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발전소 Jul 16. 2017

선녀와 나무꾼 - 02

거꾸로 보는 전래동화 #02


 잠긴 기와집 마당에서 한 젊은 처녀가 무릎을 꿇고 앉아 울고 있다. 그 처녀는 신분이 양반인 듯 고급스러운 비단으로 된 색동옷을 입고 있다. 울고 있는 처녀의 옆에는 이미 많이 맞은 듯 보이는 상처투성이의 사내가 땅에 엎어져 있다. 얼마나 맞았을까? 간간이 나오는 신음 소리로 보아 아직 숨은 붙어 있는 듯했으나 이미 제정신은 아닌 듯하다. 그 남녀의 주위로 10명의 사내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모두 표정이 무겁다. 각자 마음에 담고 있는 솔직한 감정을 애써 얼굴로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반면 대청마루에서는 고급스러운 비단옷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마당의 처녀와 사내를 무섭게 노려보고 있다. 수염을 지긋하게 기른 할아버지가 뒷짐을 지고 혀를 끌끌 차고 있고, 그 옆에는 할머니로 보이는 여인이 치맛자락을 몸으로 감싸고는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그 들에게서 한겨울의 서릿발보다 더 매서운 기운이 느껴진다. 대청마루 바로 밑으로 처녀의 남동생으로 보이는 젊은 사내가 있고 그 옆에 아버지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무거운 마음이 가득 담긴 그늘진 얼굴로 딸을 내려다보고 있다. 마당에 꿇어앉아 울고 있는 처녀는 중년 남자의 딸 진아다. 진아는 마루 위에 있는 어른들이 너무 무서워 차마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저 울고만 있을 뿐이다. 


 “네 이놈들! 우리 집안을 어찌 이리도 농락할 수 있단 말이냐?”


 엎어져 있는 칠성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저 신음소리만 내고 있다. 이미 많이 맞아서인지 아니면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인지 그저 신음소리만 낼 수 있을 뿐이다. 옆에서 울고 있던 진아가 용기를 내어 겨우 입을 열어본다.


 “아버님, 집안을 농락하다니요. 그런 의도는 전혀 없사옵니다.”

 “그 더러운 입 당장 닥치지 못할까? 종놈하고 놀아난 년이 어딜 감히 그 입을 놀리는 것이냐?”


 진아의 아버지 옆에서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중년의 여인이 말리려 나선다. 


 “여보, 이제 저 아이도 알아들었을 터이니 그만 하시는 것이”

 “어멈은 당장 물렀거라!”


 어머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할아버지의 입에서 불호령이 떨어진다. 큰 소리가 아닌 나지막한 말이지만 서릿발 같은 표정이 무게감을 한층 더 해준다. 시아버지가 나서자 어머니는 저도 모르게 한발 물러선다. 


 “딸년 교육을 잘 못 시킨 죄, 하늘에 닿고도 모자라거늘 어디서 감히 입을 놀리는 것이냐?”

 “부인은 더 이상 나서지 마시오.”


 남편은 소매로 부인을 뒤로 내보낸다. 부인에게도 화가 난 것인지 아니면 아버지에게서 부인이라도 지키고자 함인지는 알 수 없다. 부인도 이제는 어쩔 수 없다. 그저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기 시작한다. 딸을 진즉에 말리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남을 뿐이다.


 진아와 집안의 노비인 칠성은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왔었다. 나이 또래가 비슷하다 보니 자주 어울렸다. 진아의 어머니는 양반 가문의 딸이 밖으로 함부로 나다닐 수도 없어 친구가 없는 딸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집안의 노비와 어울리는 것이 그리 탐탁지는 않았지만 그냥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사람은 누구나 감정이 있는 법. 둘은 어느새 신분의 차이를 잊고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엄격한 위계질서가 있는 사회. 양반과 노비가 함께 어울리는 것조차 금지되었는데 하물며 연정을 품다니. 게다가 여자가 양반이다. 이 사회는 반상의 차이도 있지만 남녀의 차이도 만만치 않게 큰 사회. 둘의 관계를 처음 알았을 때 말렸지만 딸의 고집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재채기와 사랑은 숨길 수 없다는 말처럼 결국 다른 사람들도 알게 되었다. 노비에게 연정을 품은 여식. 집안의 어른들은 딸이 가문에 먹칠을 했다며 노발대발이고, 양반을 넘본 노비는 죽어 마땅하다며 역정을 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집안에 있는 노비들도 모두 둘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착하고 어여쁜 주인집 아씨는 노비라고 차별을 두지 않았고 모두에게 잘해주었다. 노비들 모두 진아를 진심으로 따르고 친하게 지냈다. 성실하고 듬직한 칠성이와의 연분이 싹트자 모두 쉬쉬했지만 늘 염려가 되었던 것은 어쩔 수 없다. 집안 어른들의 눈을 피해주려 서로 도와주었지만 잠시 방심한 탓에 둘이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을 진아의 할머니에게 들켜렸다. 그 순간은 아무도 지켜주지 못했다. 할머니는 바로 노발대발했고, 진아와 칠성은 순순히 둘의 사랑을 인정해 지금 이 지경이 된 것이다. 


 “저 아이를 당장 광에 가두거라. 내 허락 없이는 그 어느 누구도 물 한 모금 주지 말아야 할 것이야. 만약 내 명을 어길 시 똑같은 벌을 받게 될 것이니라. 알겠느냐?”

매거진의 이전글 선녀와 나무꾼 - 0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