뿐 숨은 고수들이 참 많다는 생각을 또 했다.
(다음 회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