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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Oct 22. 2016

살림살이가 깨져나갈 때

부엌에서 일어난 일

                                                                                                                                                                          얼마 전 알게 된 인터넷 시대의 마사 스튜어트, '귀여운 엘비스' 님의 책 <한비네 부엌>을 보면 이런 말이 반복해서 나와요. 집안 곳곳에 가족들의 시간과 추억이 묻어있는 물건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 마음이 참 좋다고요. 물건에 별로 미련을 두지 않는 성격인 저는 그걸 읽으며 '유난은 유난일세.. 그렇게 쓸고 닦고 하니 보고만 있어도 좋은가보다' 하고 웃어 넘겼지요.


그런데 이 말을 깊이 실감하게 된 일이 있었어요. 집들이 때 선물 받아 우리 집 커피 포트로 아주 잘 쓰고 있던 도자기 주전자를 깨먹고 말았거든요. 신혼 집들이 때 신랑의 팀 분들이 직접 골라 사들고 오신, 머그컵 두 잔이 딸려 있는 도자기 커피 포트는 보기에도 아주 예쁘고 용도도 아주 다양했어요. 커피 마실 때, 차를 끓일 때, 뜨거운 물이 필요할 때마다 간편하게 물을 부어 스위치만 내리면 되는, 애정하는 살림살이였어요. 따로 커피머신을 두지 않은 우리 부부에게는 더욱 그 쓰임이 빈번할 수 밖에 없었지요.

볼때마다 흐뭇하고 쓸때마다 유용했던 주전자

그런데 어떻게 하다보니 뚜껑이 열리지 않아 낑낑거리다 힘껏 당긴 것이, 그만 이빨이 깨져 버리고 만 거에요. 이럴 수가.. 깨진 부스러기를 보며 참담한 심정이 되었어요. 나는 왜 이걸 힘으로 할 생각을 했을까. 조금 더 살폈더라면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 있었을 텐데. 차라리 신랑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봐달라고 할 걸.. 얼마 전엔 구연산도 풀어서 바닥에 눌어붙어있던 탄 자국도 말끔히 닦아주었는데.. 그래도 좋은 기분으로 퇴근하는데 성공했던 그날 저녁, 저는 마음이 축 내려앉아 금세 우울해지고 말았어요.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그동안 이 주전자에 담겨 있던 많은 시간과 추억이 생각나면서 너무나 너무나 아까운 마음이 들기 시작하는 거에요.

이빨이 나가버린 주전자..ㅜㅜ 그래도 계속 쓰려고 합니다.

어제는 쌀을 씻다 그만 접시를 깨먹었지 뭐에요? 밥통이 손에서 미끄러져 밑에 있던 접시를 내리치고 만 거에요. 바로 전에 김치통까지 엎었던 저는 아 나는 정말 왜이럴까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주전자를 깨먹을 때만큼 속상하진 않았지만 많은 손길과 추억이 묻은 살림살이가 깨져나가는 일을 겪는게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더라고요.   

이 접시는 다시 쓰지도 못하겠어요. 참 신랑은 아직 모른답니다(이걸 볼텐데 말예요)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신랑이 가져온 냄비와 접시 몇 개를 비롯한 집기들을 버리려고 내놓은 적이 있었죠. 모든 게 다 새 살림들인데 낡고 색상도 맞지 않는 도구들이라 별 고민 없이 내다놓았었어요. 이걸 발견한 신랑이 내 '총친이들(총각 시절의 친구들)'을 버리지 말라며 귀하게 다시 싸들고 오더군요. 지금 보니 물건 하나 허투루 버리는 법이 없는 신랑에겐 당연한 일인데다가, 아마 신랑에게도 이런저런 추억이 묻어있는 물건들을 버리는게 내키지 않는 일이었나봅니다.


앞으로 우리집에 들어올 물건들은 점점 더 많아질테고, 세월의 흐름을 따라 깨진 자국에 담겨있는 추억까지 소중하고 사랑스러워질 때가 올까요? 저는 조금 더, 조금만 더 조심성을 길러야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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