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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Oct 18. 2016

브루클린의 멋진 주말

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다

이 영화야말로 신랑과 같이 보면 좋았을텐데 어쩌다보니 혼자 보게 된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집'이 우리에게 갖는 적지 않은 의미들에 대해 그려내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온 시간이 많은 사람이 보면 좋을 영화이지요.

뉴욕 브루클린의 한 집에서 40년 동안 살았던 노부부가 집을 팔고 새 집으로 이사갈 것을 계획하면서 영화는 시작됩니다. 40년이나 살았던 집을 떠나려는 이유는 부부가 더 나이들게 되면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의 계단으로 오르내리지 못할 것이 우려되어서이기도 하고, 부동산 중개인으로 일하는 조카가 옆에서 적극 '뽐뿌질'을 했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영화는 1) 집을 내놓고 새 집을 보러 다니는 부부의 모습과, 2) 젊은 시절 사랑에 빠졌던 순간부터 이 집과 함께해 온 부부의 많은 추억들, 3) 그리고 집값에 영향을 줄 중요한 요인인 때마침 일어난 테러사건을 교차시켜 보여주며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1)

얼떨결에 내놓긴 했지만 부부는 집을 판다는게 영 내키지 않습니다. 까칠하고 비관적인 성격이지만 아내에게는 자상한 화가 남편(모건 프리먼)은 집을 보러온 사람들이 자기의 소중한 그림 도구들을 잡동사니나 쓰레기 취급하는 것에 기분이 상하지요. 젊은 시절의 생기와 활력을 지금도 잃지 않은 아내(다이앤 키튼)는 이런 남편을 달래며 일을 진행해 나가지만, 무언가 계속 아쉽고 내키지 않는건 남편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밝은 빛이 들어오고 바깥이 멋지게 내려다 보이는, 알렉스가 작업실로 써온 방
40년을 함께 해온 룻(다이앤 키튼)과 알렉스(모건 프리먼)

게다가 주변 사람들은 자꾸 이 부부를 세상사의 흐름에서 밀려난 노인들로 치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니, 나름 소신 있게 잘 살아온 부부에겐 꽤나 화가 날 일이지요. 한평생 티격태격 하면서도 사랑하며 살아온 부부는 이런 상황들 속에서도 서로를 다독이고 지난 추억들을 떠올리며 집 문제를 해결해 갑니다.  


2)

진중한 흑인 화가와 펄떡이는 백인 여자가 사랑에 빠져 신혼의 단꿈이 시작된 이 아파트 곳곳에는 부부가 떠올리곤 하는 여러 추억들이 있습니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 속상해하는 아내에게 "나를 큰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키우라"고 위로하는 남편의 포옹, 옥상 정원에서 친구들과 함께 한 즐거운 파티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선물한 사랑스런 강아지, 누드화를 그리며 첫 사랑에 빠졌던 순간의 그림이 걸려 있는 작업실..   


제 울산 시댁도 30년이 넘게 살아오신 주택이지요. 울산 부모님이 젊은 시절 이모님 댁의 방에서 지내며 돈을 모아 마련했다는 이 집에는, 신랑 형제의 어려서부터의 추억과 부모님의 부지런한 손길이 곳곳에 묻어있습니다. 이 곳이 단순히 오래된 집에 그치지 않는다는 건, 울산에 내려갈 때마다 흠뻑 젖어있다 오는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느낄 수가 있지요.

주택의 좋은점이란.. 가을바람에 도마를 말려놓고 음식도 내어놓고 음식물쓰레기는 흙밭에 바로 뿌려버리면 되는 것?
아버지가 옥상에 키우고 계신 여러 작물들. 토마토, 가지, 고추, 깻잎.. 음식하다 파가 필요할땐 위에서 뽑아오면 땡!

금호동 우리 동네에도,  26평 남짓한 지금의 작은 우리집에도 시간이 지나면서 소중한 추억들이 쌓이고 있는 중이지요. 언제부터인가 화장실 바로 앞에 자리잡게 된 빨랫대(샤워 전후 바로 옷을 집어갈 수 있도록, 손님이 올 땐 안방으로 쏙), 좁은 거실에 커다랗게 자리한 50인치 TV(보다 스르르 옆으로 겹쳐 누워 잠들어버리는), 서로 네게 더 심하다고 놀리곤 하는 빨아도 잘 안지워지는 베개의 얼룩들. 이 모든 것들이 생활 속에 묻어나는 우리의 추억들입니다.      


3)

영화에서는 룻과 알렉스가 집값 100만 달러를 받기 위해 집을 팔려고 하지요. 때마침 터진 테러 사건은 집값에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므로, 시시각각 뉴스를 보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합니다. 집값을 최대한 올려받기 위해서 부동산 중개인인 조카가 앞장서서 집을 살 후보자들의 경쟁을 붙이고 밀당을 하는 장면이 나와요. 미국에는 집을 사고자 하는 사람이 집 주인에게 편지를 써서 나를 선택해 달라고 하는 문화가 있는 모양인데, 집값 앞에선 매수 희망자의 진정성이 담긴 편지도 별 소용이 없지요.    

"여긴 물고 뜯고 살벌해요. 정신줄 놓으면 다 놓쳐요" 얄미운 조카!

테러는 아니지만 집값에 영향을 미치는 건 여러가지가 있겠지요. 동네의 환경과 학군 정도가 중요한 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 계획대로라면 우리는 은평구에서 오랫동안 살게 될텐데, 신랑은 이 곳이 앞으로 우리가 평생 살 곳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 같습니다. 집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 남들이 말하는 주거/교육 환경이나 일단 대출금을 갚는 숙제를 마치기까지 더이상의 집테크(?)는 별로 필요치 않은 모양이지요.


우리가 살면서 지켜야할 것들을 지키고 산다면, 두 사람이 역할을 잘 해낸다면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이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지만,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이전부터 미래를 위해 이사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심심찮게 보다보면 그때 되어 나라고 흔들리지 않으리란 법이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나친 경쟁 속에서 자라게 하기 보다는 어린 시절의 따뜻한 기억을 한껏 안겨주고 싶은 마음과, 세상을 살아가면서 본인의 밥그릇은 챙길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어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이 같이 든달까요?


다시 영화로 돌아와서 부부의 집 계약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한창 집 매매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신 차리지 못하던 노부부는, 어느 순간 이사하려는 이유에 대해 다시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서 확인한 것은 함께해온 세월과 공간에 대한 애정이었지요. 마치 부부가 그런 결론을 내기를 나도 바랬던 것일까, 끝 키스신에서는 나도 어찌나 기쁘고 따뜻하던지요. 이사 해프닝 끝 부부의 결론은 영화에서 확인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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