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발전소 Apr 16. 2020

4월,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들

기억합니다 약속합니다

4월 5일 식목일.

아침에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경기도 이천에 있는 민주화운동기념공원.

1964년 이후 부당한 나라의 행태에 희생당했거나 항거하다 목숨을 잃은 열사님들이 잠들어 있는 곳.

제가 이 곳을 찾은 이유는 여기에 계신 김상진 열사님의 추모제 때문입니다. 서울대 농대 학생이었는데, 박정희 유신에 항거하다 긴급조치 9호 발동 직후인 1975년 4월 11일에 할복하신 김상진 열사. 할복사건 후 학교는 휴교령이 내려지고 1개월이 넘게 지나서야 휴교령이 풀려 겨우 추모제라도 해야겠다는 서울대 학생들이 모여 추모제를 준비합니다. 유신의 눈을 피해 준비하니 그 과정도 매우 어려운 과정이었다고 합니다. 드디어 5월 22일. 10분도 채 되지 않아 모두 연행될 것으로 예상했던 추모집회는 예상을 깨고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학교에 상주했던 경찰들 수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학생들 덕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다시 병력을 충원해서 서울대로 왔고 교문까지 진출한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마구 구타하며 연행했습니다. 그리고 단순가담자들까지 모두 구속, 제적을 시켰습니다. 어찌 보면 본보기였을지도 모릅니다. 나라나 정부에 비판적인 말만 해도 즉시 연행이 가능하고 어떠한 처벌을 내리도 가능하게 만든 상상을 초월하는 법인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하고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박정희 정권은 배알이 많이 꼬였겠죠. 그때 서울대 신입생으로 현장에서 단순 가담자였다가 구속, 제적까지 된 사람들 중에 박원순 서울 시장도 있습니다. 박원순 시장은 그 날의 일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회고합니다. 

김상진 열사 기념사업회에서는 해마다 4월 11일이 다가오는 바로 전 주일에 모여 추모제를 준비했지만 올해는 코로나 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에 동참하고자 집행부를 비롯해 최소한만 모이기로 하고, 대부분의 회원들에게는 참석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한 분이라도 더 많이 참석해달라고 부탁드렸던 예년과는 완전히 반대의 분위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여 분이 모였습니다. 모인 분들 중 막내(?)가 92학번이니 모두 연세도 많습니다. 김상진 열사에 대한 이야기는 그동안 너무 알려지지 않았다는 반성에 지금은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 중이니 완성이 되면 극장이나 안방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합니다.  

추모제를 지켜보다 문득 민주화운동기념공원을 둘러보고 싶어 졌습니다. 현수막을 보니 다른 달에 비해 유난히 4월에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1964년 이후이니 60년 4.19 혁명의 기폭제가 된 마산의 김주철 열사와 같은 분들은 여기에 없을 텐데 왜 4월에 많을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진짜 이유는 억울한 누명의 씌우고 불과 18시간 만에 사형까지 집행해버린 최악의 사법 살인인 2차 인혁당 사건이 1975년 4월 9일이기 때문이지만 전 인혁당을 생각하기 전에 또 하나의 죽음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차를 돌려 달려간 곳은 바로 안산.


벚꽃이 활짝 피었고, 코로나 19에 지친 사람들도 오래간만에 바람을 쐬러 나온 듯합니다. 탁 트인 이 곳. 오늘따라 유난히 바람이 많이 불어댑니다. 세월호 추모 예배단은 오늘도 단원고등학교가 보이는 생명안전공원 예정부지에서 세월호 추모예배를 준비합니다. 304명이나 되는 소중한 생명이 진도 앞바다에 잠긴지도 벌써 6년입니다. 아직도 사고 현장에서 누가 '가만히 있으라'라고 지시했는지, 왜 해경은 구조하지 않았는지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안전한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준비합니다. 저는 기독교인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들의 마음은 느껴집니다. 

코로나 19는 세월호 추모의 분위기도 바꾸었습니다. 올해는 추모예배를 온라인으로 준비합니다. 중간에 노래가 나옵니다. 찬송가가 아닙니다. 세월호 유가족으로 구성된 416 합창단이 부른 노래입니다. '잊지 않을게', '약속해'. 4월 초에 정식으로 음원이 발매되었다고 합니다. 책도 나왔다고 합니다. 

노래에 대한 영상을 만들 때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4분 23초라는 노래의 길이. 거기에 예배단의 요구는 단 한 가지입니다. 304명을 기억하며 손피켓을 든 사람들 모두 담아달라. 그 한 분 한 분의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기에 그러한 요구가 없더라도 꼭 모두 담고 싶었습니다. 304명의 이름이 담긴 사진. 그 마음이 영원히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상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 4월. 

식목일인 4월의 첫 일요일에 죽음을 기억하려는 두 집단을 만났습니다. 

그들에게는 슬픔보다는 간절함이 더 크게 느껴집니다. 

국가의 잘못으로 생기는 이런 죽음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


기억하고 약속하는 4월입니다. 

https://youtu.be/n-3lESbK2r8

https://youtu.be/MVREQl71720

매거진의 이전글 멍 때리기 좋은 한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