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한 번씩 열리는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에 항상 참석하는 건 아니다. 각자가 처한 현실은 심각한데 '아 저게 답이다'라고 무릎을 칠 만한 대안을 만나기는 어렵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우선 외국의 모범사례로 소개되는 언론사들은 대개 영어권이라는 '큰 물'에서 노는 데다, 한국과 같은 뉴스 유통환경(적어도 현재까지는 포털 중심인)에 놓여있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모범사례로 제시되는 건 대개 소규모의 스타트업들로 분명히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을 확인할 수 있지만 그 새로움을 기존 언론사가 받아들여 반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다른 글에서 여러 번 언급했고, 앞으로도 다시 같은 주제에 대해 다시 글을 쓸 예정이지만, 모바일 디바이스로 뉴스 콘텐츠가 유통되기 시작하면서 많은 기존 언론사들이 '단순히 플랫폼에 올라타는 전략'을 구사하려 했지만 곧 그 한계를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독자(사용자)와의 '직접적인 연결'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이미 NYT나 워싱턴포스트, 가디언 등은 그런 모델(후원, 구독 모델)로 가고 있다.
그런데 뉴스 콘텐츠가 공짜라는 생각이 강한 데다, 그것도 포털로 전송되어 언론사 홈페이지에 연결되지 않고 포털 내에서 유통되고 끝나는 국내 유통 환경에서 '독자와의 직접 연결을 만들라'는 말은 거의 '사막에서 장미 한 송이를 꺾어오라'는 말처럼 황당한 과제라고 생각하고 고민해왔다.
한 가지 더 고백하자면, 나는 YTN PLUS라는 자회사가 운영하는 YTN의 PC 홈페이지, 모바일 홈페이지 정책에 대해 별로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었다. 광고가 너무 많고, 자극적인 콘텐츠의 노출도 많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24시간 뉴스채널'이라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그것 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규모의 구독자수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YTN 크리에이티브제작팀 서정호 팀장 발표 소재는 어찌 보면 매우 단순한 것이었다. 'YTN이 어떻게 자사 앱과 앱에 들어가는 제보 시스템을 어떤 과정을 통해 업그레이드시켰나?'였다. 그런데 나는 이 발표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첫 번째, 독자와의 연결이란 무엇인가? 두 번째, 연결을 만들기 위한 설계란 무엇인가? 세 번째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어떻게 묶일 수 있는가?
독자와의 연결은 무엇인가?
독자와의 연결을 설명하기 위해 나는 혼용되고 있는 두 가지 개념을 분명히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디어'와 '플랫폼'이다.** 우리가 매일 지니고 다니는 휴대폰 같은 모바일 디바이스는 '미디어'***이다. 즉 정보와 콘텐츠가 오갈 수 있는 통로, 길이다. 그리고 이 통로나 길을 통해 정보와 콘텐츠를 실어 나르는 택시나 버스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게 '플랫폼'이다. 한국의 대부분의 독자들은 모바일 디바이스라는 통로(미디어) 위에 포털, 페이스북, 유튜브 같은 운송수단(플랫폼)을 통해 뉴스 콘텐츠를 전달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동영상 제보는 어떨까? 제보를 생각해보면 '연결'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우선 포털 네이버 채널의 구독자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구독자가 포털을 통해서는 언론사에 제보할 수 없다. 즉 진정한 연결이 아닌 것이다. 제보를 하려면 YTN의 앱이나 모바일 홈페이지 등에 직접 접속해야 한다. (로이터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독자들이 언론사로 직접 찾아오는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다. 그것도 몇 해째.) 연결되어있다는 것은 '피드백을 줄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뒤집어 말하면 피드백을 주지 않을 때 연결은 무효가 된다. 짝사랑도 하루 이틀이지 상대가 반응하지 않으면 식게 되어 있다.
서정호 팀장은 '독자'와 '필자'의 경계가 사라질 것을 이미 예고한 발터 벤야민의 말을 모두에 인용했다.
"그것은 일간신문이 그들에게 독자투고란을 개설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중략) 필자와 독자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었다."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p.77~78
정리하자면 동영상 제보는 '독자와의 직접 연결'의 가장 완벽한 형태이다. 제보 자체로 언제나 고성능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는 사용자로서의 참여 욕구를 충족시켜줌과 동시에, 그것이 실제 방송에 반영될 때 다른 무엇보다 피드백의 강도를 더 크게 줄 수 있는 연결일 수 있는 것이다.
연결을 위한 설계
솔직하게 말하면 처음부터 이렇게 복잡하게 생각하고 제보 시스템 개선 작업을 시작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어쨌든 서 팀장이 말하는 Before, After 중 Before의 단계에서 YTN 영상 제보는 하루 한 두 건에 불과했다고 한다.
위 슬라이드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우선 고객(사용자)의 불만을 분석하고 뭐가 불편한지 테스트를 해보고, 가설을 세워보고, 고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고, 결과를 분석하고 그 분석 결과를 통해서 해법을 제시하고 이 해법을 만족시키기 위한 설계도를 그려서 실제 프로그래밍에 반영했다는 것이다.
YTN은 한 마디로 말해서 '뭘 이렇게까지 했나' 싶을 정도로 시간과 열정, 그리고 돈을 많이 들여서 시스템을 개선했다. 정말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여기서 "YTN은 왜?"라는 질문이 매우 중요하다. 다시 말해 YTN은 그냥 '제보 시스템을 고쳐보자!'가 아니라, 제보 시스템의 의미(독자와의 직접 연결의 완벽한 형태)를 분명히 인식하고 그에 합당한 투자를 한 것이다. 4년 넘게 한 번도 손을 보지 않은 채 그야말로 버려져있던 홈페이지를 개선해야 한다고 설득하느라 몇 날 며칠을 허송세월 했던 개인적인 경험이 신물처럼 울컥 넘어왔다.
효과 - 상호 반응하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밖에 노출된(크롤링 가능한) 데이터가 아니라 언론사 내부 데이터를 공개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공개할 만했다. YTN이 공개한 개선 효과는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었다. 2230%의 성장.
이 결과는 '제보를 받는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만으로 이룩한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제보를 준', '연결점을 만든' 독자에게 제보를 활용해 방송이나 혹은 모바일 디바이스에 노출시키는 '피드백'을 줌으로써 달성된 것이었다. 그야말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연결점'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독자와의 직접적인 연결점을 만들게 되자 '선순환'이 일어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지고 충성도 높은 독자가 늘어나면서 '간접 연결'이라 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에서의 영향력, 즉 구독자도 함께 늘어난 것이다.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건 이렇게 '직접 연결'의 지점이 생기면서 그 연결을 통해 쌓인 독자 정보를 이용해 새로운 서비스를 구상하는 것도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YTN은 영상제보의 패턴 - 제보가 일어난 시점과 제보의 양을 분석하고 AI로 학습시켜 '뉴스예측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포털이나 소셜미디어 등의 간접 연결만 있다면 엄두를 낼 수 없는 구상이다.
어떻게 독자들과 직접 연결될 것인가? 앞서 모두에서 얘기한 것처럼 한국의 특수한 환경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매우 어렵고 그동안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그만큼 많은 좌절이 있어왔다.
지금 후원 모델이나 구독 모델이 거론되고 있지만 현실화시키는 데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핵심 키워드는 '독자들을 직접 연결할 이유'를 어떻게 제시해줄 것인가일 것이다.
YTN의 모델이 '모든 것에 대한 답'일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동안 제대로 짚지 못했던 '직접 연결의 의미' 가운데 중요한 키워드 하나를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한다.
* 물론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민영 씨의 표현대로 "어떤 언론사들은 사주가 있어서, 어떤 언론사들은 사주가 없어서 대대적인 조직의 혁신이 이뤄지기 힘들다."
** 전통적인 정의가 아닌 데다, 이미 이렇게 얘기한 학자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학술 논문이 아닌 만큼 이 글 안에서의 조작적인 정의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