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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이은의 리뷰닷 Aug 30. 2020

뉴럴링크,
판도라의 상자는 열리는가?

Reviewsdot_tech&Science

일론 머스크는 괴짜다. 그는 SF적인 생각을 두려움 없이 과감하게 밀어부친다. 그가 시도하는 분야들은 하나같이 '그게 가능하겠어?'라고 생각해왔던 지점들이다. 


그는 2020년 '민간 우주시대'를 활짝 열었다. 미국의 우주비행사들이 민간 회사 Space X 가 만든 로켓을 타고 우주정거장으로 갔고 다시 지구로 귀환했다. 이제 미국은 더이상 비싼 돈을 내고 러시아의 소유즈를 이용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1단 로켓의 회수와 재사용'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일론 머스크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돌파구를 만들었다. 하늘로 올라갔던 로켓이 거짓말처럼 수직으로 다시 내려와 바다 위에 둥둥 떠있는 바지선에 정확히 내려앉는다. 


(좌) Falcon 9의 1단 로켓 회수 모습 / (우) 스타링크 위성이 지구 궤도위에 전개된 상황의 상상도


일론 머스크는 지구 저궤도를 작은 통신위성으로 뒤덮는 계획(스타링크, 1만 2천여개에 이르는 통신 위성을 발사해 전세계에 통신속도 1Gbps의 초고속 인터넷을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는 한편 태양열 지붕 사업에도 열심이다. 그는 주위의 회의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전기차를 뚝심있게 밀어부쳤고 자율주행 기술을 대중화시켰다. 모두 처음에 "이런, 미치광이 아니야?"라는 말을 하게 했던, 그러나 진짜로 성과물이 나왔던 그런 프로젝트들이다. 


그런 일론 머스크가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는 프로젝트가 또 하나 있다. 바로 '뉴럴링크' 사업이다. 뉴럴링크는 머스크가 2016년 설립했으며 직원 100명 정도의 작은 회사다. 자기 돈 1억달러를 포함해  1억5800만달러(190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뉴럴링크가 2020년 8월 28일 기술 시연회를 열었다  


머스크는 현지시간으로 8월28일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뉴럴링크(Neuralink)의 뇌-기계 인터페이스의 기술 시연회를 열었다. '통합 뇌-기계 인터페이스 플랫폼'(Integrated brain-machine interface platform) 프로젝트를 발표한 지 1년여만이다.(하단 첨부 문서 참조) 



일론 머스크가 이날 보여준 것은 3가지이다. 첫 번째는 동전 크기의 '링크 0.9'라는 이름의 뉴럴링크 칩이고 두 번째는 이 장치를 뇌에 자동으로 심을 수 있는 장치,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링크 0.9'를 삽입한 돼지였다.



링크 0.9 | LINK V0.9


'링크 0.9'라는 이름의 뉴럴링크 칩은 지름이 동전 정도 되는 크기(23mm×8mm)다. 뉴럴링크가 처음에 발표했었던 장치는 신호를 수집하는 부위와 이걸 외부와 연결하기 위한 기기가 따로 떨어져 있었던 반면 이번에 발표된 장치는 칩 속에 모두 합쳐졌다. 일론 머스크는 이 장치를 핏빗(Fitbit)에 비유했는데, 그가 제시한 프리젠테이션 화면에 따르면 인간 두개골을 열고 정수리부분에 삽입하게 되어있으며, 뇌에 삽입된 전극을 통해 뇌파 신호를 최대 10미터까지 무선으로 전송할 수 있다.  메가비트급 속도로 뇌 신호를 무선으로 송신할 수 있다. 또 충전가능한 전지가 들어있어서 애플 워치 충전장치처럼 무선충전을 하면 하루 종일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칩 이식 로봇 | SURGICAL ROBOT


일론 머스크가 처음부터 무대 위에 함께 등장시킨 것은 칩 이식 로봇이었다. 이 로봇은 캐나다 밴쿠버의 산업디자인업체 워크(Woke Studio)가 만든 것으로, 그는 1시간 안에 뇌 속에 직경 5마이크론의 미세 전극 1024개를 심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소개한 시제품은 뇌 절개를 통해 복잡한 기기를 삽입하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위에서 보는 것처럼 동전만 한 크기로 두개골 일부만 잘라내는 방식이다. 머스크는 '시술 수준'이라고 말했다. 전신마취와 출혈 없이 1시간 이내에 뉴럴링크 기기 이식이 끝나고, '아침에 병원에 입원하면 시술을 마치고 오후에 퇴원할 수 있는 정도'라는 것. 기기에 대한 미 식품의약청(FDA)의 승인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왜 이런 시술을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로봇이 한다는 것일까? 

 


머스크가 보여준 프리젠테이션 자료에는 뇌의 혈관을 피해 가느다란 실처럼 생긴 전극을 바느질을 하듯 심는 영상이 나온다. 뉴럴링크가 뇌에 삽입하는 전극 수를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이유는 전극을 매우 얇게(머리카락 4분의 1 수준인 4~6μm)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술 로봇이 혈관 등을 피해 실을 한 가닥씩 잡아서 뇌에 이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칩 이식 로봇이 뉴럴링크 기술의 핵심 요소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뇌에 칩을 심은 돼지 거투르드 | Gertrude


기자회견장 한편에는 돼지우리가 있었다. 일론머스크는 돼지 한 마리를 소개했다. 낯가림이 심한 이 돼지는 한참이나 시간을 끌다가 겨우 커튼 앞으로 나왔다. 이름은 거투르드(Gertrude). 별로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이 돼지의 머리에는 '링크 0.9'가 삽입되어 있었다. 이식 받은지 두달이 됐다고 소개했다. 


일론 머스크는 이 돼지의 머리에서 나오는 실시간 뇌파 그래프를 보여줬다. 그리고 이 뇌파의 움직임을 표현한 소리도 들려줬다. 돼지가 움직이고 음식을 먹을 때 마치 목에 방울을 매단 것처럼 경쾌한 소리가 났다. 뇌 신경의 시냅스에서 생겨나는 스파이크들이 뇌에 심겨진 전극을 통해 '링크 0.9'의 프로세스로 전달되고 다시 블루투스 신호로 변환되어 돼지 머리 밖의 컴퓨터로 수신된 것이다. 한마디로 돼지의 뇌를 실시간으로 '읽고 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상기해야 할 대목이 있다. 뉴럴링크는 돼지의 뇌를 읽기 위해서 만들어진 회사가 아니다. 인간의 뇌를 '읽고 read', 인간의 뇌에 '쓰는 write' 인터페이스를 만드는 것이 목표인 회사다. 돼지의 뇌를 읽고 있다면 인간의 뇌도 읽을 수 있다. 앞서 일론 머스크는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도 진행 중"이라며 "원숭이가 자신의 뇌로 컴퓨터를 통제할 수 있는 상태"라고 말한 적도 있다. (이 글을 쓴 이후 머스크는 생각만으로 컴퓨터 게임을 하는 원숭이를 공개했다. 원숭이는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영장류이다. http://it.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4/14/2021041401497.html ) 



우리 뇌에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헤아리기에 앞서(영화 <매트릭스>에서 헬기 조종법을 뇌에 다운로드 하는 것이 '쓴다'의 극단적인 사례일 수 있다.) 우리 뇌를 '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일론 머스크는 프리젠테이션에서 위와 같은 동영상 이미지를 보여줬다. 오른쪽 사진은 돼지의 각 신체 부위에 각각 다른 색으로 마킹을 해서 움직임을 표시한 것이고 왼쪽 그래프가 그 움직임을 선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회색으로 된 선이 먼저 움직이고 컬러로 된 선이 따라오는 것처럼 표시되고 있었다. 회색 선은 'predicted' 즉 '링크 0.9'를 통해서 읽은 뇌 신호를 바탕으로 돼지의 몸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 나타낸 선인 것이다. 즉, '링크 0.9'에 접속하면 뇌 신호를 읽어 돼지의 움직임(앞으로 사람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날 발표는 매우 소박한 모습으로 진행되었다. 뉴럴링크는 의학적, 신체 재활 목적으로 뉴럴링크 기기를 실험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하반신 마비나 사지 마비 환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할 예정이라는 것. 그러나 머스크는 구체적인 일정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그리고 이번 발표 행사가 '홍보나 투자 목적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구인 목적'이라고 밝혔다. 




뉴럴링크의 궁극적인 목표 | 인간 업그레이드 


“With artificial intelligence, we are summoning the demon. You know all those stories where there’s the guy with the pentagram and the holy water and he’s like, yeah, he’s sure he can control the demon? Doesn’t work out.”  Elon Musk


일론 머스크는 "만약 인류를 방해하겠다는 목표를 갖게 되면 AI는 아무런 감정 없이 인류를 파괴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등 지속적으로 AI에 대한 우려를 표명해 온 바 있다. 뉴럴링크의 궁극적인 목표는 질병의 치료가 아니다.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AI)을 연결해 디지털 초지능(digital super intelligence)을 구현하는 것이다. 그는 바로 이 뉴럴링크 기술이 "AI의 실질적인 위협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는 2017년 "인간에게 AI와 병합에 대한 선택권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지금의 방식 - 손가락으로 키보드에 타이핑해서 정보를 입력하는 방식 - 으로는 AI와 인간이 결코 맞설 수 없으니 인간의 두뇌와 기계를 연결해서 더 빠른 속도로 정보처리를 하게 하자는 얘기다. 


그러나 뇌와 컴퓨터의 연결은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다. 단순히 읽는 행위에서 그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 치료를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뇌에 자극을 가해 변화를 일으켜야 한다. 이것을 컴퓨터 용어로 하면 '쓴다'가 된다. - 각종 윤리적인 문제들도 뒤따를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사람의 기억 일부를 지우는 것은 정당한 일인가? 자신의 기억에 대해 개인은 얼마만큼의 자율권을 갖고 있는가? 또 이 기술이 대중화되면 '선한 목적'으로 통제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이 기술을 악용한 각종 범죄, 쉽게 말해서 타인의 뇌를 해킹하거나 마비시키는 범죄도 일어날 수 있다.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마인드 업로딩(Mind-Uploading)'으로 연결된다. 이쯤 되면 문제는 '존재는 어떻게 정의될 수 있는가?'라는 매우 근본적인 철학적 쟁점으로 귀결된다. 


많은 SF 창작자들이 그렸던 디스토피아는 흔히 '공상 과학'으로 치부됐다. 그러나 그렇게 치부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요즘 매일 마주하는 현실에서 실감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머스크는 '공상 과학' 같은 비전을 말하지만 한 번도 이야기에서 그친 적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머스크와 '뉴럴링크'의 행보는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https://britg.kr/novel-group/novel-post/?np_id=465811&novel_post_id=184584


#뉴럴링크 #Neuralink #일론_머스크 #인터페이스 #뇌 #전극 


|참고 링크|

수천 개의 채널을 가진 통합 뇌-기계 인터페이스 플랫폼 (일론 머스크 X 뉴럴링크 논문) 

일론 머스크 뉴럴링크 관련 발표 동영상 (2020.8) 

Neuralink: Elon Musk unveils pig with chip in its brain / BBC

실보다 얇은 전극을 두뇌에 이식...'전자두뇌' 실현되나?/  양모듬 기자 

인간의 뇌에 AI를 연결하라…‘뉴럴링크 기술’ 어디까지 왔나? / 심용운 SKI 딥체인지연구원 수석연구원 

"나는 우려한다"··· 인공지능에 관한 경고 12선

Elon Musk Warns Governors: Artificial Intelligence Poses 'Existential Risk'

ELON MUSK’S BILLION-DOLLAR CRUSADE TO STOP THE A.I. APOCALYP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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