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이은의 리뷰닷 Mar 06. 2016

로마 테르미니 - 세 가지 난관

아들과 함께한 이태리 20일 #2 테르미니

나는 틈만 나면 사진을 찍는 사람이지만,
테르미니 주변에서 찍은 것은 없다.
그만큼 긴장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우리가 테르미니에 내린 것은 밤이었다. 나는 무차별적으로, 틈만 나면 사진을 찍는 사람이지만, 찾아보니 테르미니 역 주변에서 찍은 것은 단 한 장도 없다. 당시 역에 도착해서 숙소로 갈 때까지,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우선 시간이 촉박했다. 처음에 계획을 짤 때는 비행기에서 내리는 시간, 이동하는 시간, 레오나르도가 움직이는 시간(30~40분) 등등을 생각했을 때, 한 1시간 30분에서 1시간 40분 정도면 테르미니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비행기에서 내려서(5 터미널), 입국심사도 받아야 하고, 모노레일을 타고 이동해야 하고, 모노레일을 내려서도 한참을 걸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의 차량 배차 간격까지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렇게 테르미니 역에 도착했는데 첫인상은 매우 좋지 않았다. 우선 어두웠고, 비가 흩날리고 있었으며, 벽이며 길거리가 쓰레기와 그래피티로 넘쳐났고, 걸인들도 있었다. 인종적인 편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허름한 차림에 얼굴의 피부색이 매우 검어서 마치 특수부대 요원들이 위장을 한 것처럼 눈만 빛이 나는 사람과 마주치는 것도 익숙하지가 않았다.

두 번째로 나를 당황케 한 것은 GPS였다. 워낙 20일간의 긴 여행이었기 때문에 하루에 1만 원 이상 하는 데이터 로밍 프로그램에 돈을 지불하기는 싫었고, 그래서 데이터가 연결이 안 되어도 GPS 신호만으로 작동되는 오프라인 맵 어플을 받아갔는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현재 위치가 잡히지가 않는 것이었다. 당황스러웠다. 



세 번째,
여러 가지 난관을 헤치고 숙소 앞에 도착했는데
입구가 어디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C. Pretorio 역 지하철 B



[ 첫 번째 문제 ] 테르미니역의 낮은 밤과는 좀 다르다. 그러나 어느 나라라도 그렇듯 역 주변에는 유동인구가 많은 만큼 지저분하고 걸인도 있고 범죄의 개연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만약 비행기가 밤에 로마에 도착한다면 테르미니에서 약간 먼 곳이라도, 지하철 역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즉 테르미니 주변을 걷는 것보다는 테르미니 역사 지하에서 바로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는 편이 낫다는 얘기다. 불가피하게 걸어야 한다면  지도에서 테르미니 왼쪽 ' Via Giovanni Giolitti '는 피하길 바란다. 

 


[ 두 번째 문제 ] GPS는 나중에 켜지긴 했다. 그런데 여전히 두 가지 문제가 있다. (1) 나는 현지에서 현지 USIM을 사서 쓰는 방법을 택했는데, 아무래도 편하기는 데이터로밍이 편하다. (2) 아무래도 MAPS.ME 같은 프로그램보다는 구글맵이 훨씬 강력하다. 심지어 자동차 내비게이션으로도 부족함이 없다.

[ 세 번째 문제 ] 분명히 GPS는 내가 서 있는 장소가 호텔이라고 되어있는데 나는 아무리 둘러봐도 호텔을 찾을 수가 없었다. 정말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럴 땐 할 수 없다. 뻔뻔해야 한다.' 생각한 나는 근처에 있는 큰 호텔 로비로 들어가서 프런트에 물었다. 


"요 옆에 이러 이런 호텔 정문이 어디에 있나요?" 


 호텔 직원은 잠시 난감한 표정이 스쳐가긴 했지만 평정심을 잃지 않고 나에게 대답했다. 


"뒤쪽으로 가다 보면 문이 있고 그 옆에 벨을 누르는 버튼이 있는데 그걸 눌러야 합니다." 


즉, 조금 전 내가 서 있던 곳이 호텔 입구가 맞는데, 호텔이 항상 열려있는 것이 아니라 벨을 눌러서 대문을 열어달라고 해야 한다는 얘기인 것 같았다. 그래서 되돌아가 보니 실제로 벨 같은 것이 있긴 했다. 아래와 같은 모습이다. 


로마도 그렇고 밀라노도 그렇고 피렌체도 그렇고 워낙 오래된 건물들이기 때문에 호텔이 전체 건물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에선 모텔도 별도로 독립된 건물이지만 이태리에서는 이런 편견을 모두 버려야 한다.  특히 시내 중심가에 있는 소규모 호텔들은 다 이랬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밤에는 아예 프런트를 운영하지 않는 곳도 있다. 9시 넘어서 도착하는 경우에는 (프런트 담당자가 늦게까지 남아야 하기 때문에) 벌금조로 돈을 더 내야 한다. 예약할 때, 깨알 같은 글씨를 잘 읽어보면 명시되어 있다.  


로마의 지하철은 어둡고 지저분하다. https://plain.is/storypop/470579  ( 사실 미국 워싱턴의 지하철도 별로 다를 바 없다. 내가 타본 지하철 가운데 가장 좋은 지하철은 서울의 지하철이다. ) 그러나 사용하는 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일단 지하철 노선이 두 개 밖에 없다. 그리고 정차할 역 등의 표시가 잘 보이게 나오기 때문에 지하철 역을 놓치거나 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지하철 표는 지하철 구내매점에서 사거나 동전을 넣고 자판기에서 뽑으면 된다. 여기에 사진을 올리지는 않는데, 옆에서 다른 사람들 하는 거 한 번만 보면 따라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수준이다. 먼저 매수를 선택한 다음 액정에 넣어야 할 액수가 표시되면 동전을 넣어주면 되는 수준. 
  


시차에 적응하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장강명의 '댓글부대'를 다 읽고, 보드리야르의 '소비의 사회'를 읽었는데도 잠이 오질 않았다. 보통은 두 페이지만 읽으면 잠이 오는 책인데 말이다.

이전 01화 레오나르도는 처음이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