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수소녀 Jun 27. 2017

영화 <박열>을 위한 변(辯)

어쩌면 이 영화를 보기 전부터 이미 나는 좋은 선입견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보기 전부터 신랑도 '딱 네가 좋아할 영화'라고 했으니까. 영화 <박열>은 <동주>의 이준익 감독 작품이었고, 제국의 불의에 항거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영화의 그림도 훌륭해 보이는 그런 영화였다. 그래서 시사회장에서 이런저런 포스터를 들여다볼 때부터 이미 내 가슴은 꽤나 뜨거워졌다는걸 고백해야겠다. 유일한 우려라면 실제 박열에 비해 그를 연기한 이제훈이 사실성 떨어지게 너무 잘생긴 게 아닐까 하는 정도랄까.


영화를 다 보고 나온 이후에도 이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경쾌한 듯 구슬픈 음악이 흘러나오는 영화관을 빠져나오며 가슴에선 한층 더 쓸쓸하고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오는 듯 했으니 말이다. 개인적 취향을 배제하고 생각해 보더라도, 이 영화는 꽤 잘 만들어진 영화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런데 그 감상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같이 영화를 보고 나온 신랑의 평이었다. 이 영화는 감독의 전작 <동주>에 못미치며(난 굳이 전작과 비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최희서의 일본어/한국어 연기는 훌륭하나 여주인공 가네코 후미코를 광인(狂人)처럼 설정한 과한 연기가 거슬리고, 박열이란 인물이 실제로 한 게 무엇인지에 대한 공감이 되지 않는다는 것다. 박열은 일본 천황에 폭탄을 던지려고 계획했을 뿐, 항일 운동에 혁혁한 공을 세우거나 실제로 성사시킨 게 없지 않느냐는 물음이었다. 아 그렇게만 볼 것이 아닐텐데.. 신랑을 위해, 그리고 혹시 비슷한 생각을 할지도 모를 누군가를 위해 영화를 보고 좀더 많은 자료를 찾아본 후 곰곰이 생각해본 것들을 써보려 한다.


먼저 이 영화는 낭만적이고 뜨거운 젊은이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영화 <박열>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불량한 조선인'이라 불리우며 온갖 멸시를 받고 살아갔던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식민지 백성으로서 천대를 받는 것은 그렇다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들이 유독 '불량선인(불량한 조선인)'이라 불리웠던 것은 그들이 조선인임에도 불구하고 고분고분하지 않고 마치 세상이 제 발 아래 있는 듯한 당당하고 해학적인 태도를 견지했던 까닭이다.


'Anarchist from Colony'라는 영화 <박열>의 영어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아나키스트였다. 아나키즘이란 세계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민족주의를 넘어서 민중의 평등과 개인의 자유를 내세워 억압에 항거했던 운동을 말한다. 젊은이였던 그들은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사상을 누구보다 빠르고 적극적으로 흡수할 의지가 있었으며, 그것을 실제로 행동에 옮길 불덩이 같은 투지가 있었다. 일본 거리의 조선인으로 살아가며 함께 모여 사상을 공부하고 운동을 계획했던 그들이, 관동대지진 후 조선인에게 모든 분풀이와 정략적 학살이 행해지는 것을 보 어찌 피가 끓지 않을 수 있었을까. 비록 천황에 대한 폭탄 투척이 미수에 그쳐 수감되었을지언정, 재판 준비 과정에서 철저한 계산 하에 최대한 널리 진상을 알리고 재판 중 조선인의 대표로서 일본과 선 사실에 비춰봤을 때 절대 그들의 활약이 없다 하지 못할 것이다.  


영화의 주축이 되는 내용이자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을 찡하게 하는 것은 젊은 박열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인 가네코 후미코와의 관계이다. 그들의 신념은 그들을 묶고 있는 사랑과 신뢰 속에 더욱 강하고 단단해졌다. 죽어서까지 함께 하고자 했고, 고문과 사형의 위협 속에서도 오히려 태연하고 자신만만한 눈빛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것은 정신적 연대가 증폭시킨 사랑의 힘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가네코 후미코란 인물은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을 받고 조선으로 건너가 3.1 독립운동을 목도하며 일제의 부당함에 눈을 뜨고 그에 항거하는 조선인들과 함께 하며 자신의 짧은 삶을 자그마치 1천장 분량의 기록으로 남겼던 여성이다. 끝까지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고 자유의지를 가진 한 인간으로서 남으려 했던 그녀가 현대인에게는 무모해 보이리만치 과한 인물로 보였다면, 그 과함이란 척박하고 비인간적인 시대를 살아가며 매서운 정신을 지켜내기 위해 그녀가 취하지 않을 수 없었던 행동이었던 까닭으로 이해하면 어떨까.


두번째로 이 영화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언뜻 보면 제국주의 일본과 그 손아귀에서 무참히 짓밟히고 아스러진 조선인들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그것이 곧 일본인과 조선인의 관계는 아니었다. 조선인 학살의 주동자는 일본제국 내각의 권력자들이었지만, 나라의 무능과 일제의 폭압에 스러져갔던 사람들이 대다수의 조선 민중이었던 것처럼, 그 부당함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고 조선인들을 돕고자 하는 일본인들 또한 존재했으니 말이다.


박열 무리와 함께 했던 가네코 후미코를 비롯한 일본인 젊은이들, 박열 뿐 아니라 여러 독립운동가들을 변호했던 일본인 변호인, 박열 사건의 예심 판사로서 이미 결론 내려진 주장을 이끌어내야 했지만 박열에게 모종의 감정을 느껴 박열과 그 아내로 하여금 감옥 안에서 다정한 기념사진까지 촬영하도록 해준 일본인 판사, 그리고 여러 번의 본심을 거치며 일본인 재판장으로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박열 부부를 위해 남겼던 일본 법치의 상징인 최고 재판장, 박열의 수감 후 그를 둘러싼 진실을 밝히고 뒷바라지를 했던 양심적인 일본의 소설가들까지.. 어쩌면 그 시대를 살아갔던 박열을 비롯한 젊은이들이 아나키즘에 빠져들었던 것은 정치적 국경을 넘어선 인류의 보편적인 양심과 정의감, 그리고 사람이라면 갖고 있는 인정을 이미 알고 믿었기 때문은 아니었을지.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담담하게 쓰기 좋아하는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여러 번 울컥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 <박열>의 메인 OST 중의 하나인 그 시대 무용가 최승희의 <이태리정원>을 듣고 있기 때문일까. 한없이 태평해 보이는 반주와 목소리의 노래인데 이 노래를 듣는 내 마음이 왜 이리도 슬픈 것일까. 그것은 아마, 영화 <박열>을 통해 만난, 그 시대에 태어난 죄로 시대에 맞서 치열하게 살고 죽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들과, 100여년의 시간이 흐른 현재에도 일본과 우리의 관계에 있어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내내 떠올랐기 때문 것이다.



[참고자료]

다음 영화: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07295

박열/가네코후미코의 대역사건의 진상: http://blog.naver.com/gensang/221032717940 

나카니시 이노스케의 '조선인을 위해 변함': http://blog.naver.com/gensang/220923809436

박열과 가네코후미코: http://blog.ohmynews.com/yby99/313189

이준익 감독 인터뷰: http://star.mt.co.kr/stview.php?no=2017061909322195823&outlink=1&ref=https%3A%2F%2Fsearch.naver.com

관동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http://blog.ohmynews.com/q9447/328623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