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입덧 때문에 주춤하긴 하지만 고기를 몹시 좋아하는 나는 도서관에서 <육식의 종말>이라는 책을 펼쳐들었다가 확 덮어버린 경험이 있다. 제목을 봤을 때부터 나는 읽지 말아야 할 책이라고 생각했지만, 호기심에 집어들었다가 역시나 앞으로 계속 고기를 먹기 위해선 읽어서 좋을 게 없는 책이라고 생각했던 까닭이다. 책을 다시 꽂아놓은 건 고기 사랑의 이유가 가장 컸지만, 가축도살과 환경문제, 산업화 등의 내용으로 빼곡한 책이 그리 재미있어 보이지 않았던 이유도 컸다. 그리고 그후 오랫동안 육식을 둘러싼 문제는 내게 큰 관심대상은 아니었다.
<옥자>의 봉준호 감독은 언제부터 세계의 식량문제와 동물의 인권, 그리고 자본주의의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일까. 그리고 그걸 영화를 통해 이야기해볼 생각을 하게 된 걸까. 영화 <옥자>에는 봉준호 이기에 생각할 수 있을 듯한 설정과 장면들이 넘쳐난다. 미국 거대 기업이 자신들이 개발한 종자돼지를 전세계 농장에 위탁해 키움으로써 인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기발한 상상력에서 시작한 영화는 여러 장면의 전환으로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영화 초반 산림이 우거진 깊은 마을에서 산골소녀 미자와 넘실거리는 큰 궁둥이의 슈퍼돼지 옥자가 뒹굴며 어울려 노는 모습이 그렇고, 어느새 미자와 옥자가 차가운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서울에서 난투극을 펼치는 장면과, 자본주의의 심장인 미국 뉴욕에서 벌어지는 슈퍼돼지 축제 퍼레이드의 화려함이 그러하다. 덧붙여 틸다 스윈튼, 제이크 질렌할, 릴리 콜린스 등의 할리우드 배우들을 한국 감독이 만든 영화에서 한데 모아 볼 수 있다는 것도 분명 봉준호의 영화이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봉준호 이기에 걸었던 기대는 생각보다 영화가 평범하고 번뜩이는 재치가 부족해 보인다는 데에서 다 채워지지 못하고 아쉬움을 남긴다. 숲속에서 뒹굴며 놀던 소녀와 슈퍼돼지가 동물해방단체의 도움을 받아 미국 거대 기업의 민낯을 까발리는 주인공이 되기까지 이야기의 전개는 무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곳곳의 전개가 다소 지루한 듯 느껴지고, 보여주는 이야기 이상의 것이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는 까닭이다. 감독의 전작 <설국열차>에서 놀랍게 보았던, 우리 사회상을 무한히 질주하고 있는 칸칸이 나뉘어진 열차칸에 담아내었던 번뜩이는 비유와 섬찟한 사회 풍자, 그리고 정교한 장치의 칼날이 <옥자>에서는 한층 무뎌지게 느껴지는 탓에 영화를 통해 제기되는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하는 데에 부족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옥자>를 통해 생각하게 된 인간과 자연, 자본주의의 문제는 분명 읽지도 않고 덮었던 책 <육식의 종말>보다는 훨씬 침투력이 있고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사람들이 먹는 문제에서 자유로워진 건 기술과 자본의 발전으로 인해 싼값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기 때문이고,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유전자 조작 식품도 대폭 증가했으며, 우리가 먹는 고기의 상당 수는 동물의 울부짖음은 아랑곳없이 강제 교미시킨 결과이자 잔인하게 도축한 산물이라는 등의 문제 말이다. 아마도 문제를 이렇게 쉽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힘과 스토리텔링이 주는 힘일텐데, 그런 의미에서라도 봉준호 감독의 신작에 대한 기대치와는 상관 없이 적어도 한 번쯤 영화 <옥자>를 볼 가치는 있는 셈이다.