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다른 나라는?
세계의 역사를 뒤흔든 정복 군주가 몇 명 있었습니다. 본인들이 집권하던 그 당시에는 대륙을 집어삼키며 지구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확보한 대제국을 건설한 왕들이죠. 로마의 카이사르, 몽고의 칭기즈칸, 오스만튀르크의 메흐메트,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그런 군주들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정복 군주의 시작은 바로 알렉산드로스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렉산더 대왕이라고 부르는 왕이죠.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그리스의 주도권이 스파르타로 넘어갔지만 BC 400년부터는 테베가 그리스의 주도권을 잡습니다. 하지만 BC 334년부터는 다시 그리스 북쪽에 위치한 마케도니아가 그리스를 장악합니다. 알렉산드로스가 이끄는 마케도니아는 그리스를 장악하고 바로 BC 332년에는 이집트를 정복합니다. 그리고 BC 331년에는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3세를 물리치며 엄청난 대제국을 건설합니다. 그리스 북부 변장의 작은 나라 마케도니아가 세계 최대 영토를 지배하게 만든 주인공은 26살의 젊은 왕 알렉산드로스입니다. 키루스에서 시작해 캄비세스, 다리우스로 이어지며 키워놓은 페르시아의 모든 영토를 3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알렉산드로스가 정복한 것입니다. 참고로 알렉산드로스가 16세가 될 때까지 가르쳤던 스승은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그리스 마케도니아에서 시작해 유럽과 북아프리카, 인도 서부까지 이어지는 광활한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드로스가 BC 323년 31세의 젊은 나이로 죽으면서 제국은 급속하게 분열됩니다. 제국의 분열에는 후계자를 명확하게 지명하지 않은 이유도 있습니다. 병으로 죽기 전에 남긴 말은 '가장 강한 사람이 나의 후계자다'라고 했기 때문에 남은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후계자라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의 터키 지역으로 소아시아 또는 아나톨리아라고 불린 곳은 아틀리드, 지금의 중동 지역은 세레우코스, 마케도니아는 안티고노스, 이집트는 프톨레마이오스가 각자의 세력을 형성합니다. 이 중 프톨레마이오스의 왕조의 마지막 왕인 프톨레마이오스 15세는 별칭이 작은 카이사르라는 뜻을 지닌 카이사리온입니다. 카이사리온의 어머니는 미의 대명사로 불리는 클레오파트라이고, 아버지는 로마를 세계 최고의 제국을 만든 주인공인 카이사르입니다.
알렉산드로스가 사라지니 움츠렸던 세력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세력이 로마와 카르타고입니다.
고대 로마는 BC 753년에 이탈리아 중부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해 서서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알렉산드로스가 사라지고 혼란한 틈을 타 BC 272년에 이탈리아 반도와 제노바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동맹체제를 수립합니다.
그런가 하면 지금의 이스라엘 부근 지역에서 성장한 페니키아도 BC 1500년 경부터 시작됩니다. BC 1200년 경부터 해상무역 문화를 키우며 본격적으로 성장하며 지중해로 진출합니다. 지중해를 누비던 페니키아 인들은 BC 750년 경에 북아프리카의 튀니지에 있는 카르타고에 왕국을 세웁니다. 처음 있던 레반트 지역의 페니키아 나라인 티베는 페르시아의 힘 때문에 늘 불안했고 동생과의 마찰까지 있던 페니키아의 공주 엘리사가 BC 822년에 지중해를 건너와 세운 나라가 카르타고라고 알려져 있지만 최근 고고학 연구에 의해 BC 750년 무렵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후 본국 티베는 알렉산드로스에 의해 BC 332년에 사라지고 페니키아 인들의 핵심 나라는 카르타고가 됩니다. 기록에 따르면 이 당시에 이미 2층에서 5층 정도 되는 건물까지 지을 정도로 건축술이 뛰어났습니다. 이 건물들은 세계 최초의 아파트로 인정받습니다. 카르타고는 해상무역을 넘어 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으로 눈을 돌인 곳이 이베리아 반도입니다. 중세시대 유럽의 강국인 스페인의 시작은 카르타고의 식민지였습니다.
비슷한 지역에서 힘을 키우는 두 세력은 결국 맞붙게 됩니다. 총 세 번에 걸쳐 큰 전쟁을 치르는데 이 전쟁을 포에니 전쟁이라 부릅니다. 1차 포에니 전쟁은 BC 264년부터 BC 241년 동안 이어졌고 로마가 승리합니다. BC 218년부터 시작된 2차 포에니 전쟁은 식민지 스페인의 사령관인 하밀카르 바르카의 아들인 한니발이 이끄는 카르타고의 군이 거의 로마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입니다. 하지만 카르타고 내부의 문제와 로마의 스키피오 장군의 활약으로 BC 202년에 결국 다시 로마의 승리로 끝납니다. 2차 포에니 전쟁으로 카르타고는 거의 모든 실권을 로마에게 빼앗깁니다. 그리고 BC 149년에 로마의 억지로 시작된 3차 포에니 전쟁으로 카르타고는 멸망합니다.
중국은 혼란스러웠던 춘추전국시대가 끝납니다. 전국시대 7개의 나라 중 진나라가 BC 221년에 중국 대륙을 통일하고 스스로 첫 번째 황제라 선포합니다. 그가 진시황이죠. 하지만 14년 만인 BC 207년에 다시 전국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그중 가장 강했던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이 마지막까지 접전을 벌입니다. 결국 BC 202년에 한나라의 유방이 승리하며 다시 통일국가가 됩니다. 이 이야기가 초한지이며 우리가 두는 장기 역시 항우의 초나라와 유방의 한나라가 배경입니다. 또 중국인의 다수가 되는 한족이라는 말도 여기서 시작된 말입니다.
시기의 우리나라는 아직 고조선입니다.
고조선은 BC 108년에 중국의 한나라에 의해 멸망됩니다. 한나라에서 넘어온 위만이 고조선을 지배할 무렵에 한반도 주변에서는 또 다른 세력들이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이미 철기 문화로 돌입했다고 보는 이 시기에 한반도 북쪽으로는 부여가 세력을 크게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북한의 동해안에는 옥저, 동예 등의 나라들이 자리를 잡고, 한반도 남쪽에서는 마한, 진한, 변한으로 이 시대를 삼한시대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산한 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컸던 마한은 지금의 경기도에서 전라도로 이어지는 지역으로 편의상 훗날 백제 지역으로 보면 됩니다. 진한은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이어지는 동해안은 신라 지역, 변한은 남해바다를 끼고 있는 가야 지역으로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이 시기의 역사에도 중국의 동북공정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한 때 일부 사학자들이 우리의 고조선을 '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이라는 3가지로 구분하기도 했습니다. 이 중 기자조선의 대한 내용에 왜곡의 여지가 많습니다.
중국의 주장에 따르면 BC 1122년에 중국 상나라이 왕족 기자(箕子)가 조선으로 들어와 왕이 되고 예의와 누에를 이용한 옷 만들기, 밭농사 같은 것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자조선이라 부르고 기자조선은 BC 194년 한나라에서 망명해온 위만에게 왕위를 찬탈당하면서 멸망했다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은 중국 사대적인 관점을 갖고 있던 조선시대까지도 받아주던 분위기였지만 일제 강점기 때부터는 달라집니다.
우선 중국의 역사서인 '상서대전', '사기', '한서'등의 내용을 분석했을 때 상나라 유민들이 조선 땅에서 나라를 세웠다는 '기자동래설'은 부정됩니다. 한나라 이전의 문헌인 '논어', '상서', '죽서기년' 등의 자료에는 기자에 대한 기록은 있으나 조선으로 갔다거나 왕으로 봉해졌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단군조선이 있는 곳에서 상나라의 왕족에게 왕위를 주었다는 것은 더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만약 그 세력이 나라를 세웠다 하더라도 그냥 중국의 일부 세력이 자체적으로 만든 것이지 우리의 단군조선과 연결 짓는 것은 억지인 거죠. 일본의 학자들 역시 기자가 조선으로 와서 왕이 되었다는 것을 부정하며,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를 말살하기 위한 의도라고 추측합니다. 북한의 학계 역시 기자조선은 날조된 것으로 평가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교과서에서는 1964년에 기자조선을 삭제하였다가 1974년에는 다시 논의되고, 1990년부터 발행된 교과서에는 각주로 언급되었지만 2010년 이후의 교과서에는 언급조차 되지 않습니다.
일거양득(一擧兩得)이라는 말은 우미인으로 불린 우희가 신랑감을 정하기 위해 큰 항아리를 옮기를 과제를 던졌을 때 항우가 가뿐하게 성공할 때 나온 말입니다. 항아리를 한 번 들어 우희라는 미인도 얻고, 그 과정에서 항우의 기백을 흠모하며 따르는 부하도 함께 얻은 것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리고 막다른 길에 몰린 처지를 뜻하는 사면초가(四面楚歌) 역시 항우가 유방과의 싸움에서 밀려 마지막 순간에 이르렀을 때 유방의 한나라 병사들이 초나라 군사의 사기를 떨어트리기 위해 초나라의 노래를 부른 것입니다.
알파와 베타를 합친 말인 '알파벳은' 그리스 문자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졌고, 그리스 문자는 페니키아 문자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졌습니다. BC 1400년 경 페니키아 인들은 초기 표음문자를 사용했고, BC 800년 정도에 그리스에서 사용되기 시작합니다. 그리스는 페니키아의 문자에 없던 모음을 추가해 사용합니다. 최근 연구에서는 이집트나 중동의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페니키아보다 더 빠른 알파벳의 기원이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지중해에서 퍼트린 것은 페니키아 인들이 맞는 것으로 보입니다. 알파벳은 이후 중세시대를 거치며 그리스어와 독일어를 표현하기 위해 j, u, w, y, z 등이 더 추가되면서 지금의 26자로 자리 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