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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발전소 Jul 11. 2016

'로마'를 즐기는 7가지 인문학 여행(6)-콜로세움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

로마의 상징으로 가장 대표적인 유적 중 하나.

반대되는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대립되는 현장을 표현하는 말 중에 하나.

특히, 인터넷에서 토론이 시작되면 이것이 열렸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콜로세움’이다. 


'글래디에이터'라는 영화가 있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검투사.

검투사. Gladiator. 라틴어로는 '글라디아토르' 라 읽고 영어권에서는 '글래디에이터' 라고 읽는다. 지난 1959년에 개봉한 ‘벤허’라는 영화도 있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2000년에 개봉한, 리들리 스콧 감독이 연출하고 러셀 크로우가 연기한 영화로 더 친숙한 단어다. 

콜로세움은 검투사들이 죽어가던 곳이다. 

스스로 살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쳐야 하는 곳이다. 

그 몸부림은 맹수를 죽이는 것을 넘어 살인까지도 포함된다.


우리는 콜로세움이라고 표현을 하지만 국립국어원의 ‘원음주의’ 원칙이 적용된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콜로세오(Colosseo)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1985년 12월에 개정된 이후 ‘북경’이 아닌 ‘베이징’, ‘동경’이 아닌 ‘도쿄’라고 표기하고 불러야 하는 원음주의 원칙. 로마에서는 Colosseum(콜로세움)이라는 단어가 아닌 Colosseo(콜로세오)가 있다. 입구에서의 표현도 Colosseo, 지하철역 이름도 Colosseo다.

이름의 어원 이야기가 나왔으니 조금만 더 깊게 들어가면 이곳의 원래 이름은 Colosseo도 아니다. 플라비우스(Flavius) 원형 경기장이 원래 이름이다. 

플라비우스 왕조는 로마제국을 지배한 왕가의 일부로 서기 69년부터 96년까지 3명의 황제를 배출했던 가문이다. 콜로세움은 서기 70년경에 건설이 시작되어 80년에 완공된 건축물이다. 시기만 봐도 왜 이름이 플라비우스 원형 경기장인지 알 수 있다. 

이 자리는 네로 황제의 황금 궁전(도무스 아우레스)의 정원에 있던 인공 호수를 메운 자리이다. 콜로세움의 크기는 높이 48m, 둘레 500m, 경기장 내부 길이 87m, 폭 55m이다. 4층으로 되어 있어 최대 7만 명까지 앉을 수 있는 거대한 경기장이다. 


여기에 콜로세움이 잔인한 첫 번째 이유가 있다. 


아 자체를 건설하기 위해서도 엄청난 강제 부역이 존재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들지만 그 보다 먼저 생각나는 것은 콜로세움이 건설되기 직전의 용도가 네로 황제의 ‘황금’ 궁전에 있던 ‘인공’ 호수였다는 것이다. 저 넓은 곳에 황금으로 된 궁전을 지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인공호수까지 만들었다는 것이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황금궁전이라고 해도 전체가 황금은 아니고 일부가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들지만 저 거대한 부지에 인공적으로 호수를 팠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이들이 부역에 시달리며 죽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처럼 중장비를 동원한 공사가 아니었을 것이고 순수 사람의 인력을 이용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시대다. 당시에도 물론 건축에 대한 전문가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위험한 일도 많았을 것이고, 전문가로만 저 공사를 모두 감당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아시아에서도 저런 안타까운 인공호수가 있다. 베이징에 있는 ‘이화원’. 

물론 처음 시작은 1291년 원나라 때 수도를 위한 저수지로 개발은 했지만 이후 청나라 때 호수를 넓히고, 언덕과 경관 공사를 하고선 황실의 정원으로 이용했다. 당시의 이름은 ‘청의원(칭이위안, 清漪園)’. 2차 아편전쟁(1856~1860) 때 외국 연합군에게 파괴되었다가 광서제가 서태후의 거소로 쓰려 재건을 명해 1886년~1895년에 다시 지어졌고, 이름도 ‘이화원(이허위안, 頤和園)’으로 개칭되어 서태후의 피서지로 이용되었다. 그래서인지 서태후의 별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이화원이 만들어졌다는 말이 퍼졌다. 

세계 각국에 강제 부역의 흔적은 꽤 있다. 지금은 그 나라의 랜드마크이자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지만 당시에 희생당했을 수많은 이들을 생각하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콜로세움이 잔인한 두 번째의 이유는 그 경기장의 용도이다. 


검투사들이 본인의 생명을 걸고 맹수와 싸우기도 하고, 다른 검투사와의 사투를 벌여야 했던 곳이다. 그렇게 죽어가는 것을 보고 즐기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경기장이다. 콜로세움에 들어가 2층으로 올라가면 바로 구조에 대한 설명이 있다. 맹수를 어떻게 지하에 대기를 시켰다가 경기장으로 투입을 시켰는지 알 수 있다. 

경기장에서 사람이 동물을 죽이는 것은 아직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스페인의 ‘투우’다. 하지만 이 콜로세움에서는 동물도 맹수들이고, 동물과의 싸움보다 사람끼리의 싸움이 많았다는 것에 잔인함이 더 크다. 사람끼리 서로 싸워서 죽이는 그 잔인함을 보고 즐기는 유희로 만든 곳이 바로 이 콜로세움이다. 

기록상으로 최고로 오래된 검투사 시합은 기원전 264년 로마의 보아리움 광장에서의 시합으로 알려져있지만, 기원전 4세기경으로 추정되는 ‘파에스툼’무덤 벽화에 검투사 시합이 그려진 것으로 보아 역사는 더 오래된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고 크리스트교의 영향이 확대되면서 서기 404년 주기장이 폐쇄되고, 681년 공식적으로 완전히 금지가 되었다. 

이런 대략적인 기록만 보아도 천년이다. 


BC 4세기경 이탈리아 파에스툼 무덤 벽화. 출처-위키피디아


그 기나긴 시간 동안 서로를 죽이게 하고 지켜보는 유희를 즐겼다. 

더 놀라운 것은 검투사들이 모두 노예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원한 사람도 많았고, 콜로세움 근처에도 양성소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누군가에겐 생존을 위한 처절한 혈투가 

누군가에겐 하나의 유흥이 된 곳 '콜로세움'


사람이라는 동물은 과연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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