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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Apr 20. 2017

우리집 미래일기

그냥, 사랑에 빠지다

매일 하루에 세 번 이상 들어가는 곳이 있습니다. 19개월 후에 입주할 아파트의 예비 입주자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이지요. 이 카페에서는 집값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선택해야 할 옵션에 대한 논의, 들어설 중학교에 대한 이야기 등이 끊이지 않습니다. 저는 카페에 올라온 소식들을 읽으며 열심히 댓글을 달고, 제가 아는 정보를 올리거나, 모델하우스 영상을 수십번 넘게 찾아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도 합니다. 부부란 것이 티나지 않게 신랑과 서로 댓글을 달아주는 재미도 쏠쏠하지요.  


우리 부부가 이 모임의 일원이 된 것은 우연이라면 우연이었습니다. 1년 반 전, 별 기대 없이 넣었던 아파트 청약에 덜컥 당첨되어 버린 것이지요. 그저 회사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고, 집값이 아주 무리되지는 않는 수준이라 주변의 얘기를 듣고 쓱 넣어본 청약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주 후 날아온 당첨 문자에 신랑과 저는 출근하려다 말고 얼싸안고 기쁨의 소리를 질러댔지요.


마치 얼굴도 모르던 남녀가 결혼을 하고나니 사랑에 빠진 것 같다고 할까요? 처음으로 우리집이란 것이 생기고서 우리 부부는 우리집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공사는 아직 시작도 안했고, 완성된 집을 내 눈으로 본 적도 없는데 그냥, 우리집이라 좋았습니다. 남들이 따라다니는 학군이나, 집값이 크게 오를 동네와는 별 상관이 없는 곳이라지만 그저, 우리집이라 좋았습니다. 지금의 우리 수준에 딱 맞는, 아니 이르다면 이른 나이에 과분하게 갖게 된 우리집이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마음을 든든하게 한 것이지요.


사랑하면 눈이 먼다더니 나쁜 점은 하나도 안들어오고 좋은 점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집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역에서 가장 먼 곳에 있고, 저층이라 청약 경쟁률이 가장 낮았던 곳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집 바로 뒤에 펼쳐진 산이 더 소중해 보이고, 이곳이 바로 조용하고 안락하게 지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인 것처럼 보입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필요 없이 바로 튀어나갈 수 있다는 것도 우리 부부가 발견한 장점이지요.   


우리집이 자리잡게 될 동네가 서울에서 교육적으로 가장 낙후된 지역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웬 영상을 보고 있다가 'OO구는 서울에서 교육적으로 가장 낙후된 지역입니다' 하는 소리를 듣고 서로 마주보며 허걱 하긴 했지만 그리 걱정이 되지는 않습니다. "오빠 우리 아이가 공부를 잘하면 어떡하지?" 묻는 제게 신랑이 별일 아니라는 듯이 얘기했습니다. "그럼 이 동네에서 짱먹으면 되지"


특히 마음에 드는 것은 이 동네가 옛 문인들이 많이 살던 동네라는 것입니다. 이 또한 우리집을 갖게 된 후 이런저런 자료를 조사해보다 뒤늦게 알게된 사실이지만요. 인터넷 카페에서는 집값에 대한 이야기들이 한창인데, 제가 올린 '여기가 알고보니 옛 문인들의 동네더라구요' 하던 글에는 아무도 대꾸를 해주지 않았지만 괜찮습니다. 저는 그 사실에 남몰래 좋아하며 많은 점수를 주고 있으니까요.


한창 재개발이 되고 있지만 아마도 그곳은 새 아파트촌과 아직 개발되지 않은 주택이 어우러져 발전하는 동네가 될 터입니다. 비슷한 모양을 가진 지금의 우리 동네를 지나가며 신랑과 저는 또 이야기합니다. 만약에 저동네 이동네 편가르는 엄마들이 있다면 우리는 그러지 말자고. 누구와도 잘 어울려 노는 아이로 키우고, 약한 아이가 있다면 데려오라고 해서 맛있는 걸 많이 많이 만들어주자고요. 우리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세상이 될테니까요.  


입주까지 남은 시간은 19개월여. 다른 시간은 빨리도 가는데 입주를 기다리는 시간은 참 더디게만 가는 것 같습니다. 갚아야 할 대출금을 위해 알뜰살뜰 아껴가며 살고 있지만 이 또한 미래를 위해 채워야 할 곳간이라고 생각하면 크게 수고스럽진 않답니다. 긴 설레임과 기다림을 거쳐 우리집에서 살게 되는 날, 우리는 실제 우리집을 만지고 가꾸며 더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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