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보도본부가 연예기사를 품은 이유
진짜 오래된 세대인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 하나가 있다. 할머니 댁에 놀러 갔다가... 행동거지가 굼뜬 삼촌이 미처 치우지 못한 '19금 사물들'을 목격한 것이었다. 그중 하나는 (다른 것이 무엇이었는지 마음대로 상상하지 마시라!) 당시에도 19금 딱지가 붙어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선데이 서울>이라는 제호의 주간 잡지였다.
<플레이 보이> 같은 총천연색 외국 잡지와 비교할 때 그 질이나 표현방식에 있어서 크게 차이가 나지만(기억하기에 내가 봤을 당시 컬러 사진은 몇 장 없었다), 어쨌든 미성년자인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이를테면 '빠져드는 재미'가 있었다.
돌을 던지기 전에, (돌을 던질 수 있는 자가 던지라!)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좀 더 들어보시라.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그 소재가 젊은 여자 배우, 남자 배우,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 등 매우 '핫한' 것이었다. 두 번째, 그 표현 방식도 아버지가 아침마다 즐겨 찾으시는 종이신문과는 크게 달랐다. 쉽게 쓰고 궁금한 부분을 자세하게 전달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시간이 지나 이제 종이 잡지 시장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이 표현이 좀 거슬린다면 달리 표현할 수도 있다. 종이 잡지는 과거의 영향력을 잃어버렸으며, 독자들은 과거 종이 잡지를 통해 얻던 정보를 다른 경로를 통해 얻고 있다. '두고 볼 수 있는' 종이책은 아직까지 살아남았지만, 유통기간이 지나면 시의성이 떨어지는 잡지는 상대적으로 더 크 타격을 받고 있다.
그런데,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다. 바로 <선데이 서울> 같은 주간지, 스포츠 신문 연예면의 콘텐츠들은 여전히 왕성하게 소비되고 있다. 유통경로가 달라졌을 뿐이다.
네이버와 다음, 그리고 신문사들이
연예 콘텐츠에 열을 올리는 것은 왜일까?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은 열을 올리며 이런 콘텐츠들을 광고와 함께 집중 배치하고 있고, 콘텐츠 공급자들 역시 사활을 걸고 매달린다. 포털은 '실시간 검색 1위'를 통해서 이런 분위기를 조장한다. 더 나아가 커뮤니티의 재미있는 글들을 긁어오고 재미난 연예소식을 쓸 수 있는 블로그 툴도 계속 만들어낸다. 콘텐츠 공급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키워드 어뷰징'을 통해 비슷비슷한 제목의 기사를 수십 건씩 쏟아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연예인 이름 하나만 입력해보시라. 얼마나 많은 기사들이 서로 읽어달라고 아우성을 치는지.
포털 제휴평가위원회 제재소위에 단골손님으로 올라오는 유형은 '카테고리 위반'이다. 매체가 '연예' 카테고리로 포털과 계약을 맺지 않았는데 자꾸 연예 뉴스를 포털에 송고하는 걸 말한다. 예를 들자면 A신문은 포털과 계약할 때는 '의료계 소식'을 전하겠다고 해놓고 실제로 전송하는 기사를 보니 "XXX 인형미모에..." 같은 유형의 연예뉴스를 자꾸만 보낸다는 얘기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질까? 간단하다. 이런 류의 콘텐츠를 찾는 사람이 분명히 있고, 찾는 사람이 많으면 예나 지금이나 돈이 된다. 옛날에는 잡지가 많이 팔렸겠지만, 지금은 해당 콘텐츠의 조회수(PV)가 높아진다. 즉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회사들이 돈을 버는 '지름길'이라는 뜻이다.
왜 조회수가 높아지면 돈을 번다는 것인지 잘 모르시는 분에게는 다음 글을 권한다.
https://brunch.co.kr/@storypop/134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라고 질문하고 싶은 분들이 계실 거다. SBS 보도본부가 '본격적으로' 연예뉴스 시장에 뛰어든 것 같다. <스브스타>라는 이름으로.
얼마 전 SBS 홈페이지를 살펴보다가 두 가지 새로운 카테고리가 등장했음을 알게 되었다. <인잇>이라는 이름으로 '외부필진 칼럼'을 주요 뉴스 바로 아래에 놓았고(외부필진 칼럼은 과거 종이신문이 해오던 영역이었다.), <스브스 뉴스>나 <비디오 머그>와 비슷한 비중으로 <스브스타>라는 메뉴를 배치했다.
물론 SBS는 과거에도 자회사를 통해 연예뉴스를 다뤘다. MBC 보도본부에는 연예뉴스 기능이 없지만 자회사인 imbc가 연예뉴스를 다루는 것과 비슷한 형태였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는 것 같았다. 첫 번째, 조금 전에 얘기한 것처럼 <스브스타> 메뉴를 전면에 배치했는데, 그러면서 기사의 바이라인이 달라졌다. "(구성=000 에디터, 검토=000, 사진=연합뉴스, 000 인스타그램)" 이런 식으로 '검토'라는 용어가 추가된 것이다.
'그게 무슨 차이냐?'라고 물어보실 분이 계실 거다. 겨우 '검토='가 추가된 것이 무슨 대수냐고. 그렇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SBS 내부 취재를 꼼꼼히 한 상황은 아니다. 그러니까 '억측'일 가능성도 있다는 거다. 그런데... 위 기사 '검토=' 뒤에 나온 사람은 내가 알기로 SBS 보도본부의 기자다. 이건 무슨 말이냐면 <스브스타> 콘텐츠의 생산이 별도 조직인 자회사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SBS 보도본부의 감독하에 SBS 보도본부에서 이뤄진다는 거다.
결국, 내 결론은 (결론이라기보다 합리적인 추론은) "SBS는 <스브스 뉴스>, <비디오 머그>와 동일하게 디지털 콘텐츠 유통 시장에서 잘 팔리는 '연예 기사'를 SBS 보도본부에서 품기로 결정했다."이다. '규제 천국' 공중파 방송에 비해 디지털 공간은 상대적으로 느슨한 영역이다. 이 영역에서 SBS는 '24시간 종일 중계'에 이어, '연예기사 끌어안기'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SBS 보도본부는 연예 기사를 품기로 결정했다는 것이
내 합리적 추론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사람들이 찾는, 잘 나가는 콘텐츠를 사용자들에게 주자는 것이다. 아직 '지속가능성 모델', 즉 '퀄리티가 보장되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지속 가능한 사업구조'는 나오고 있지 않은 가운데 (사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둠 속이다.), 일단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해보자는 뜻이다.
그런데 남는 문제는 있다. 우리가 소위 '저널리즘'이라고 부르는 영역과 '연예기사'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이냐의 문제이다.
군소 매체들이 '키워드 어뷰징'이나 '카테고리 위반' 등으로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를 아까 잠깐 했다. 이 경우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자주 등장하는 소명 문구가 있다.
"우리가 보낸 기사가 '연예'로 분류된다고 하는데,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현상에 대한 정상적인 기사다."
예를 들어 '아이돌 출신 A 씨가 체육관에서 여유 있는 모습으로 목격되었다.'는 기사는 복수의 매체에서 찍어내듯 쏟아냈다. 이런 기사는 '연예 기사'로 분류해야 할까 아니면 '사회 기사'로 분류해야 할까? 또 이런 기사를 독자들이 한 매체가 아니라 수십 개 매체에서 봐야 하는 것일까? 이런 딜레마 상황에서 <스브스타>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검토='의 기자는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키워드 : #연예뉴스 #스브스타 #저널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