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보는 전래동화 #06
칠성의 말에 둘의 표정은 심하게 어두워졌다. 다른 말은 못 하고 조용히 지게를 내려 들고 온 것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아재들이 다른 말이 없다 칠성은 뭔가 불안한 예감에 내려놓은 것을 싸고 있는 헝겊을 살짝 들었다. 진아 아씨다. 아재들이 가지고 온 것은 진아 아씨의 시신이었다. 칠성은 억지로 감정을 추슬러보지만 터져 나오는 울음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그저 진아 아씨의 시신을 끌어안고 숨죽여 울었다. 지금은 마음껏 소리 내어 울 수도 없었다. 터져 나오는 슬픔을 목안으로 겨우 삼키고 있을 뿐이다. 아재들도 그런 칠성을 물끄러미 바라만 볼뿐이다. 한참을 운 칠성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아재. 진아 아씨의 시신은 제가 묻어드려도 될까요?”
“그러려무나. 주인마님도 뒷산에 조용히 버리고 오라는 했다. 우린 혹시 네가 죽었으면 옆에 같이 묻어주려고 여기로 온 거야.”
“네, 아재. 그렇게까지 마음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구나. 미안하다.”
“칠성아, 이제 어떻게 할 작정이냐?”
“이 동네를 떠나려고요. 그리고 아씨 장례를 치러드리고 그다음에 생각해보려 합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이 동네에선 더 살기 어려울 것이야. 아씨와의 연이 여기 까지라는 것이 안타깝구나.”
노비들은 칠성과 작별인사를 하고 산을 내려갔다.
칠성은 다음 날 해가 뜨자마자 진아의 시신을 짊어지고 조용히 산을 떠났다. 그리고 예전에 진아와 함께 얘기를 나눈 적이 있는 머나먼 마을로 출발했다. 꽤 먼 거리를 진아의 시신까지 짊어지고 간 칠성은 진아의 장례를 치르고 나니 너무 배고파 어지러웠다. 지금까진 장례를 치러야 한다는 목표의식을 갖고 있어 배고픔도 잊고 있었지만 장례까지 치르고 급한 일은 다 했다는 생각에 긴장이 풀리고 배고픔이 현기증으로 올라왔다. 그렇게 정신을 잃고 쓰러진 칠성.
‘이대로 나도 아씨 곁으로 가는 건가?’
“이와 총각! 여기 왜 이러고 있어? 이봐! 일어나 봐!”
볼을 때리며 깨우는 소리에 칠성은 겨우 눈을 떴다. 눈 앞에는 어떤 할머니가 앉아서 깨우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살았네. 아직 살아있네 그려.”
“으.....”
칠성은 아직 말문이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
“핼쑥한 것이 그동안 굶주렸다 보네. 이거라도 좀 먹게.”
할머니가 내민 것은 팥죽이다. 이미 식어버린 팥죽이지만 칠성은 허겁지겁 먹었다. 한 그릇을 뚝딱 비운 칠성은 그제야 자신을 살린 할머니가 보였다.
혼자 사는 할머니라 칠성은 그 집에서 어머니처럼 모시며 함께 지내기로 했다.
하늘로 올라간 진아는 선녀가 되었다. 보통을 자살이었으면 구천에서 떠돌거나 지옥으로 떨어져 유황불에서 죗값을 치러야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반 강제적인 죽음이라 옥황상제가 선녀로 지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진아는 선녀가 되었지만 칠성을 다시 만날 수가 없어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시름에 잠긴 진아를 보고 옥황상제가 진아를 타일렀다.
“아직 이승의 인연을 붙잡고 있는 것이로구나.”
“송구하옵니다. 전 다만 생사도 모르는 그 사람이 염려가 되어...”
“너의 그 사정은 딱하나 이제 이승의 인연을 놓아야 하는 법. 너에게 그 인연을 허락한다면 하늘의 질서가 무너지니 그렇게 할 수는 없구나.”
“소녀 상제님의 은덕을 잊고 부질없는 욕심을 부렸습니다. 용서해 주시옵소서.”
진아는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천국의 아름다운 정원을 거닐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개울가 쪽으로 가 흐르는 물을 보니 예전에 칠성이와 함께 놀던 추억이 생각나 더욱 보고 싶어 졌다. 그런 진아의 곁으로 한 선녀가 다가왔다.
“이승에 연모하던 사내가 있었던 모양이구나.”
고개를 돌려보니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한 선녀가 다가왔다.
“뭘 그리 놀래? 여기에 너 같이 그런 사연이 있는 선녀가 한 둘이겠니?”
“아니, 그럼...”
“여기 선녀들 중에서 너처럼 명예살인으로 올라온 선녀도 많아.”
“내가 어찌 여기에 왔는지 알고 있었어?”
진아는 자신의 사연을 다른 선녀가 알고 있는 것도 신기했고, 비슷한 사연을 가진 선녀가 많다는 것도 놀라웠다.
“여긴 천국이야. 이승과는 다른 곳이지. 무엇이든 알려면 알 수 있고, 할려면 할 수 있는 곳이야. 누구든 사연을 알고자 한다면 알 수도 있다는 말이지.”
“아, 그렇구나. 그럼 이승의 소식도 알 수 있어?”
“아니, 그렇게 되면 선녀들이 이승과의 인연을 끊지 못하기 때문에 천국의 일만 알 수 있어. 어찌되었건 여기는 이승이 아니니까.”
진아는 혹시나 칠성의 소식을 알 수 있을까 했지만 이승의 소식은 알 수 없다는 말에 실망했다.
“하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냐. 사실 그런 선녀들을 위해서 옥황상제께서 작은 방도를 열어주신 것이 있어.”
그 선녀의 말에 진아는 귀가 번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