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 이야기 9
대학시절을 통틀어 1학년 때 미팅을 딱 한 번 해봤다. 사실 문창과에서는 미팅을 해 본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이유는 캠퍼스가 안성에 있다는 것이겠지만 사실 그것만으로는 완전히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안성은 서울에서 1시간 거리여서 충분히 서울의 타 대학 학생들과 만남의 기회를 만들 수 있었고, 거리가 문제라면 안성캠퍼스 내의 타과 학생들과 미팅을 하는 것도 가능했다.
더 큰 이유는 타과 학생들의 문창과 학생들에 대한 선입견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창과 학생들은 골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느라 씻지도 않고 입성도 지저분할 것이고, 만나면 말도 안 하고 하더라도 문학과 인생을 들먹이며 재미없는 얘기를 늘어놓을 것이며, 설상가상으로 돈도 없어서 미팅 비용을 자신들이 부담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외모가 지저분하고 옷도 되는대로 입는 건 맞았다. 하지만 그 이유는 글 때문이 아니고 술 때문이었다. '말창과'라고 했을 만큼 말이라면 문창과가 일등으로 잘했다. 하룻밤 새 풀어놓는 이야기만 해도 장편소설 두어 편 분량은 되었다. 돈이 없다는 건 사실이었다. 책 사고 술 마실 돈은 있어도 밥 먹고 차 마실 돈은 없었다.
그런 생각을 가진 타과 학생들과 만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고, 신입생 때부터 미팅에 대한 기대와 선망을 품지 않았다. 그런데 좀체 없던 그 기회가 92학번 신입생 두 명에게 주어졌다. 나와 동기 한 명을 어여삐 여긴 90학번 여자선배가 같은 기숙사에 있는 서양화과 신입생과의 2:2 미팅 자리를 마련했던 것이다.
나와 동기는 92학번 중에서도 낯을 가리고 말수가 없는 편이었는데, 그날 그녀들과 어떻게 만났는지 지금 생각해도 미스터리하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나누고 친구로 지내자는 의례적인 말로 만남을 마무리했던 것 같다. 실제로 미팅 이후에 예대 건물에서 그녀들과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던 기억이 난다.
다른 곳에서 만남의 기회가 적었기에 문창과에는 유독 과내 커플이 많았다. 밤새 술 마시며 얘기꽃을 피우고 고민들을 털어놓다 보면 서로 마음이 맞는 남녀가 생기고 그들이 커플로 발전하곤 했다. 동기들은 졸업하고 아는 후배들에게는 밑천이 다 떨어진 복학생 선배들이 화려한 언변으로 신입생의 혼을 쏙 빼놓고 연애를 시작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과내에서 연애 상대가 바뀔 때도 있었다. 한 남학생이 어떤 여학생과 사귀다 헤어지고 그녀의 동기인 다른 여학생과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는 경우, 얼마 전까지 친구였던 두 여학생 사이가 서먹해지는 것은 물론이요 그들과 친한 선후배들의 입장도 난처해지기 일쑤였다. 연애를 글로 배운 나는 그들에게 내심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기까지 했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20대 초반 청춘남녀들에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동아리 내에서 연애가 깨질 때였다. 매일 같이 활동하고 술자리를 하던 동아리 커플이 헤어지게 되면, 두 사람 중 한 명은 동아리 구성원들과도 소원해지는 경우가 있었다.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한 명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만 나머지 구성원들로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사례는 내게 연애가 동아리 활동도, 끈끈한 교우관계도 모조리 망쳐놓는다는 일반화의 오류를 불러일으켰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