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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발전소 Jul 09. 2021

오랜만에 청소기를 돌린 주인에게

게으름과 귀찮음에 대한 반성

요즘은 다이슨으로 시작된 모양의 청소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10여 년 전만에도 나 같은 통돌이 청소기가 대세였다. 

나도 한 때는 잘 나갔는데...

주인이 새로운 매장을 열면서 매장에서 사용할 청소기가 필요했고, 집에서 사용되던 나는 매장으로 전출가게 되었다. 본사에서 밀려 계열사로 밀려나는 기분도 잠시 들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그동안은 주인이 쉬는 곳을 깨끗하게 했다면 이제는 돈을 버는 곳을 깨끗하게 하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기분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매장에서는 직원이 있어서 그런지 내가 더 바빴다. 

집에서는 주인이 바쁠 땐 며칠이고 그냥 자고 있었는데 매장에선 그래도 월급 받는 분들이 나를 참 잘 찾았다. 바쁜 것이 좋은 것이란 생각에 몸은 비록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나를 자주 찾던 직원들이 안 보인다. 경기가 안 좋아져서 다른 곳으로 갔다고 한다. 

어느새 매장에는 주인과 나만 남았다. 



몇 달 전에는 주인이 매장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무실을 계약했다. 

사업의 방향도 조금 조절해 오프라인 판매는 그만두고 혼자서 운영하는 사무실로 옮겼다. 

처음 사무실에 올 때는 나도 잠시 바빴다. 

그런데...

주인이 며칠 씩 사무실에 오지도 않는다. 그러다 며칠에 한 번씩 와도 의자에서 꼼짝하지 않고 컴퓨터 앞에서 하루 종일 일만 하다가 간다. 가끔은 '저 인간은 화장실도 안 가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여기 사무실에 계약하고 이사를 오면서 주인의 일이 바빠지고 지방 출장을 자주 다닌다. 지방 출장 때문에 자주 오지도 않았고, 사무실에 와도 바쁘게 일만 하다 보니 나를 찾을 여유는 없나 보다. 그렇게 돈을 더 많이 번다면 좋은 거겠지. 


오늘 오랜만에 주인이 나를 찾는다. 얼마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2주일? 1달? 모르겠다. 

20평도 되진 않는 사무실 바닥의 먼지를 열심히 마셨다. 나도 오래간만에 깨끗해지는 바닥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무언가 꽉 차 있는 공간이 아니라 채 10분도 되지 않아 한 바퀴를 다 돌았다. 

주인이 나를 다시 한쪽 구석에 놓아두며 하는 말이 아련하다.


"막상 하면 금방인데, 왜 이렇게 미루고 지냈을까..."


저 말을 들으니 잠시 주인을 게으른 놈이라 탓했던 생각을 고쳐먹게 된다. 게을렀던 것이 아니라 청소를 할 정도의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오늘이라도 나를 불러서 사무실 바닥을 청소한 것은 마음에 조금의 여유가 생긴 것을 아닌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그래서 마음으로나마 주인에게 이 말을 던진다.


'어이~ 주인 양반. 아무리 일이 바쁘고 힘들어 정신없어도 가끔은 나랑 놀면서 쉬었다 하세요. 잠시 10분, 아니 5분만 여유를 가지면 기분도 좋아지니 나한테 좀 더 자주 오시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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