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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Apr 24. 2017

연극을 보고와서

연극 배우와 버스 기사님께

날이 화창한 토요일 오후 신랑과 대학로에 연극을 보러 갔습니다. 연극값은 3만원이었지만 종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티켓을 '겟'해오는 신랑 덕분에 그날도 무료로 문화생활을 즐길 계획이었지요. 설레이는 마음을 안고 들어선 소극장의 좌석은 100석이 채 안되어 보였고 작은 무대에 배우들이 선다면 숨소리 까지도 들려올 것 같았습니다.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끄고 연극도 시작되었는데, 오는 길에 잠시 받은 햇볕 때문인지 나오기 전 먹은 점심 때문인지 몸이 노곤해지고 눈꺼풀이 점점 내려앉으려 합니다. 하지만 꾸벅댈 수는 없습니다. 얼마 안되는 관객들 속에서 졸아버린다면 그건 아무래도 내가 훤히 보일 배우들에게 조금 미안한 일이었으니까요.  


몰려오려는 잠을 참아가며 눈을 부릅뜨고 연극을 보았건만 사실 큰 재미가 있는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가진 것 없고 나이도 많은 남자와 예쁘고 많이 배운 여자가 사랑에 빠져 아파하다가 시간이 흐른 후 다시 만나 사랑을 이어가는 내용이었지요. 소재도, 배경도, 스토리도 큰 이입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되려 우리의 마음을 찡하게 만든 것은 연극 보다는 그 연극을 이어가는 배우들의 열연이었습니다. 두시간 내내 두 배우가 주고받는 대사만으로 공연이 이루어지는 동안, 배우들은 정말로 열심히 손짓 발짓 소리쳐가며 연기했지요. 저들이 대충 연기하지 않고 있다는 건 정성껏 짓는 표정 하나, 섬세하게 들어올리는 눈썹, 부지런한 손의 움직임, 그리고 배에서 끌어올리는 탄탄한 발성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인사하는 배우들을 향해 힘껏 박수를 쳤습니다. 연극이 아주 재밌지는 않아 큰 환호성은 나오지 못했지만, 얌전한 관객들이 괜시리 미안해 더 힘껏 박수를 쳤습니다. 저들이 한 번의 공연으로 얼마를 받을지는 알 수 없지만 15명 남짓한 관객으로 큰 수입을 얻지 못할 것은 분명합니다. 관객 수도 적었을 뿐더러 우리처럼 무료 관람의 기회로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을 테니까요. 나이도 어리지만은 않아보이는 배우들이 저렇게 열심히 연기를 한다는 건 정말로 이 일을 좋아하지 않고서는 힘들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여 집안 사정이 넉넉해서 좋아하는 일을 별 눈치보지 않고 맘껏 할 수 있는 환경일지는 몰라도, 어쨌거나 그들은 지금 자신들의 젊음을 여기에 쏟고 있는 것이니까요. 어쩌면 저들 중에 누군가는 언젠가 관계자의 눈에 띄어 스타가 될지도 모르지만, 그때까지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저들은 좋아하는 연극을 한다는 기쁨 하나만으로 많은 시간을 견뎌야 할 겁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 급하게 뛰어 마을버스에 올라탔는데 마을버스가 한동안 멈춰서 가지를 않습니다. "왜 안가?" 무심코 얘기하는 저의 옆구리를 신랑이 푹 찔렀습니다. 저기 앞에서 빵을 먹고 계신 기사 아저씨가 보이지 않느냐는 말이었죠. 마침 손님이 우리 둘 뿐이라 잠시 차를 세워 식사인지 간식인지 모를 빵을 급히 먹고 계시던 기사아저씨는 제 말을 듣고 바로 빵을 놓고 차를 출발시키셨습니다. 


아 세상엔 참 열심히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연극배우들의 열정에,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만난 삶의 전선에 계신 기사님을 보며 뭔가 숙연해지는 하루였습니다.    


* 열연해주신 연극 <오마이러브> 배우분들과 언제나 친절한 목소리로 인사해 주시는 성동02 마을버스 기사님께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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