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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수소녀 Oct 22. 2016

우리동네 이야기

따뜻한 금호동

오늘은 '지금' 우리 동네 이야기를 해볼게요. 우연한 기회에 북한산으로 이사갈 계획을 갖게 되긴 했지만, 이 동네의 거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어서 여기서 오래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동네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해준 소중한 곳이거든요.  


한때 달동네였다고 하는 성동구 금호동(위치로 따지자면 신금호가 더 가깝달까요?) 우리 동네는 그동안 서울에서 살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에요. 처음엔 이 지역의 싼 물가와 뭔가 서민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분위기에 마음만 푸근해지곤 했었는데, 지내다보니 이 정답고 특별한 분위기는 그런 사람들로 가득찬 곳이어서 가능한 일이란 걸 알게 되었어요.


결혼한 첫 겨울, 아파트 상가 과일가게에 유자차를 사러 들렀습니다. 진열되어 있는 유자차 병들을 둘러보았지만 신랑과 저 둘만 먹으면 되기에 많은 양은 필요가 없었어요. 혹시 작은 병은 없냐고 과일가게 아주머니에게 묻고 그냥 돌아서려던 차에, 아주머니가 나를 다시 불러 세우셨습니다. 밑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시더니 아들 며느리 주려고 직접 담근 건데 조금 덜어줄테니 그냥 가져가라고 하시더라고요. 왠지 가게에 들어올 때부터 그냥 보내면 안될 것 같았다고 하시면서요. 유자차를 안고 돌아오면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마음이 훈훈하면서도 어리둥절 했지요.

아주머니가 나누어주신 유자차

결혼하고 두 번째 겨울, 유독 추웠던 지난 겨울에 집에 물난리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가장 저층인 우리집의 배관이 동파된 탓에 위층에서부터 내려온 물이 역류해서 우리집 베란다와 거실을 넘어 현관까지 넘실대고 있었어요. 집에 사람이 있었으면 일찌감치 조치를 했으련만, 저녁에 퇴근해서 맞닥뜨린 기막힌 광경에 어찌해야할 바를 몰라서 경비 아저씨께 SOS를 쳤습니다. 소식을 듣고 온 동대표 아주머니와 부녀회장 아주머니가 팔을 걷어붙이고 집 정리를 도와주셨어요. 부녀회장 아주머니는 온 집을 다니면서 물 사용을 멈춰달라고 호소하시고, 동대표 아주머니는 고무장갑을 끼고 능숙한 아줌마의 솜씨로 바께스로 물을 퍼내고 집을 닦아주셨지요. 새댁을 보니 우리 딸이 생각난다면서요. 한겨울에 신발도 못신고 맨발로 차가운 물 위를 뛰어다녔던 사건은 맘씨 좋고 적극적인 분들의 도움으로 빨리 마무리될 수 있었어요.

동대표 아주머니가 가구 밑의 물기를 흡수하기 위해 집에서 신문지를 가져다 깔아주셨는데, 저라면 몰랐을 대처법이었겠지요.

지하철역에서 우리집까지 마을버스를 타고 올 때는 이 버스가 옛날에 영화 <집으로>에서 봤던 시골 버스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어울려 정담을 나누는가 하면, 어딘가 달라보이는 듯한 사람이 교통카드를 한번에 찍지 못해 시간이 지체되는 것 같을 때에도 그 사람에게 웃음의 한 마디를 건네는 곳, 정거장 마다의 "어서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하는 기사 아저씨의 인사가 자연스러운 곳이 우리 동네 마을버스이지요. 한 번은 우리집에 찾아오던 친한 동생이 마을버스를 탔다가 긴장한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어요. 어떤 할아버지가 자꾸 모르는 아이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아서 신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구요. 신고하려고 바짝 긴장하고 있던 차, 가만 보니 그게 이 동네의 분위기더라면서 웃었지만요.


엊그제 신랑과 영화를 보고 마을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 뒷자리에서 뻗은 손이 우리 자리에 자꾸 와닿는 것만 같았어요. 누가 이렇게 걸리적거릴 만큼 손을 뻗나 찡그린 얼굴로 뒤를 돌아본 저는 무안해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웬 아주머니께서 방금 찐 밤이라며 따끈한 밤 한 줌을 건네주시려고 손을 뻗으신 것이었어요....... 아! 여기는 우리동네 마을버스였지. 그렇다 하더라도 적응되지 않는 이 사실에 여러번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도 내리는 순간까지 어찌나 당황스럽던지요.

아주머니가 나누어주신 뜨끈한 밤 한줌
우리동네 마을버스에선 갖가지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동네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내가 이 동네를 사랑할 수밖에 없어!" 라고 여러번 마음 속으로 외치곤 했지만 사실 그만큼의 애정을 많이 표현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다년간의 서울생활과 직장생활에서 몸에 밴 깍쟁이스러움이 그 표현이 선뜻 나오지 못하도록 막는 거 같달까요. 과일가게 아주머니께도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나오고, 동대표 아주머니께도 파전을 부쳐 갖다드리긴 했지만.. 무언가 계속된 관계를 갖는게 부담스러워 과일가게도 더 가지 못했고 바쁜 맞벌이 생활을 핑계로 주민들과의 관계도 이어가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여전히 아침 출근 길에 아파트 화단에 물 주고 계시는 경비 아저씨를 보면서, 뛰어와 문을 두드리는 나를 보고 간혹 정거장을 조금 지나친 곳에서도 세워주시는 마을버스에 올라타며, 퇴근 후 상가의 여유로운 동네 분위기를 만끽하면서, 집까지 오는 길에 거치는 집집마다에서 새어나오는 저녁 밥 짓는 소리와 냄새에 행복해 하면서 이 동네에 더욱 감사하고 오래오래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고 싶은 것이 제 마음입니다. 행복한 기운으로 우리를 둘러준 우리 동네에 감사하며..!   


2016.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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