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보는 전래동화 #10
그러나 배씨는 그 나름 무슨 사연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팥쥐랑 함께 설거지를 했다.
그렇게 1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콩쥐는 집안일에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늘 조신한 차림으로 아버지와 글공부만 하고 있다. 집안일은 모두 배씨가 도맡아 하고 팥쥐는 콩쥐와 잘 어울리지도 못한다. 콩쥐가 너무 도도하게 있는 것도 이유지만 거의 아버지인 최만춘이 늘 끼고 글공부만 시키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상황이 그렇게 되니 콩쥐도 새엄마인 배씨의 말을 거의 듣지 않고 팥쥐와 어울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대로는 아니다 싶어 배씨는 최만춘이 외출한 틈을 타 콩쥐에게 설거지를 시켰다.
“콩쥐야, 너도 여자 아이니 나중에 시집을 가게 되면 살림을 해야 할 것이야. 밥 짓는 것과 설거지, 빨래하는 것을 알려줄 터이니 배워놓도록 하여라.”
“아버님께서 저는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다 하였습니다.”
콩쥐의 대꾸에 배씨는 깜짝 놀랐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다니?”
“아버님께서는 늘 저에게 양반에게 시집을 가 종을 부리고 살게 될 거라 하시면서 집안일은 알 필요가 없다 하였사옵니다. 양반집에 시집가 살려면 글을 알아야 내조를 할 수 있으니 글공부만 하면 나머지는 모두 아버님께서 알아서 하신다 하였습니다.”
“콩쥐야, 난 그 말을 이해할 수 없구나. 우리는 양반이 아니거늘 어찌 양반집에 시집을 간다는 것이며, 양반집에 시집을 간다 한들 여자의 몸으로 집안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그래서 집안일은 알아두어야...”
“이보시오, 부인. 지금 콩쥐에게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오?”
배씨가 깜짝 놀라 돌아보니 어느새 최만춘이 집으로 돌아와 마당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얼굴은 잔뜩 화가 난 표정이다. 최만춘은 배씨가 콩쥐에게 하는 말을 듣고 노발대발한다. 마당 한편에서 놀고 있던 팥쥐도 최만춘이 소리 지르는 탓에 깜짝 놀라 배씨 뒤로 몸은 숨긴다. 콩쥐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는다.
“서방님, 오셨어요? 저는...”
“닥치시오. 어찌 감히 콩쥐에게 집안일 같은 허드렛일을 시키려 하시오?”
“여인의 몸으로 집안일을 아는 것은 당연한 법도가 아니옵니까? 저는 콩쥐도 제 딸이기에 여인의 법도를 알려주려 한 것일 뿐입니다.”
“콩쥐는 양반집으로 시집을 가 종들을 부리고 살 것이니 그런 것을 알 필요가 없소이다. 그러니 다시는 그런 일을 시키지 말도록 하시오. 알겠소?”
“아니, 서방님. 우리가 양반이 아니거늘 어찌 양반집으로 시집을 보낸다 하시는지...”
“그건 다 내가 알아서 할 것이나 부인은 관심을 접으시오.”
배씨는 최만춘의 말이 이해도 되지 않고 답답했지만 어찌 더 말할 수가 없었다. 콩쥐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해도 말이 나온 김에 팥쥐에 대해서도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네, 알겠습니다. 서방님. 그렇다면 팥쥐는 어찌 그리 무심하게 대하십니까? 콩쥐가 제 딸이듯 팥쥐도 서방님의 딸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찌도 이렇게 무심하게 대하십니까? 콩쥐처럼 팥쥐도 같이 대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배씨의 말에 최만춘은 한심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정색하며 말을 했다.
“어찌 콩쥐와 팥쥐가 같을 수 있단 말이오. 부인은 보는 눈도 없으시오? 이다지도 어여쁜 콩쥐와 저 팔푼이 같은 팥쥐가 같은 대접을 받는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사내들도 보는 눈이 있거늘.”
“아니, 서방님. 그 무슨 말씀이신지?”
“내가 지금 콩쥐를 양반가로 시집을 보내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 아시오? 콩쥐가 양반가로 시집을 가면 우리 집은 다시 일어설 수 있고, 나도 다시 작은 관직이라도 받을 수 있단 말이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부인은 아무 말 마시고 그냥 하던 일이나 하시오. 콩쥐 너는 당장 방으로 들어오너라.”
최만춘은 그렇게 배씨와 팥쥐에게 쏘아붙이고는 콩쥐만 데리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밖에 남은 배씨는 허망함에 옆에 있는 팥쥐를 보았다. 팥쥐의 눈에선 눈물이 났다. 성격이 내성적이었을 뿐이지 장애가 있는 것은 아니기에 새아버지가 하는 말이 어떤 말인지 팥쥐도 다 알아들었다. 배씨는 팥쥐를 보자 저도 모르게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팥쥐가 아버지와 언니를 만나 조금 더 밝게 자라주었으면 했는데 부질없는 욕심이었다. 차마 소리를 내지는 못하고 배씨와 팥쥐는 서로 부둥켜안고서 한참을 소리 죽여 울었다.
그 날 이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이다. 콩쥐는 여전히 자기 방에서 책만 보고 있고, 팥쥐는 더 말이 없어졌다. 방 밖으로 잘 나오지도 않았다. 배씨는 그런 팥쥐가 안쓰럽지만 지금 당장 어찌해야 할 방도도 모르겠고 그냥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만춘이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부인! 콩쥐야! 어서 짐을 싸거라. 당장 여기를 떠나야 한다!”
부엌에서 막 설거지를 마치고 식기를 정리하던 배씨가 놀라서 마당으로 나왔다.
“아니, 서방님. 무슨 일이신지?”
“부인, 어서 짐을 싸시오. 여길 당장 떠나야 하오. 당장!”
“무슨 일이길래 그러시옵니까?”
배씨는 짐을 같이 싸면서도 연유가 궁금해 물어보았지만 최만춘은 대답도 없이 옷가지만 챙긴 채 바로 떠나려 한다.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소. 내 안전해지면 그때 말해주리다. 그러니 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