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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추 Jun 16. 2023

‘마법의 성’과 ‘준비 없는 이별’

기억 속 이야기 7

1994년 1학기 입대할 날짜를 받아 놓고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군대 가기 전에 여자 친구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선배들의 성화가 극에 달한 시기였다. 선배들은 94학번 신입생이 입학하자 나에게 어울릴 만한 여학생을 선별하는 물밑 작업을 진행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나의 여자 친구 후보로 낙점된 신입생이 있었으니, 지혜라는 이름의 후배였다. 요샛말로 ‘자만추’의 전략을 세운 선배들은 지혜 후배를 술자리에 불러 나와 만나게 하고는 노골적으로 내 칭찬을 해대는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전술을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에게 붙잡혀 술자리에 있던 지혜 후배가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지혜 후배의 집은 수원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학교에서 시외버스를 타려면 정문이 있는 진입로까지 나가야 했다. 예술대학 건물 앞에서 버스를 타고 나가거나 10분 가까이 걸어야 하는 꽤 먼 거리였다. 선배들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에게 지혜 후배를 데려다주고 오라고 말했다.


그렇게 지혜 후배와 둘이 길을 나섰는데, 진입로까지 버스를 타고 갔는지 걸어서 갔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후배의 집이 있는 도시까지 시외버스를 타고 같이 갔던 것만은 분명히 기억난다. 낯선 도시에서 가까스로 막차를 타고 학교에 돌아왔을 것이다. 다음날 선배들에게 전날 지혜 후배가 사는 곳까지 잘 데려다줬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자 부산이 고향인 선배가 말했다.

“미친갱이 아이가, 진입로까지 델따주고 오라 캤지 누가 거까지 가라 캤나.”


역시나 지혜 후배와는 아무런 인연도 맺지 못한 채 입대했고, 이후에 그녀가 학교를 다니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교류가 없었다. 다만 나와 친한 선후배들 사이에서는 1994년 발표되어 큰 인기를 끌었던 ‘마법의 성’의 한 소절만이 오래도록 회자되었다.

“… 끝없는 용기와 지혜 달라고 …”




내가 군대 가기 전까지만 해도 술자리에서 돌아가면서 한 명씩 노래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다가 90년대 중반에 노래방이 대중화되면서 문창과 학생들도 읍내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곤 했다. 하지만 80년대 학번이나 90년대 초반 학번은 신곡을 잘 몰라 노래방에 가서도 술자리에서 부르던 노래를 선곡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92학번이지만 나름 신곡을 듣고 부르는 축에 속했다. 1995년 제대(정확히는 소집해제)할 때쯤 녹색지대의 ‘준비 없는 이별’이 발표되었는데 TV나 라디오에서 자주 듣고 따라 부르던 노래였다. 중간에 읊조림도 있고 나름 샤우팅 창법이 필요한 노래였기에 주로 노래방에서, 녹색지대가 듀엣이었던 만큼 친한 89학번 선배와 함께 꽤 많이 불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준비 없는 이별’을 그렇게도 불러댄 지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나와 선배는 가사 중 한 소절을 틀리게 불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초반부의 ‘아~ 그말 해야 할 텐데 떠나는 그대라도 편하게 보내줘야 할 텐데’에서, ‘아~ 그말 해야 할 텐데’를 ‘아~ 그만해야 할 텐데’로 불렀던 것이다. 아마도 ‘그대에게 부담을 주는 말들을 그만해야 할 텐데’라는 노랫말로 생각했던 것 같다.


노래방에는 가사가 제대로 나왔을 텐데 노래에 심취한 나머지 자막을 보지 않고 불렀고, 듣는 사람들도 발음이 비슷하니까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가사를 알게 된 이후에도 나와 선배는 끈질기게 ‘아~ 그만해야 할 텐데’라고 불렀다. 지긋지긋한 술자리를, 서로를 지치게 하는 연애를, 앞이 보이지 않는 글쓰기를 그만해야 할 텐데… 뭐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https://www.youtube.com/watch?v=Qd57HgfUk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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