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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바다 Dec 28. 2019

『그림책 이야기』
죽음에 대한 예의, ‘잘 가, 안녕’

그림책 서평

김동수 글그림 | 보림 | 2016년 10월


< 퍽. 강아지가 트럭에 치여 죽었습니다. >     

위의 문장은 그림책의 표지를 열면 나오는 첫 문장입니다. 

지금까지 꽤나 많은 그림책을 읽어왔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만, 저는 이 문장을 읽었을 때의 충격을 잊지 못합니다. 


요즘에는 추세가 많이 바뀌었지만 전에는 어린이책에서 ‘죽음, 심야의 늦은 밤’ 등은 어울리지 않는 소재로 취급받았습니다. 최근에야 비로소 어린이들에게 ‘죽음’과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주기 시작했지요. 아마도 그건 계속해서 발생되는 안타까운 사회적 비극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가, 안녕>은 ‘심야의 늦은 밤에 일어나는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사실 친근한 소재도,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소재도 아니지요. 게다가 첫 문장이 매우 불친절하게도 위와 같습니다. ‘뭐 이런 책이 다 있어?’ 불편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겨봅니다. 


모두가 잠든 깜깜한 찻길에서 커다란 공사장 덤프트럭 바퀴에 강아지가 깔려 죽습니다. 이 장면을 지켜본 이는 눈에 불을 밝게 켠 길 고양이뿐입니다. 잠시 후 파지 주울 때 쓰는 손수레를 끌고 가던 할머니가 강아지를 발견합니다. 할머니는 다시 손수레를 끌고 가로등이 켜진 어두운 밤길을 걸어갑니다. 이윽고 도착한 할머니의 집은 작고 남루한 단층집입니다. 


그림의 배경은 한없이 어둡고 이미 첫 장면에서 강아지는 피를 흘리며 죽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이게 정말 어린이책이 맞는 건지 의심도 들었습니다. 그래도 책장을 열었으니 한 장을 더 넘겨봅니다. 


여태 깜깜하기만 하던 바깥 풍경과는 달리 불이 켜진 할머니의 방은 한없이 밝고 따뜻한 느낌입니다. 단출한 이불과 반짇고리도 보입니다. 그리고 방 한 편에는 강아지 말고도 다른 죽은 동물들이 누워 있습니다. 한 방 안에 죽은 동물들과 할머니가 있다는 설정은 매우 기괴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편한 느낌보다 따스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어린 시절에 외할머니 댁에서 본 것 같은 엷은 노랑의 장판 색깔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닥을 찬찬히 손바닥으로 쓸어보면 따스한 온기가 느껴질 것 같은 바로 그 색깔 말입니다. 


얼굴에 주름이 지고 머리카락도 푸석하니 산발을 한 할머니는 몸이 토막 나고, 찢어진 동물들의 죽은 몸을 하나하나 이어 주고, 꿰매어 줍니다. 얼마나 그 손길이 정성스러운지 편히 눈을 감지 못했던 동물들은 할머니의 정성 어린 손길을 받고 난 다음엔 눈을 곱게 감고 이불을 다 같이 덮고는 누워있습니다. 마치 자는 것 같은 모습으로 말이지요. 맨 처음에 강아지가 죽었다는 말을 보지 않았다면 어쩌면 할머니가 그저 다친 동물을 돌봐주는 모습이라고 착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장례문화 중에 ‘염(殮)’이라는 게 있습니다. 시신을 깨끗이 닦고 정리하는 일을 말합니다. 외국에서는 시신의 얼굴에 화장을 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죽은 자의 마지막은 살아 있을 때처럼 깨끗하고 정갈하게 하는 것이 죽음에 대한 일종의 ‘예의’입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런 것들이 동물에게는 ‘사치’처럼 여겨집니다. 도로에서 자동차에 치어 죽은 동물들은 아무도 수습해주지 않아 계속 자동차에 치이고 훼손됩니다. 사람의 죽음과 동물의 죽음을 같은 무게로 볼 수 없다고 할지라도 생명과 죽음에 대한 예의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표지 뒷면에 적힌 작가의 말을 보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윽고 새벽이 되자 할머니는 동물들을 수레에 태우고 나루터에 다다릅니다. 할머니는 조각배에 동물들을 누이고, 예쁘게 꽃도 몇 송이 놓아줍니다. 할머니에게서 조각배를 넘겨받은 오리 떼가 조각배를 끌고 어디론가 헤엄쳐 갑니다. 할머니는 “잘 가, 안녕” 하고 손을 흔들어주고 멀리 동이 터옵니다. 뒤표지에 마지막 문장이 적혀 있습니다. 


< 오늘도 어제처럼 날이 맑습니다. >

우리가 아무리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도 우리는 지금 살아있습니다. 살아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계속되어야만 하죠. 어제가 그랬듯 오늘도 말입니다. 


어른인 저는 이 책을 읽고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 삶, 로드킬, 양심 등등. 내가 가해자가 된 것만 같아 미안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생각’이 아니라 이 책을 읽고 어떤 ‘느낌’이 들었냐고 묻는다면 어른인 저의 답과 어린이들의 답이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죽은 동물들을 바라보는 안타깝고 따뜻한 시선이 책 속에 가득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어린이들에게 가르쳐주는 ‘생명존중’이 단지 살아있는 생명만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음에 다다른 생명들에게도 지켜지는 예의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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