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함께한 이태리 20일 #14 Palazzo Medici
피렌체ㆍ르네상스ㆍ메디치
나에게 피렌체 여행은 '왜, 이곳에서 르네상스가 일어났을까?' 하는 질문과 동의어이다. 그래서 그 중심에 있는 팔라초 메디치 (Palazzo Medici)는 절대로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메디치 가문에 대한 자료를 이것저것 찾아봤다. 가장 자세한 자료는 역시 팔라초 메디치의 공식 홈페이지이다.
'메디치'의 어원은 '약사'를 의미하는 '메디코'에서 유래했다는 얘기가 있다. 이 가문이 처음부터 금융업에 종사했던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책 <메디치의 영광>에 따르면, 1378년 메디치 가문의 한 사람인 살베스토로는 피렌체 시의회에서 평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강력한 연설을 했다. 그리고 이는 방직 노동자 길드인 치옴피(Ciompi)의 반란을 촉발시켰다.
또 1400년 메디치 가문의 수장이던 조반니 디 비치(Giovanni di Bicci)는 귀족들과 평민의 입장을 옹호하며 다른 귀족들과 대립했다. 이처럼 역사 속에 '메디치'가 등장하는 맥락은 귀족이 아니라 대중 편에 선 가문으로서였다. 중세의 질서에서 새로운 세력이 등장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귀족의 저항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평민들의 지지를 받던 신흥 세력, 피렌체의 권력자였던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는 1443년 독주를 견제하는 귀족들의 반란으로 쫓겨나기도 했다. 그러나 1년 만에 돌아와 다시 피렌체의 지배자가 되었다. 바로 이 코시모가 태어난 1389년부터 로렌초가 죽은 1492년까지 100년 가까운 시기는 '피렌체 역사의 가장 역동적이고 찬란한 시대'였다.
이진숙이 쓴 <시대를 훔친 미술>을 읽어보면, 평민에서 지배자가 된 메디치 가문에는 이들의 비천함을 극복할 철학이 필요했고, '아무리 하찮은 미물조차 세계의 근원인 일자 헨(Hen)에서 유래했다'는 내용의 신플라톤주의가 그 역할을 했다고 해석한다. 특히 코시모 데 메디치는 "인도의 향료와 그리스의 서적을 종종 한배에 실어 수입해 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열열한 학문 숭배자이고 예술 애호가였다.
아놀저 하우저는 <예술의 사회학>이라는 책에서 '예술은 후연자의 변화에 따라 발전해 왔다.'고 했다. 평민에서 출발해 평민들의 지지를 받았던 새로운 세력, 금융업과 무역으로 이룩한 부를 활용해 '피렌체 종교회의'(1439)를 후원하는 등 당시 종교 세력과 갈등을 빚지 않았던 정치력, 새로운 실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학문적 열정과 예술에 대한 투자, 바로 이러한 것들이 피렌체에서 찬란한 르네상스가 일어날 수 있었던 요인이었던 셈이다.
팔라초 메디치는 바로 코시모 데 메디치가 1444년 가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미켈로쪼(Michelozzo di Bartolomeo)에게 맡겨 짓게 한 건물이다. 피렌체 대성당의 돔을 설계한 브루넬레스키가 먼저 디자인을 했었는데, 코시모 데 메디치는 이 디자인을 '사치스럽다'며 거절하고 정방형으로 건물을 짓게 했다. "시민들 사이에서 시기를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 건물을 찾는데 좀 애를 먹었다. 별로 특색이 없어서 그냥 지나치고 말았던 것이다.
팔라초(Palazzo)는 Palace, 즉 '도심형 궁전'이라는 뜻이다. 정갈한 느낌의 안뜰은 6백여 년 전 사람들의 그림자를 얼핏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공간이다.
일부 자료에서는 '메디치 가문이 배출한 교황 10세와 미켈란젤로가 어린 시절을 보낸 정원'이라고 나오기도 한다. 세속권력과 종교권력, 그리고 정치와 경제 등 갖가지 이야기들이 오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분위기였다.
이 건물의 공개된 장소 가운데 메디치 가문 사람들이 미사를 드리던 방이라고 알려진 공간에는 '동방박사의 행렬(La Cavalcata dei Magi, 1461)'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걸려있다. 1439년 메디치 가문이 서방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과시한 피렌체 종교회의를 기념해 초기 르네상스 화가 베노초 고촐리가 그린 것이다.
이 그림에는 특별한 의미가 담겼다. 당시 화가들은 보통 그림을 주문한 사람들을 비중 있는 인물로 등장시켰다. 제목이 말해주는 것처럼 이 그림은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길을 떠나는 동방박사를 묘사하고 있는데, 피렌체의 실질적인 지도자였던 메디치 가문의 3대가 모델로 등장하고 있다.
흰 말을 타고 앞서가고 있는 젊은이가 그림이 그려지던 시절 열두 살이던 로렌초 데 메디치(Lorenzo de Medici)이고, 흰 말을 탄 사람이 피에로, 갈색 나귀를 탄 사람이 코시모다. 인위적이긴 하지만 메디치 가문의 영광을 이끌었던, 그리고 르네상스를 활짝 피워냈던 세 명의 유명한 인물들을 한 장의 그림을 통해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 건물에서 리셉션이나 세미나가 열리는 공간으로 활용되는 방 천장에는 '올림푸스의 구름을 탄 메디치의 개선행진'이라는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루카 지오르다노(Luca Giordano)가 그린 것이라고 한다.
이 건물에서는 덤으로 침실의 모습 등 당시의 생활상을 슬쩍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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