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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발전소 Apr 11. 2016

태백산맥의 관문 '대관령'

대한민국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양떼목장이다. 뭐랄까? 양떼목장을 거닐며 양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아름다운 로망 같다. 다른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갔다. 양떼목장으로.


입장료는 따로 없었다. 대신 양들에게 먹일 건초를 의무적으로 사야만 했다. 따지고 보면 건초를 사는 것이 입장료인 셈이다. 아이가 아직 어려서 그런지 배고픈 양이 풀을 먹으려 달려들 듯이 다가오자 무서워 몸을 피한다. 아이에게 현장체험을 시켜주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다행히 처음엔 무서워하더니 양이 다가오지 않고 가만히 있는 모습은 물끄러미 잘 바라본다. 집에 있는 동물 놀이책을 보면서 양이 나오면 본 적이 있다고 하는 걸 보니 대관령에서 본 양이 기억은 나는 모양이다.


양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아이도 처음이지만 나도 처음이다. 건초를 한 움큼 쥐고 내미니 마구 달려들어 받아먹는다. 이렇게 사람들이 와서 먹이를 주기 때문에 따로 음식을 주지는 않은 모양이다. 만약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그냥 목장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울타리 안 이긴 하겠지만 어느 정도는 방목이 된 채 자유로이 다니면서 식사를 하지는 않았을까? 그게 아니어도 최소한 규칙적인 시간에 식사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관광객들이 오는 시간이 이 양들의 식사시간에만 맞춰서 오는 건 아닐 테니 어찌 되었건 이 양들의 식생활은 매우 불규칙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여기서 알아서 잘 관리를 하겠지만 뭔가 마음 한편에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양들이 모여있는 축사 주변으로 산책로가 잘 되어있다. 사실 양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은 순간이다. 한 바구니의 건초를 쉬지 않고 양에게 주면 1분도 안되어 다 먹일 수도 있다. 말 그대로 딱 체험이다. 그렇지만 주변에 펼쳐진 산책로는 그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하다. 언덕길로 난 산책로도 있고, 작은 나무다리로 된 산책로도 있다. 강원도로 여행을 갔을 때 기대하는 상쾌함과 자연의 운치. 모두 느낄 수 있다. 길이 잘 만들어져 있어 어린아이가 걷기에도 무리가 없다. 

조용한 산책길을 거닐며 나누는 가족 간의 대화는 참 달콤하다.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눈에 담고, 바람을 같이 느끼며, 풀내음을 들이키는 이 순간에 우리는 가족의 작은 행복을 다시 느낀다. 행복이 별건가? 이렇게 평화로운 자연을 느끼며 가족이 웃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이다. 


숙소를 용평으로 잡아 곤돌라를 타고 꼭대기에 올라가 봤다. 겨울에 스노우보드를 타며 오를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올라가면서 기둥에 해발 1100m라는 표지가 보이니 제주도 한라산에 있는 1100 고지가 생각난다. 물론 제주도에서는 차로 한라산의 1100 고지에 올랐고 지금은 곤돌라를 타고 오르는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건 난 무언가를 타고 오르는 데 걸어서 오르는 사람들이 보인다. 

등산복 차림인 것을 보니 등산 삼아 오르는 것으로 보인다. 대단하다. 등산을 별로 즐기지 않는 나로서는 그저 대단해 보일 뿐이다. 저렇게 오르는 것을 보면 난 이런 생각이 든다.

 '올라온 만큼 다시 내려가야 한 텐데...'

등산의 참맛을 모르기에 하는 멋쩍은 소리이다. 

등산하시는 분들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정상에 오르니 눈에 익숙한 사진이 보인다. 바로 '겨울연가'.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언제 적 겨울연가인데 아직...'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쁘게 볼 수는 없다. 미래를 바라봤을 때 콘텐츠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겨울연가가 그저 옛날 드라마일지는 모르겠지만 외국의 어느 나라에서는 지금 방송을 할지도 모른다. 그 사람들에게는 옛날 드라마가 아니라 지금 드라마이다. 내가 아직도 '맥가이버'를 그리워하고 '개구쟁이 스머프'를 보고 싶어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것이 바로 콘텐츠가 가진 힘이다. 

바람이 겁나 사납게 부는 이 정상에 올라 와서 욘사마와 사진 한 번 찍어가는 것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겨울연가라는 콘텐츠는 아직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양떼목장이 가족과 연인의 필수코스라면 웅장함을 주는 진정한 맛은 겨울에 있다. 눈 내린 선자령의 설경은 환상적이다. 나뭇가지마다 맺혀있는 눈꽃들에 시선을 뺏기기 십상이다. 눈꽃 감상을 하면서 올라가다 보면 자연의 험난함과 생명의 신비함을 느낄 수 있는 광경을 만나게 된다. 


바람이 워낙 거세게 불어 나뭇가지들이 한쪽으로 자라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무는 바람에 맞서 쓰러지지 않고 생명을 이어가고자 한쪽으로나마 가지를 펼치는 모습에 잠시 나를 돌아보게 된다. 

사는 것이 힘들다, 어렵다는 말은 쉽게 하지만 이 나무에 불어오는 바람에 비해 나에게 얼마나 힘들었던가? 그리고 이 나무는 자존심을 지키고자 굳건히 서 있으되 살아남기 위한 노력으로 한쪽은 포기하지만 다른 한쪽으로 가지를 열심히 치며 버티고 있는데 나는 어떤 노력으로 살아가고 있나?


어딘들 마찬가지겠지만 대관령 역시 계절에 따라 주는 느낌이 너무나 다르다. 용평으로 바로 이어지는 고속도로가 있기는 하지만 시간이 허락된다면 대관령 옛길로 돌아 휴게소에서 한 번 내려다보며 숨을 돌리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구불구불한 길을 정신없이 달리기만 하는 것보단 잠시 쉬었다 가면 조금은 더딜지라도 마음은 더 풍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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