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보는 전래동화 #08
전라도 전주 근방에 사는 최만춘이라는 사람이 부인 조씨와 딸 콩쥐를 데리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인 조씨가 병으로 죽고 후처로 배씨가 들어오는 데 그 사이에 난 딸이 바로 팥쥐죠. 최만춘은 콩쥐만 편애하고, 그게 꼴사나운 배씨는 콩쥐를 학대하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학대를 했냐 하면~
나무 호미 주고 돌밭을 메라고 하고, 바닥에 구멍이 난 깨진 독에 물을 채우라고 하고, 혼자 베도 짜고 곡식도 찧어놓으라고도 하죠. 어찌 보면 좀 유치한 학대인데 어려울 때마다 주위에서 콩쥐를 도와줍니다. 돌밭은 검은 소가, 깨진 독은 두꺼비가.
선녀가 준 옷을 입고 외갓집으로 가는 길에 감사를 만나 놀라서 신을 한 짝 흘리고, 어찌어찌하다 결국 감사의 후처가 되는 것이 콩쥐팥쥐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그 뒤에 서로 죽이는 잔인한 이야기가 더 이어지기는 하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로 이 콩쥐팥쥐의 이야기.
그 시작에는 다음과 같은 비밀이 있습니다.
마을 한 모퉁이에 있는 작은 초가집 툇마루에서 두 아낙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작지만 정리가 잘 되어있어 그런지 가난하다는 느낌보다는 안정되어 보인다. 초가집 마당에선 한 여자아이가 혼자 놀고 있다. 열 살 남짓 되어 보이는데 혼자 노는 것이 익숙한 모양새다. 툇마루에서 그런 딸을 보는 어미 배씨의 마음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뚜쟁이는 어미의 그런 마음을 건드린다.
“아무래도 여자 혼자 몸으로 애까지 돌보기 어렵지 않겠어? 얘도 아빠가 있으면 좀 나아질지도 모르잖아.”
배씨는 뚜쟁이의 말을 듣고는 생각에 잠겼다. 딸이 지나칠 정도로 내성적이어서 걱정인데 외모 또한 예쁜 편이 아니어서 주위의 친구들에게 놀림받는 일이 잦았다. 딸은 소심한 성격에 주위의 친구들 놀림까지 있으니 더 움츠려 들어 사람들과의 만남도 꺼려하고 있다. 흡사 대인기피증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다. 그 상황에서 아빠도 없어 아이들에게 놀림받을 거리가 하나 더 있는 셈이다. 게다가 여자 혼자 몸으로 남의 집 일을 해주며 생계를 꾸려가는 것도 만만치는 않은 일. 뚜쟁이의 말에 귀가 솔깃할 수밖에 없다.
“관리로 있다가 퇴직해서 그리 넉넉하지는 않아도 밥 굶지 않고는 지낼 수 있을 거야. 인물도 그 정도면 좋고, 그 집도 딸이 하나 있으니 팥쥐랑 오순도순 잘 살면 좋지 않겠어?”
밥 굶지 않고 딸이 하나 있다는 말에 배씨는 마음을 굳히기로 했다. 먹고 살기 어려운 것도 해결할 수 있는 것도 다행이지만, 무엇보다 딸이 하나 있다니 팥쥐랑 같이 지내면 팥쥐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더 컸다.
“네, 그럼. 수고 좀 해주세요.”
“그래, 그래. 잘 생각했어. 내 그럼 후딱 갔다 올 테니 기다리고 있어봐.”
총총 뚜쟁이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배씨는 마당 한 쪽에서 혼자 공기놀이를 하고 있는 딸 팥쥐를 본다. 다른 아이들은 동네에서 친구들하고 재미나게 노는데 혼자 저러고 있는 모습에 안쓰러울 따름이다. 하지만 이제 자매가 생겨 나아질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예전처럼 아려오지는 않았다.
“이봐, 최씨! 안에 있어?”
“어허, 그렇게 부르지 말래도. 한 때 관리까지 했던 몸이야. 최씨가 뭔가? 최씨가?”
뚜쟁이의 부름에 최만춘은 방문을 열며 대꾸한다.
“관리는 개뿔. 옛날에 관리하던 시절이나 떵떵거리는 것이지 지금은 퇴물이면서. 뭐, 됐고. 어여 새장가갈 준비나 해.”
새장가라는 말에 최만춘은 귀가 번뜩해 방문 밖으로 나온다.
“그래, 얘기는 잘 되었는가? 뭐 래던가?”
“뭐래 긴 뭘 뭐래? 내가 누구요? 내가 연결시켜준 짝들을 한 줄로 쫙 세우면 여기서 한양까지 갈 것이우.”
“허, 거 참. 자기 자랑은 끝이 없구먼. 그런 쓸데없는 소리는 말고, 언제 온다고 하우?”
“오래 끌 것 있겠수? 서로 두 번째 하는 것이니 혼례도 생략하고 바로 합치면 되지.”
“올커니. 그럼 내일 당장 오라고 하시구랴.”
“이 사람. 마음이 급하구먼. 뭘 그리 서둘러.”
“합치기로 결정했으면 바로 합치면 되는 것이지 서로 질질 끌 것이 무어 있겠는가?”
최만춘은 목을 길게 빼 부엌이 있는 쪽으로 소리를 지른다.
“이봐~ 밥은 오늘까지만 해주면 됨세. 낼부터 여기 안식구가 생길터이니.”
“그 간 밥 해준걸 제대로 고맙다고 사례라도 할 것이지. 이렇게 소리만 지르고 보낼 셈이야?”
뚜쟁이는 최만춘이 소리 지르는 모양새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무리 대가를 받고 밥을 해준다지만 일을 그만둘 때 저렇게 보내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마음이 상하는 법이다.
“알았수. 내일까지 기다릴 것 뭐 있수? 나 그냥 지금 당장 갈 테니 셈이나 똑바로 해서 주시구랴. 내 이 놈의 집구석. 다시 안 오게 되니 날아갈 것 같구먼.”
역시 부엌에서 밥을 해주던 이웃집 아주머니가 역정을 내면서 나온다.
“아니, 그렇다고 지금 이대로 가면 어떡하는가? 오늘 저녁은 해주고 가야...”
“저기 멀쩡한 딸년한테 시키면 되는 거지. 딸년은 엇따 써먹으려고 저리도 아끼는지, 원.”
마루에 앉아 있는 최만춘의 딸 콩쥐는 그 모습들을 가만히 보고만 있다. 최만춘은 콩쥐를 걸고넘어지는 아주머니를 다그치기 시작한다.
“꼴랑 그 맛대가리 없는 밥 좀 해줬다고 그리 막말을 하는가? 예끼 이 사람아. 그럼 못쓰는 법이야. 그리고 우리 콩쥐는 양반집으로 시집을 보낼 것이야. 함부로 찬물에 손을 담그는 그런 아이가 아니란 말일세.”
“양반집에 보내든 밥을 시키든 그건 알아서 하슈. 난 그냥 가볼 테니.”
아주머니는 최만춘이 건네주는 돈을 낚아채듯 가지고선 쌩 나가버렸다. 그 모습에 최만춘은 다시 역정을 낸다.
“저 성질머리 하고는. 그러니 밥맛도 없지.”
“이 보슈. 사람을 내보낼 때는 그래도 얼굴을 보면서 그간 수고했네. 그러면서 돈을 쥐어주면 좋잖아. 꼭 그렇게 해야겠어?”
“왜? 내가 뭐 어쨌다고? 밥맛이 없으니까 없다고 하는 것이지.”
“그래, 알았어. 알았으니까 내일 새사람 맞을 준비나 하슈. 나도 내일 올터이니.”
뚜쟁이는 혀를 끌끌 차며 최만춘의 집을 나섰다. 콩쥐는 마루에 가만히 앉아 그 모습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다. 최만춘은 콩쥐 옆으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