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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쥐 팥쥐 - 02

거꾸로 보는 전래동화 #09

by 이야기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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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쥐야. 내일이면 네 새엄마가 오실 것이야. 밥이나 빨래 걱정은 이제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넌 아무 생각 말고 그저 양반집 도련님 만나 시집갈 생각만 하거라. 알겠느냐?”

“네, 아버님.”


아버지의 말에 콩쥐는 가만히 앉은 채 대답한다. 조신한 듯 보이는 그 모습에 최만춘은 흐뭇하다. 마루에 앉아 길거리를 내다보는데 배가 고프다.


“망할 여편네. 오늘 저녁은 해주고 가야지, 그냥 가 버렸네.”


그렇게 해는 저물고 있는데 최만춘과 콩쥐 어느 누구도 밥을 차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다음 날 아침이 밝자 배씨는 서둘러서 짐을 꾸린다. 둘 다 재혼이라 따로 혼례는 치르지 않고 그냥 정한수 한 그릇 떠놓고 천지신명께 맹세하는 것으로 대신 하기로 했다. 이제 곧 수레가 도착할 것이라 부지런히 짐을 싼다. 짐이라고 해봤자 옷가지 몇 개랑 이불 한 채, 그리고 부엌에서 쓸 그릇 몇 개가 전부다. 배씨는 이불이나 그릇은 거기도 있을 것이라 생각해 그냥 두고 옷가지만 챙겼다.


“팥쥐야. 이제 오늘부터 너에게도 아빠가 생긴단다. 예쁜 언니도 생기고. 좋지?”


팥쥐는 엄마의 말에 그냥 씩 웃기만 한다. 다른 말없이 웃기만 해도 팥쥐가 기분이 좋다는 것을 배씨는 알 수 있다. 놀리던 아이들과는 떨어져 새로운 곳에서 팥쥐가 친구도 사귀고 언니와도 친하게 지내면 여느 아이들처럼 밝은 아이가 될 것이라는 희망에 배씨도 힘이 난다. 보자기에 짐을 모두 꾸리고 나니 뚜쟁이가 온다.


“짐은 다 쌌는가?”

“짐이랄 게 뭐 있나요? 그냥 옷가지 몇 개가 다죠.”

“그려. 어여 가세. 그쪽에서도 기다리고 있을 걸세.”


배씨는 팥쥐와 함께 뚜쟁이를 따라 출발했다. 그래도 한동안 정 붙이고 산 곳이라 뒤를 한 번 돌아보지만 이내 마음을 다시 돌린다. 팥쥐의 인생만 생각하고 다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하기로 한다.

집을 잠깐 둘러보니 그전에 지냈던 곳보다는 조금 더 큰 초가집인데 전체적으로 깔끔한 느낌을 준다. 누군가 관리를 잘 한 티가 나는 것이 첫인상은 마음이 놓인다.


‘딸이 있다더니 부지런해서 청소를 자주 한 모양이네.’

“바로 여길세. 이봐, 최씨. 자네 안사람이 될 사람이 왔으니 내다보게.”

“거, 최씨, 최씨 하지 말래도!”


방문을 열리고 한 사내가 내다보며 말을 한다. 다른 방에서는 곱상하게 생긴 여자 아이가 잘 차려입고 나오는 것이 꼭 마중 인사를 하려는 듯 보인다. 하지만 잠깐의 목례만 있을 뿐 더 이상의 행동이나 말은 없다.


“계속 방에만 있을 텐가? 어여 와서 짐이라도 좀 들어주지. 사람 참.”

“짐도 얼마 없구먼 왜 나까지 굳이 짐을 나르는가?”


방안에 가만히 앉아서 말만 하는 모습에 배씨는 뭔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되돌릴 수는 없는 일. 게다가 아직 겪어보지 못했으니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안녕하세요. 인사드립니다. 여긴 딸 팥쥐라고 합니다. 팥쥐야 인사드려야지?”

“안, 안녕하세요?”


팥쥐는 엄마에게 등 떠밀며 인사만 꾸벅하고는 다시 엄마 뒤에 숨어버린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거기서 뭐하슈? 왔으면 얼른 밥이나 하지.”


최만춘은 여전히 방 안에서 나오지도 않고 말만 하고 있다. 그 모습에 뚜쟁이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지금 새 사람이 왔는데 나와 보지도 않고 뭐하는 것이야? 밥을 차리기 전에 정한수라도 떠놓고 인사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집안 소개도 좀 하고 저기 있는 딸년하고 인사도 시켜주고 해야지 방안에서 밥부터 차리라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짓이야?”


뚜쟁이의 말에 최만춘은 별 미동도 하지 않고 여전히 조용한 말투로 입만 놀린다.


“뭘 그리 아침부터 소리를 지르고 그러나? 다 먹고살자고 하는 것인데 우리는 어제저녁부터 못 먹었으니 밥부터 먹자고 하는 것이고, 이 코딱지만 한 집에서 설명은 무슨. 한 번 돌아보면 알지. 인사야 차차 하면 되는 것인데 뭘 그리 역정을 내고 그러시나?”


뚜쟁이는 그런 최만춘의 모습이 기가 차서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 뚜쟁이를 배씨가 달래서 돌려보낸다.


“제가 알아서 할게요. 수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에구, 내가 중간에 다리는 놔줬지만 이번은 영 찜찜하네.”

“아녜요. 그래도 팥쥐에게 아빠와 언니가 생겼잖아요.”

“그렇게 생각해주니 내가 고맙네. 그럼 나도 가봄세. 나중에 또 보세.”


뚜쟁이마저 사라지자 이제 남은 건 새로이 한 가족이 된 최만춘과 콩쥐, 배씨와 팥쥐뿐이다. 최만춘은 여전히 방안에서 나오지도 않고 있어 배씨는 부엌으로 먼저 들어갔다. 엄마가 들어가니 팥쥐도 따라 들어간다. 부엌을 돌아보니 살림살이가 정갈한 것이 모두 콩쥐가 관리를 잘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이상한 것이 생각났다. 부엌도 이렇게 깔끔한 것을 보면 바로 어제까지 여기를 누군가 관리를 했다는 말인데 왜 어제저녁부터 못 먹었다고 했을까? 그리고 이렇게 누가 부엌에 들어오면 보통은 따라 들어오기 마련인 딸이 왜 안 들어오고 마루에서 조신하게 앉아만 있을까? 그 의문들은 차차 풀기로 하고 우선 밥부터 지어 상을 차렸다.

밥을 먹고 나니 최만춘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나온다.


“이보오. 음식 솜씨가 좋구려.”

“고맙습니다. 이래저래 남의 집 일을 해주다 어깨너머로 배운 것이 입에 맞는다니 다행입니다.”

“그려, 우리 앞으로 잘 지내봄세. 그리고 콩쥐야 넌 방으로 따라 들어오너라.”

“네, 아버님.”


배씨는 상을 치우지도 않고 콩쥐를 방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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