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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이은의 리뷰닷 Aug 31. 2019

댓글 읽어주는 기자, 듣똑라, 뉴닉의 실험

밀레니얼은 창조, 간부 기자는 묵인과 방조?


창조하는 밀레니얼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이 좀 뜨고 나서 팀장님에게 '고맙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내가 한 게 뭐 있냐, 그냥 놔뒀을 뿐.'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간부 기자들의 역할은 그겁니다. 쓸데없이 간섭을 해서 젊은 기자들이 무력감이 들지 않게 '묵인과 방조'해주는 겁니다." KBS 김기화 기자   


저널리즘의 미래 콘퍼런스 둘째 날 KBS 김기화 기자가 무대 전면을 채운 PPT 앞에서 말했다.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은 처음에 핸드폰 한 대로 찍었고, 촬영도 편집도 자막도 도움을 받지 않고 자기들끼리 한다고 했다. 뉴스가 끝난 밤 10시에 녹화가 시작된다. 주 52시간 때문에 고민이 되지만, 그 이유로 방송을 못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다는 말도 했다. 구독자는 8월 30일 기준 6만 8천 명이 넘었다. 


KBS라는 대형 지상파 방송사에 요즘 입소문을 타고 있는 콘텐츠가 '묵인과 방조' 덕분으로 태어났다? 직원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많을 텐데 촬영도 편집도 자막도 자기들끼리 넣는다? 



중앙일보의 팟캐스트 <듣똑라>도 2017년 기자들의 '사이드 프로젝트', 그러니까 일종의 취미로 시작됐다. 


뜻을 같이한 김효은 기자 등 3명이 주 2회 비정기적으로 하던 팟캐스트였다. 이게 회사 차원의 프로젝트가 된 건 2019년 초 '디지털 뉴스랩'이 만들어진 뒤였다. 즉 회사의 명에 의해 개발된 팟캐스트가 아니라,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팟캐스트를 회사가 품은 거였다.  


왜 그렇게 됐을까? 왜 KBS나 중앙일보 '조직'은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이나 <듣똑라>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구성원'에 의해 만들어진 브랜드를 '추수'하게 되었을까? 


발표하고 있는 김효은 중앙일보 기자 ⓒ Sungjoo Lee


우리 언론사들이 '디지털'이라는 말을 쓴 지가 한참 됐지만 여전히 기존의 관습과 생산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같은 자리에 머물며, 올드미디어의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왜 밀레니얼 세대는 올드 미디어와 멀어질까요? 한 마디로 불편하다는 겁니다. 가르치려고 들고 젠더 감수성이 떨어져요. 그리고 젊은 세대의 관심사를 잘 다루지 않죠." 중앙일보 김효은 기자  


발표가 끝났을 때 사회를 보던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가 플로어의 질문을 받아 대신 던졌다. (기억에 의존한 것이어서 정확한 워딩이 아닐 수 있다.) 


"듣똑라의 논조가 본지(중앙일보)와 상이해서 문제가 된 적은 없습니까?"


'만약 내가 김효은 기자였다면 어떻게 답할까.' 김 기자는 그들 조직의 개척자이며 창조자이겠지만 엄연히 조직의 일원이기도 하다. 회사는 회사다.


"듣똑라의 오디언스는 중앙일보와 차이가 있습니다." 


김 기자는 듣똑라의 논조나 중앙일보의 논조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논조의 차이'라는 이분법적이고 진영적인 수사의 공격을 넘어섰다. 플로어의 어떤 방청객이 이 질문을 던졌는지 그의 의도는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나는 이 질문 안에도 기존 언론이 반성해야 할 키워드 가운데 하나가 있다고 생각한다.    


"진지하게 뉴스를 보지 않는다고?"


뉴스레터 서비스를 하는 <뉴닉>의 슬라이드 중 첫 번째 화면 ⓒ Sungjoo Lee


<뉴닉>의 발표자 반다은 대표는 8개월 만에 이메일로 7만 명의 구독자를 모은 경험을 나누면서 자신들이 새로운 뉴스 서비스를 시작했던 문제의식을 세 가지로 표현했다. 


시간이 없다. 재미가 없다. 공감이 어렵다. 그래서 그들은 '알아야 하는 뉴스만', '쉽고 빠르고 재밌게', '좋은 톤 앤 매너로'를 각각의 문제의식에 대한 대안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뉴스가 너무 어렵게만 느껴지고 하루에도 올라오는 소식들이 너무 많아서 그냥 세상사에 대한 관심을 포기했었는데 이렇게 요점만 알려주시니 너무 좋아요! 다른 사람들이 뉴스에 대한 이야기 할 때 기죽어있었는데 이제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뉴닉의 독자 글 


그들이 소개한 독자 한 명의 코멘트다. 뉴닉의 뉴스레터 평균 오픈율이 약 50%에 달한다고 한다. 놀라운 통계다. 그들은 '타깃 고객과의 관계가 신뢰를 낳고, 신뢰는 더 많은 실험과 도전을 해볼 수 있는 발판이 된다.'는 기치 아래 1주년이 되던 해에 고슴이 돌잔치를 했다. 


무작정
카드 뉴스로 페이스북으로 유튜브로
달려가는 실험은 성공할 수 없다  


한때 피키캐스트가 인기를 끌자 거의 모든 언론사들은 '카드 뉴스'에 열을 올렸다. 이어 페이스북에 목숨을 걸었고 다시 유튜브로 달려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기존의 조직, 기존의 질서를 유지한 채 콘텐츠의 '형식'을 쫓아가고 있다. 언론사의 '리더십'이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 핵심 지점이 어디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밀레니얼들이 보다 못해, "창조하지 못할 거라면 그냥 '묵인과 방조'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즉 KBS와 중앙일보의 사례들은 첫 번째, 밀레니얼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모델이기도 하면서 두 번째, 기존 언론사들이 지금까지 보여온 한계를 마주 보게 하는 거울이다. 세 번째, 조직의 방향성이 내부에서 발생한 동력을 어떻게 꺼뜨리지 않고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중앙그룹은 기존 편집국의 업무시스템을 해체했고, 막대한 돈을 들여 CMS를 완전히 다시 설계했으며, 중앙일보와 jtbc 유사 역량을 묶어내 시너지를 만들어내기 위한 시도에 들어갔다. 중앙일보와 jtbc의 <hey news>에서 기자나 아나운서는 'jtbc 000', 이나 '중앙일보 000'이 아니라 'hey news 000'으로 소개된다. 


모범이자 이른바 '넘사벽'으로 늘 인용되는 뉴욕타임스. 뉴욕타임스의 CEO 마크 톰슨이 올해 열린 WNMC(월드 뉴스 미디어 콘퍼런스)에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어보자. 


마크 톰슨 대담 전체를 녹음해 동영상으로 만든 것입니다. @ Sungjoo Lee


"나는 혁신이 상급 리더로부터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혁신은 꽤 그럴듯하게 생각되는 사업계획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혁신은 오히려, 사람들이 이것저것을 해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에 관한 얘기다."  마크 톰슨 뉴욕타임스 CEO


문제의 핵심을 독자에게 다가가는 것으로 짚는다. 뉴욕타임스는 "엔지니어, 디자이너, 기자 등이 한 팀을 이루어 독자들과 더 깊은 연결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독자, 그리고 독자와의 연결을 고려하지 않은 형식실험은 모두 실패했음을 강조했다. 


"옛날에는 뉴욕타임스가 모바일에서 좀 더 신속한 것, 더 비주얼 한 것을 가지고 자랑삼았었다. 그런데... 모두가 좋아했는데, 아무도 구독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경험을 통해서 배웠고 그 경험으로부터 역설계(reverse engineered it)를 했다. 그 결과 작동하지 않는 물건에서 탈피해 3년간의 점프를 했다." 마크 톰슨 뉴욕타임스 CEO


그는 또 '젊은 독자'에게 도달하는 문제가 뉴욕타임스의 미래에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하나의 산업으로서, 우리에게 가장 큰 리스크는 플랫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연령에 따른 인구분포, 그리고 젊은 사람들에게 도달할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한 번도 젊은 브랜드인 적이 없다고 해도, 우리의 목표는 20대 후반의 사람들에게 좀 더 강해지는 것이다." 마크 톰슨 뉴욕타임스 CEO



과연, 부장이 할 일이 '묵인과 방조' 뿐일까? 


KBS 김기화 기자는 '현장 기자들이 큰 투자 없이 시작하는 걸 추천한다.'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그 이유에 대해 '해보다 안 되면 포기할 수 있고, 그때에 충격이 덜 할 수 있으니까.'라고 했다. 


김 기자의 발표를 들으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다. 악플에 일일이 답글을 다느라 힘들기도 했겠지만 경직된 조직 분위기 안에서 그런 '튀는' 실험을 할 경우 주위에서 상당한 압력이 가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왜 저렇게 튀는 거야?' 같은. 아마도 그가 말한 '간부 기자'는 부장 만을 지칭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댓글>과 유사한 MBC의 <마리뉴> 실험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http://www.imbc.com/broad/tv/culture/myLittleDesk/


이번 콘퍼런스에서 최형욱 퓨처디자이너스 대표는 사진 한 장을 제시했다. 이 사진의 출처가 되는 기사에 따르면 2005년 루카 브루노가, 2013년 미카엘 숀이 찍은 이 두 사진은 같은 장소다. 동일하게 새로운 교황이 등장할 때 모여든 군중의 모습이 담겼다. 그러나 두 장면은 완전히 다르다. 



 

지금 이대로 살아남을 수 있다면 변화는 필요 없다. 그러나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기존 언론사들은 답을 찾았는가? 아니면 적어도 찾기 위한 '필사적인 걸음'을 떼고 있는 것일까? 


"쓸데없이 간섭을 해서 젊은 기자들이 무력감이 들지 않게 '묵인과 방조'해주는 겁니다."  


오죽하면 이런 말이 나올까. '작은 실험에서나 가능한 거야.'라고 선을 긋고 눈을 감아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방송이건 신문이건 간에 디지털을 몸에 잠깐 걸치는 액세서리 정도로 생각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편집국 기자 중심, 신문 중심, 저녁 메인뉴스 중심 사고로는 어떤 해법도 나올 수 없다. 


영국의 가디언이 '웹 퍼스트'를 선언한 것은 2006년 6월이다. 


그리고, 드디어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고 발표한 것은 10년도 더 지난 2019년이다. 



#댓글 읽어주는 기자들 #듣똑라 #뉴닉 #마리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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