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수소녀 Apr 23. 2017

손톱

그게 내 손톱이지

아빠를 닮은 제 손톱은 짧고 뭉툭합니다. 아빠가 엄마와 데이트하던 때 아빠는 못생긴 손이 부끄러워 주먹을 쥐고 있었다고 하죠. 제 손은 못생기지는 않았지만 손톱만큼은 여전히 짧고 뭉툭합니다. 손톱이 이렇게 된 데에는 아빠 뿐 아니라 엄마의 영향도 없다고 하진 못할 거에요. 목욕탕을 가도 살갗이 빨개질 때까지 때를 밀어야 직성이 풀리는 엄마는 어린 딸의 손톱도 살에 바짝 붙여 깎아 이따금 피가 나기도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 이후로 악기를 한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제 손톱은 조금의 자라난 흰 손톱도 허용할 여유 없이 살에 바짝 붙어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제 손톱이 좋았어요. 손톱이 자라서 좀 길어진다 싶으면 때가 끼기 마련이고 자꾸 뭐가 들어가는 거 같은 걸리적거림이 자유로운 손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것 같았거든요. 저를 예뻐해주시던 한 남자선배는 진지하게 "OO야 남자들은 손톱도 봐"하고 얘기해 주셨지만 그런말을 듣고서도 손톱을 기른다는 것은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전 짧고 수수한 제 손톱이 좋았으니까요.


하지만 저도 손톱 관리를 한 번도 받지 않아본 것은 아니랍니다. 네일샵이 우후죽순 생기기 시작하던 무렵, 친구들은 다양한 색깔의 매니큐어와 가끔은 뭘 붙이고 오는 현란한 네일아트로 멋을 부리곤 했지요. 아주 우울하던 어느날이었던가 나도 그런 사치를 부려보고 싶어 동네 네일샵에 방문했습니다. 남에게 손을 맡 손톱을 관리받고 손에 크림을 발라서 마사지를 받는 기분은 꽤 좋은 기분이었어요. 한 번에 3만 얼마이던가.. 이후로는 손톱에 그런 돈을 쓰는 것이 내키지 않아 그만두었지만요.


첫 네일샵 방문 후 아마 5-6년이 지난 얼마 전, 두 번째 네일샵 방문이 있었지요. 그 날도 좋지 않은 일을 겪은 이후였고 집에서 빈둥대다 너무나 심심해 감행한 네일샵 방문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손톱 관리가 시작되었어요. 손톱을 두텁게 덮고 있는 큐티클을 밀대로 밀어 정리하고, 손톱깎이가 아닌 샌드블럭으로 예쁘게 모양도 내고 투명 매니큐어를 발라 반짝반짝 빛나는 손톱이 완성되었지요. 말끔해진 손톱을 보며 손도 예뻐진 것 같은 생각에 손을 이렇게 놓아보고 저렇게 놓아보고 들여다 보았습니다.


갑자기 손톱 관리에 관심이 생긴 저는 이제부터는 나도 예쁜 손톱으로 살아가보리라 생각하고 손톱 용품을 사들였습니다. 투명이지만 매니큐어 두어개, 손톱을 다듬어줄 샌드블럭, 그리고 집에 있던 큐티클 제거 도구도 꺼내놓았죠. 아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불편해지기 시작합니다. 한번 관리를 받고 온 손톱에는 제멋대로 큐티클이 삐죽삐죽 일어나기 시작하고, 손톱의 투명 매니큐어는 이런저런 손의 움직임에 가장자리부터 벗겨져가기 시작했어요. 그걸 가만 보고 있지 못하는 저는 제 손으로 알아서 손톱의 매니큐어를 긁어댈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뭐.


결국 저는 손톱관리를 다시 포기했습니다. 매니큐어는 그래 벗겨져라 그냥 내버려 두었고, 손톱이 조금 자랐다 싶으면 불편한 느낌에 손톱깎이를 꺼내들고 휴지통 앞에서 냉큼 바짝 깎아버렸지요. 길이만 깎아줄 뿐 손톱에 대해서는 제대로 보지도 않고 잊고 지내던 어느날 아침, 문득 눈길을 준 제 손톱에는 지난 매니큐어의 자국도 완전히 없어지고, 제 손으로 큐티클을 정리하느라 옴폭 패였던 자국도 사라져갑니다. 큐티클도 완전히 자라나 잔가지 없이 손톱을 얌전하게 덮고 있네요.


그래, 그게 내 손톱이지. 원래대로 돌아온 내 손톱을 보며 저는 별안간 반가움과 자유로움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집 미래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