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다른 나라는?
우리나라는 농경사회를 기본으로 하였기 때문에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을 먼저 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에도 정복 군주로 불리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광개토대왕이죠.
374년에 태어난 담덕은 채 스무 살도 되기 전인 391년에 왕위에 오르고, 40세가 되는 413년에 사망할 때까지 동서남북 모든 방향으로 고구려의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인 장수왕의 재위 기간인 491년까지 약 100년 정도 고구려의 전성기를 열었습니다. 장수왕은 아버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커다란 바위에 기록했습니다. 지금은 중국의 땅인 지린성에 있는 '광개토대왕비'가 바로 그것이고, 당시 역사를 이해하는 아주 중요한 사료입니다.
광개토대왕의 큰 업적을 단순히 영토를 확장한 정복 군주로 한정시키면 안 됩니다. 우리 고구려만의 자주성을 강조하고 알리기 위해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첫 번째 왕이 바로 광개토대왕입니다. 연호는 연도를 세는 호칭으로 현재 우리나라는 1961년에 법으로 연호를 서력기원을 사용한다고 정하였기 때문에 1962년 1월 1일부터 Anno Domini (A.D)를 연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상당히 많은 나라에서 서력기원을 공용 연호로 사용하지만 옛날에는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왕 또는 황제는 하늘의 명을 받고 땅을 다스린다고 하였기 때문에 하늘의 뜻을 알기 위한 천문관측은 왕이 가진 신성한 권리였습니다. 농경 사회에서는 자연의 힘이 절대적입니다.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계절의 변화를 알게 되고, 시기에 따라 농사를 짓는 방법이 조금씩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니 절기도 만들어집니다. 24절기가 생기게 된 것도 농사를 더 잘 짓기 위한 구분입니다. 이러한 과정들이 결국 하늘의 운행 질서에 반복되는 인간의 시간이라는 '역(歷)'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歷)'은 땅을 다스리기 위한 하늘의 명령이고, 왕 또는 황제만이 만들고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 한나라 때 시작된 최초의 연호는 '건원(建元)'으로 무제가 처음 사용했습니다.
작은 나라는 큰 나라의 역법을 그대로 따라야만 했고, 역법을 따른다는 것은 일종의 충성 서약과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광개토대왕은 '영락(永樂)'이라고 하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습니다. 이는 고구려의 힘이 그만큼 강력했다는 의미와 동시에 나라를 통치하는 진정한 왕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표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은 220년 한나라가 멸망하고 다시 혼돈의 시기를 맞습니다. 여러 세력들의 다툼은 이내 3개의 큰 세력으로 정리가 됩니다. 조조의 위, 유비의 촉, 손권의 오. 아직도 널리 읽히고 있는 대표 고전 소설 삼국지의 무대입니다. 반세기에 걸친 대접전에서 결국 위나라의 사마염이 265년에 진나라로 삼국을 통일합니다. 하지만 채 50년이 지나지 않아 다시 5호 16국 시대와 위진남북조 시대가 열리며 중국 땅은 200년 이상의 대혼란의 시기를 맞게 됩니다.
흉노족이 물러간 동아시아 북쪽의 초원지대에서는 330년부터 555년까지 유연 제국이 몽골 고원에서 지금의 카자흐스탄에 이르는 방대한 영역을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은 고훈 시대라고 부르지만 야마토 정권의 시작이 더 핵심입니다. 야마토 조정이 나라현의 아스카 촌을 중심으로 세력을 넓혀 250년에는 지금 일본 열도의 절반 이상을 통일하였기에 일본 최초의 통일국가 형성으로 봅니다. 야마토 정권이 새로운 지배자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 고분을 축조하였기 때문에 고분 시대(일본어 : 古墳時代 고훈지다이)라고 부릅니다. 아직은 일본이라는 국호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왜(倭)라고 불렀습니다.
인도는 쿠샨왕조(105년경 - 250년경)를 이어 굽타 제국이 인도 북부 지역을 지배하게 됩니다. 굽타 제국은 240년 마가다 지역의 굽타 왕국의 후신으로 320년에서 550년까지 북인도를 지배한 힌두계 제국입니다. 굽타 제국 시기에 10진법이 발명되었고, 힌두교가 인도 전체에 큰 역할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이 시기에 유럽은 로마를 중심으로 대제국이 형성되었고 종교는 교황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입니다. 하지만 큰 변화의 물결이 요동을 치게 됩니다. 그 중심엔 콘스탄티누스 1세가 있습니다. 306년에 황제로 즉위하고 313년에 기독교를 정식 종교로 인정합니다. 330년에는 로마제국의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기기도 합니다. 세계 최초의 기독교 도시가 탄생되는 순간입니다. 337년 그가 죽자 도시 이름을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라는 뜻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콘스탄티노플)'이라 바꿉니다. 395년에 로마제국이 동서로 나뉠 때 콘스탄티노폴리스는 동로마제국의 수도가 됩니다. 이렇게 로마는 동로마와 서로마로 확실히 분리가 되고 모든 중심이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이동합니다. 콘스탄티노플은 이후 1453년까지 1천 년 비잔틴제국의 수도로 이어집니다.
로마의 위기는 내부 분열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를 위협하는 다른 세력들이 힘을 강하게 키우고 있었으니 동쪽으로는 페르시아의 사산 제국이고, 북쪽에는 훈족입니다. 게르만족의 약탈에 대비해 훈족과 로마의 동맹관계가 아직 유지되었지만 시한폭탄은 언젠가 터지기 마련입니다.
서로마제국이 훈족과 서고트족의 칩입을 받고, 동로마 역시 페르시아의 사산 제국과 크고 작은 전쟁이 이어지자 테오도시우스 2세는 수도인 콘스탄티노플 주변에 강력한 성벽을 건설합니다. 413년에 완성된 이 성벽은 '테오도시우스 성벽'이라 불립니다. 서로마제국은 게르만 용병을 앞세운 오도아케르에 의해 476년에 멸망하지만 동로마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은 테오도시우스 성벽의 보호 아래서 또 한 번의 영광을 누리며 1천 년 넘게 지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